[앵커]
삼성 백혈병 노동자들은 그동안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서 질병과 업무 사이의 관계를 입증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직접 발암 물질에 노출됐던 생산라인 노동자들만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법원이 처음으로 생산라인이 아닌 곳에서 일한 노동자에게도 이같은 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면 산업 재해라고 판단했습니다.
김선미 기자입니다.
[기자]
정모 씨는 만 18세였던 2003년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사업장에 입사했습니다.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의 불량품을 수거하고, 불량 원인을 분석하는 '분석실' 등에서 일했습니다.
일주일에 3~4번 씩, 하루에 최소 30분에서 최대 4시간까지 생산 라인을 드나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입사 6년째 되던 해 정 씨는 급성 골수형 백혈병을 진단 받았습니다.
[정모 씨/삼성 백혈병 피해자 : 스물네 살 때, 20대 초반에 걸리기가 어려운 병이니까 납득하기 어렵잖아요. 빨리 나아서 다시 회사에 출근하면 되겠지 생각했어요.]
정 씨는 산업재해를 인정해달라며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고용노동부는 분석실 등에서는 발암 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작다며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행정법원은 "정 씨가 웨이퍼를 수거하기 위해 제대로 된 보호장비 없이 생산 라인에 수시로 출입하고, 오랫동안 체류했다"고 봤습니다.
그러면서 "이 과정에서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 등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며 산업재해를 인정했습니다.
법원은 또 "근무 전에는 건강에 이상이 없고 가족병력도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