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휴전을 눈앞에 두고 우리 국군을 비롯한 유엔군과 중공군이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곳이죠.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전사자 1000여 명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한 지뢰 제거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유선의 기자가 현장 취재했습니다.
[기자]
굳게 닫힌 통문을 통과해 장갑차를 타고 10여 분.
철조망 사이로 북한 감시초소가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이곳은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입니다.
바로 옆에는 6·25 전쟁 당시 30만 발의 포탄이 터져 고지가 하얗게 변하고, 형태마저 말의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백마고지가 있습니다.
휴전을 눈 앞에 둔 1953년 초여름, 화살머리고지를 지키던 국군과 미군, 프랑스군은 중공군의 파상공세를 막아내고 백마고지 협공 작전을 좌절시켰습니다.
[6·25 전쟁 참전 미군 : 무서웠어요. 난 (전투가) 그런 식으로 흘러갈지 정말 몰랐어요.]
군은 화살머리고지에 국군 전사자 유해 200여 구, 미국과 프랑스 등 유엔군 전사자 유해 300여 구가 묻혀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공군도 당시 이 곳에서 1000명이 넘게 숨졌습니다.
여기서는 특히 프랑스 공병대가 많이 전사했는데, 고지 한 구석에는 전우의 넋을 기리는 프랑스 합참의장의 전적비도 남아 있습니다.
군은 이들의 유해를 찾기 위해 고지 주변의 지뢰부터 없애고 있습니다.
군은 지뢰제거 첫 날부터 유해발굴 감식단을 투입했습니다.
[지뢰제거 현장 지휘관 : (지뢰제거) 과정에서 수습되는 유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유해발굴팀도 현장에 투입된 상태입니다.]
65년 동안 비바람에 흩어진 전사자들의 유해가 지뢰 바로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백마고지 전투 당시 20살이었던 청년은 지금까지도 먼저 떠난 전우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박명호/백마고지전투 참전 : 꽃다운 나이에 장가도 못가고, 고향에 휴가도 못가고, 입대하고 그냥 돌아가시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그분들 생각하면 항상 애처롭고, 꿈에도 항상 보이고 그래요.]
이제는 여든이 훌쩍 넘었지만 65년 전 휴전 협정이 체결되던 날의 기억은 생생합니다.
어제까지 죽기살기로 싸웠던 중공군과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던 그 날의 기억, 이제는 모두의 유해가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영상디자인 : 신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