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지난해 사드 여파로 발길을 끊은 유커들이 아직 다 돌아오지는 않은 듯 하죠. 시내 면세점들은 사정이 좀 달라 보입니다. 이 면세점들에는 아침부터 중국인들이 장사진을 치는데 이들의 대리 구매와 사재기로 시장이 병들고 있습니다.
윤재영 기자입니다.
[기자]
현재 시각 오전 9시 40분, 서울 소공동의 모 면세점 앞입니다.
아직 면세점이 문을 열기 전인데, 사람들이 벌써 줄을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이렇게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일지 한 번 쫓아가 보겠습니다.
대부분 중국인인 이들은 'K-뷰티'라고 적힌 목걸이를 걸고 있습니다.
5만원권으로 가득한 여행가방도 눈에 띕니다.
[면세점 직원 : (매일 이렇게 사람 많아요?) 네. 거의 물건 대리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입장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뛰기 시작합니다.
달려간 곳은 특정 한국 화장품 브랜드 매장.
길게 늘어선 줄에 오가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대리구매 업자 : 단체로 와서 물건 사요.]
물건을 산 중국인들이 향한 곳은 면세점 지하의 검품장.
수많은 면세품 봉투가 가지런히 놓였습니다.
일을 마친 이들은 일당을 받습니다.
[검품장 관계자 : 일당이 하루에 22만원인가? 저녁때까지. 매일매일.]
시내 다른 면세점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면세점 지하주차장입니다.
뒤쪽에 보시면 사람들이 면세품 봉투를 사람 키 허리 높이만큼 잔뜩 쌓아두고 있습니다.
[대리구매업자 : (이거 대리구매죠?) 저 사람들이 산 거예요. (저 사람들이 이거 다 사용하는 건 아니죠?) 그건 모르겠네요.]
한 쪽에서는 정산이 한창입니다.
[따이공 업자 : 촬영하지 마세요 촬영하면 안 돼요. 물건 산 거 계산하는데 왜 여기서 촬영해요.]
잠시 후 트럭 한 대가 도착해 대리 구매한 면세품을 트럭에 싣습니다.
트럭을 쫓아간 곳은 서울 구로구의 한 오피스텔.
[따이공 업체 : (중국으로 가는 거예요? 요즘 무역도 한다는데) 저희 지금 말씀드릴 수 없어요.]
이들은 이른바 면세품 따이공, 우리말로 보따리상입니다.
대부분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브랜드별로 1인당 구매 수량 제한에 맞춰 대리구매를 합니다.
면세점으로부터 대량구매 혜택 등을 받아 제품을 싸게 산 뒤 이를 되파는 겁니다.
인터넷에서는 이렇게 구매된 일부 제품들이 면세가보다 싸게 팔립니다.
[화장품 판매업체 : (한국 면세점에서 대리구매한 것인가요?) 맞아요.]
[A 여행사 관계자 : 상상도 못할 만큼 벌어요. 진짜 한 달에 2000만원, 3000만원 이상 벌어요 중국 사람이. 조그만 여행사는 그렇게 전혀 못하죠. 다 죽겠죠.]
지난해 사드 이후 중국 관광객이 끊기면서 일부 여행사들이 직접 따이공 일에 뛰어들었다는 의혹도 제기됩니다.
[B 여행사 관계자 : (특정) 여행사를 끼고 있고 배후에 큰손들이 있는 거예요. 큰손들이.]
면세점들이 대리구매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면세점 관계자 : (수수료 때문에) 1%도 안 됩니다 영업이익률이 지금. 도매상이잖아요. 이게 무슨 면세점입니까? 도매상인데. 저희도 울며 겨자먹기로 파는 거거든요 사실.]
하지만 일부 면세품은 국내에 재유통되며 관련 시장을 교란시킵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 : 정식 유통망을 거쳐서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지 않고 판매가 되는 거를 원해서… 저희가 단속도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요.]
대리구매를 위해 중국인 대상 저가 패키지가 난무하면서 관광 산업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김리희/한국관광통역안내사협회 부회장 : 상도덕이 다 무너진 거죠. (따이공들) 겉으로 봐서는 (중국 국적) 가이드예요. 책임을 안 져도 되는 그런 사람들이다 보니까 이윤 추구밖에 없는 거예요.]
정부가 손 놓고 있다는 목소리도 큽니다.
[여행업체 관계자 : 국내에 (화장품이) 싸게 돌아다니는 게, 이 사람들이 또 넘기는 거예요. 그게 유통이 되니까 한국 유통시장도 지금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면세 혜택이 일부 여행사와 보따리상 몫이 되면서 관광 산업 활성화라는 면세 취지도 무색해지고 있습니다.
관광산업과 유통시장이 더 병들기 전에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