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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탐대실] 평행주차 못하는 건 당신 탓 아니다

입력 2018-04-20 11:33 수정 2018-04-20 11:37

세상은 못 구해도 너의 일상은 구해줄게
작은 탐사, 큰 결실 #소탐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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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못 구해도 너의 일상은 구해줄게
작은 탐사, 큰 결실 #소탐대실


① 평행주차 못하는 건 당신 탓 아니다
② 소탐대실 2018 평행주차 배틀

 
[소탐대실] 평행주차 못하는 건 당신 탓 아니다


친구가 새 차를 뽑았다. 잘나간다는 그랜저였다. 자랑질이 지겨웠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랑질이 멈췄다. 주차 때문에 골치란다. 평소 이용하던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에 차를 댈 수가 없다는 거다. 늦게 퇴근하고 오면 이미 앞뒤 칸에 다른 차가 주차돼 있는데 그 사이엔 도저히 차를 집어넣을 수 없다고 했다. 전에 타던 소형 SUV보다 차가 커지긴 했지만, 하루아침에 평행주차를 못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친구의 주차 실력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주차공간이 정말 작았던 건가? 작은 탐사, 소탐해봤다.


■ 내년부터 '문 콕'은 줄어든다

사실 주차공간이 좁은 건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초 국토교통부는 이른바 '문 콕 사고 방지법'을 발표했다. 「주차장법 시행규칙」의 개정으로 내년 3월부터 주차단위구획의 너비와 길이가 늘어난다는 거다. 하지만 '문 콕'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확장 계획은 직각이나 사선주차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궁금해하는 평행주차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소탐대실] 평행주차 못하는 건 당신 탓 아니다

[소탐대실] 평행주차 못하는 건 당신 탓 아니다


■ 평행주차 구역 크기는 바뀌지 않는다

주차단위구획의 기준은 크게 '평행주차형식의 경우'와 '평행주차형식 외의 경우'로 나뉜다. 이번 개정에 포함되지 않은 평행주차형식을 살펴보자.
 
[소탐대실] 평행주차 못하는 건 당신 탓 아니다

평행주차는 일반적으로 너비 2m, 길이 6m 이상의 주차공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주거지역, 즉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집 앞 골목의 주차공간은 최소 길이가 5m로 설정되어 있다. 앞서 주차난을 호소했던 친구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소탐대실은 5m짜리 주차공간에 집중해 더 알아보기로 했다.


■ 5m 평행주차 구역, 실제 존재한다

현장조사를 위해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주거지역을 찾았다. 낮시간이라 골목은 한산했지만, 언뜻 봐도 주차공간이 비좁아 보이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소탐대실] 평행주차 못하는 건 당신 탓 아니다

[소탐대실] 평행주차 못하는 건 당신 탓 아니다

한 블록에 줄지어 있는 평행주차공간의 길이를 측정했다. 이곳에 위치한 19개의 주차공간 중 18개의 길이가 5m 안팎이었다. 심지어 5m보다 작은 곳도 있었다.
 
[소탐대실] 평행주차 못하는 건 당신 탓 아니다

모든 주거지역 상황이 똑같은 건 아니다. 최소 규격만 맞추면 그 이상은 지자체장 재량이다. 찾아보니 기준보다 넓게 설치된 곳도 있었다. 그러나 법률상 최소 길이가 5m기 때문에 여기에 딱 맞춰 설치해도 문제 되지 않는다. 단지 이용하는 사람들이 좀, 꽤, 많이 불편할 뿐이다.


■ 몸집은 커지는데 옷은 그대로

평행주차 구역의 길이는 그대로인데 차는 계속 커지고 있다. 2017년 한 해 동안 인기를 끌었던 제품들의 길이를 살펴봤다. (신형 모델 기준)
 
[소탐대실] 평행주차 못하는 건 당신 탓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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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를 차지한 그랜저의 길이는 4.93m. 이 차를 갖고 골목에서 평행주차를 하려면 여유 공간은 겨우 7cm뿐이다. K7도 여유 공간이 3cm에 불과하다. 카니발은 상황이 더 안 좋다. 차량 길이가 5.1m로 주차공간 자체를 가뿐히 넘겨 버린다. 바로 앞뒤에 소형차가 서 있는 게 아닌 이상, 이 차들이 틈을 비집고 평행주차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 그랜저로 '한 번에' 평행주차하려면 6.5m

평행주차를 쉽게 하려면 주차공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찾아보니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해온 연구자들 여럿 있었다. 2009년 영국에서는 주차공간의 길이를 구하는 공식이 발표됐다. 자동차의 바퀴 간격, 회전 반지름, 앞 차량의 너비 등을 대입해 평행주차를 위한 최소 간격을 산출하는 방법이다.
 
[소탐대실] 평행주차 못하는 건 당신 탓 아니다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가 있었다. 2014년 연세대학교 연구진은 자동 주차 차량이 평행주차를 할 때 필요한 최소 간격을 알아내는 공식을 제시했다. 두 연구 모두 추가 전·후진 없이 '한 번에' 차가 들어갈 수 있는 평행주차를 전제조건으로 했다.
 
[소탐대실] 평행주차 못하는 건 당신 탓 아니다

이 공식들을 본 여러분의 반응 예상 가능하다. '어렵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간혹 아는 분도 있겠다). 우리도 그랬다. 이 공식을 해석해보려 노력했다. 실패했다. 결국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2014년 연구를 진행했던 논문 저자에게 직접 요청했다. 실제 상황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계산해보기로 했다. 공식에 대입된 차량은 그랜저HG다.
 
[소탐대실] 평행주차 못하는 건 당신 탓 아니다

계산 결과 한 번에 평행주차에 성공하려면 두 공식 모두 최소 6.5m의 간격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진 주차 시 1회 전진을 추가할 경우 6m, 4회의 전·후진을 추가하면 5.6m가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 경차 많이 타는 일본도 평행주차 6m 이상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미국, 영국, 일본, 독일, 싱가포르 등의 가이드라인을 조사해 국내와 비교해봤다.
 
[소탐대실] 평행주차 못하는 건 당신 탓 아니다

너비는 조금씩 차이를 보였으나 길이는 모두 6m 이상을 권장하고 있었다. 우리보다 경차 비중이 높은 일본, 영국도 평행주차공간을 넓게 구획한 거다.


■ 그런데 왜 우리는 평행주차를 5m로 정했을까

알면 알수록 5m는 비현실적이란 생각이 든다. 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있는지 없는지를 기준으로 6m, 5m 차이를 두는 건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주거지역이라고 해서 5m 평행주차를 하라는 건 상식 밖이다.

하물며 운전면허 시험을 볼 때도 이것보다는 컸다. 2016년까지 2종 면허 도로주행에 포함됐던 평행주차 코스 규격은 6~7.5m였다.
 
[소탐대실] 평행주차 못하는 건 당신 탓 아니다

주거지역의 평행주차 기준이 처음부터 5m였던 건 아니다. 1995년 법률 개정 이후 지금처럼 보도와 차도가 분리된 곳은 6m, 그렇지 않은 곳은 5m로 나눈 거다. 2009년 법제처는 '주차공간이 부족한 주거지역에서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 규격보다 작은 주차구획을 허용한 것'으로 그 취지를 해석했다.


■ 문 콕 방지도 중요하지만 내 범퍼도 소중하다

운전자라면 자의든 타의든 한 번쯤 차에 흠집 내본 경험이 있을 거다. 눈에 안 띄는 상처라도 얼마나 속상했나. 문 콕 방지도 중요하지만 내 범퍼도 소중하다. 적어도 차가 다치지 않을 정도의 주차공간은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소탐대실] 평행주차 못하는 건 당신 탓 아니다
(출처 : www.guinnessworldrecords.com)

평행주차 기네스 기록 보유자는 영국의 스턴트 드라이버 알리스타 모팻이다. 2015년 피아트500으로 가장 좁은 평행주차(Tightest car parallel parking) 기록을 세웠는데, 당시 7.5cm의 틈을 두고 성공했다. 이처럼 멋있는 드리프트 주차는 아니지만, 어쩌면 우리는 오늘도 기록 경신에 도전하고 있는지 모른다.


소탐대실 끝.

#저희는_작은_일에도_최선을_다하겠습니다

기획·제작 : 김진일, 김영주, 박준이

 
[소탐대실] 평행주차 못하는 건 당신 탓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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