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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2018년의 봄날, 그리고 곰팡이 꽃'

입력 2018-04-02 21:20 수정 2018-04-02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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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가볼러지. 쓰레기를 뜻하는 Garbage와 학문을 뜻하는 Logy를 붙여 만든 용어로 쓰레기학이라 부르는 사회학의 한 분야입니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통해 특정 지역이나 시대의 생활실태를 파악하는 연구방법…

고고학자들 역시 고대인의 쓰레기장이었던 조개무지에서 당시 생활상을 유추했다고 하니, 현대에도 역시 같은 공식은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쓰레기를 석 달 모으면 아파트 한 채를 꾸밀 수 있다" - 넬슨 몰리나 전 뉴욕시 환경미화원

30년 넘게 쓰레기를 모아 박물관을 차린 뉴욕시의 환경미화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나리자 그림과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장식품. 

야구선수의 사인볼까지 등장하는 그의 쓰레기 수집품은 뉴욕 시민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었지요.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의 쓰레기 박물관 역시 국보급으로 지정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가 하면 작가는 쓰레기를 일컬어 '곰팡이 꽃'이라 했습니다.

하성란의 소설 < 곰팡이 꽃 >의 주인공은 타인의 쓰레기를 몰래 뒤지며 그들의 생활습관을 몰래 상상해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이어트 콜라, 녹차의 티백 찌꺼기…
모두 저열량의 음식들…
맨 밑바닥에는 손도 대지 않은
생크림 케이크가 문드러져 있다"
 - 하성란 < 곰팡이 꽃 >

작품이 쓰인 시기는 지난 1995년 쓰레기 종량제가 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점…

쓰레기를 주제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은 바로 그 쓰레기로 표현되는 당시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습니다.

"쓰레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쓰레기야말로 숨은그림찾기의 모범답안"
 - 하성란 < 곰팡이 꽃 >

작가는 삶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쓰레기가 남긴 사연들을 택했다지만…

2018년의 봄날.

'곰팡이 꽃'의 주인공이 다시 존재한다면 그는 그 어떤 쓰레기도 뒤질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넘치는 것은 비닐과 페트병이고, 그것이 결국 우리의 일상을 지배해왔다는 것을 새삼스레 확인하는 것일 뿐.

따지고 보면 석 달만 모으면 아파트 한 채를 꾸밀 수 있다는 그 다양한 쓰레기 역시 결국 가장 두려운 비닐과 페트병으로 수렴된다는 것.

썩지 않는 그것들은 이미 예견된 비극을 이제 눈앞의 현실로 들이밀고 있는 중이지요.

그러니 쓰레기 종량제 23년 만에 소설 '곰팡이 꽃'은 제목만큼이나 모순된 낭만주의가 돼버렸다고나 할까…

오늘의 앵커브리핑, 사족은 이렇습니다.

지난 2주 동안 간단없이 초미세먼지에 시달리고 있는 처지에서 보자면 중국은 왜 늘 가져가던 페트병은 안 가지고 가겠다는 것이며, 그토록 받기 싫다는 초미세먼지는 저리도 계속 보내고 있는 것일까…

사족이라기보다는 그저 푸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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