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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감옥의 열쇠'

입력 2018-03-01 21:26 수정 2018-03-02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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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알퐁스 도데의 1871년 작 '마지막 수업'은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더욱 짠하게 읽혀 온 작품입니다.

소설은, 바로 내일부터 모국어인 프랑스어가 금지되고 독일어로만 수업이 진행될 예정인 프랑스 사람들의 마지막 수업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프랑스인들의 프랑스어에 대한 자부심은 누구 못지않은데 언어를 독일어로 바꾸라 하니 그 절망감은 비할 데 없이 컸겠지요.
 

국민이 설혹 노예의 처지에 빠지더라도
국어만 잘 지키고 있다면
자기가 갇힌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 알퐁스 도데 < 마지막 수업 >

< 마지막 수업 >을 진행한 선생님이 던진 그 말은 우리의 과거와도 겹쳐 들리며 여운을 주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지시로 한글 수업이 완전히 폐지된 1941년부터 이 땅에서도 모국어는 일본어가 대신했습니다.

총독부를 찾아가서 조선어를 아예 없애버리자고 주장했던 친일파 현영섭의 표현에 따르자면 조선어가 필요한 사람은 오직 "조선 민족의 독립을 공상하는 돈키호테 같은 족속들" 뿐이었기 때문이었겠죠.

그렇게 해서 성한 일본말과 사라져 간 우리말의 엇갈림의 결과는?
 

1880년대 이후 일본어에서
우리말에 들어온 어휘는
3634단어"

- 이한섭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명예교수

이렇습니다.

일제의 강제병합에서 벗어난 지 이미 73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무려 3600여 개의 일본말이 변형된 형태로든 원래의 형태로든 우리의 일상 속에 남아있다는 연구결과가 말해줍니다.

물론 해방 후에 새로 들어온 일본말도 무시 못 할 정도로 많겠지만, 3600개의 단어라면 사실 그것만 가지고도 하나의 언어를 완성할 수 있는 숫자지요.

그러나…'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외래어로서의 일본말을 굳이 그렇게 적대시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에 잠시 빠지다가도 얼핏 소스라치는 것은 왜일까…

엊그제 저희는 사상 처음으로 발견된 일본군의 '위안부 피해자' 학살 직후 동영상을 보도해드렸습니다.
 

너무나 참혹하여 대부분을 가려서 전해드려야만 했습니다.

물론 일본은 어제도 유엔에서 일본의 위안부 강제징집은 날조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비록 일상 속에서 3000 개가 넘는 일본말을 쓰고 있더라도 그렇게 가끔씩이라도 소스라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참혹하게 스러져 간 소녀들과…또한 알퐁스 도데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가 비록 노예의 처지에 빠져있었다 하더라도 우리말을 잘 지켜냄으로써 우리가 갇혀있던 감옥의 열쇠를 쥐고 지켰던 이'들에 대한 예의 때문이 아닐까…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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