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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대연각, 그리고 슬픔에 잠긴 도시'

입력 2017-12-2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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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스무 살 대학생 민병무 씨는 작은 음악 공연을 마치고 동료들과 호텔에 묵게 됐습니다. 성탄절을 맞아 선물받은 유명 호텔의 숙박권은 그의 마음을 설레게 했을 것입니다.

그곳의 이름은 대연각. 다음날 아침인 1971년 12월 25일 아래층에서 폭발한 프로판가스는 역대 최악의 화재 참사를 불러왔습니다.

사망자만 163명. 연기 자욱한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헬리콥터에 구조되다가 떨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저를 비롯한 전 국민이 텔레비전 생중계로 지켜보았던… 잔인했던 크리스마스 아침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12월 25일, 작은 도시 제천은 깊은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막혀있는 비상구와 멈춰선 스프링클러. 이윤을 위해 불법 증축했던 위험천만한 건물은 순식간에 29명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46년 전 하늘을 까맣게 물들였던 그날과 묘하게 겹쳐지는, 까맣게 그을린 건물의 흔적. 심지어는 바로 그 성탄절인 오늘 오후에도 대형 화재는 발생해서 또 한 명의 생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안전불감증에 절망마저 느껴질 무렵에… 우리가 만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손님들을 비상계단으로 먼저 탈출시킨 뒤에 정작 자신은 유독가스를 마셨던 건물의 이발사. 2층 창을 뜯어내고 갇혀있는 사람을 구해낸 70대 할아버지와 중학생 손자가 있었고 외벽 청소용 차량을 몰고 높은 층에 매달린 생명을 구해낸 시민이 있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타인에게 먼저 손을 내민 영웅들은 그곳에 존재했다는 것….

그러고 보면 46년 전 그날 아침에도 산타클로스는 존재했습니다.

매캐한 냄새를 맡고 손님을 피신시켜 수십 명의 생명을 구했던 종업원, 로프와 장비를 들고 구조를 도왔던 건설노동자들과 비록 결국 숨지긴 했지만, 갇혀있던 대만 공사를 사투 끝에 구해냈던 소방대원들.

오늘 이 땅에 태어난 예수가 타인을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 올랐듯이 세상은 그 선물 같은 이들의 마음으로 조금이나마 위안받고 성장하고 한 걸음 나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노래가 있습니다. 1971년 크리스마스 날 아침 대연각에서 목숨을 잃었던 스무 살의 그 청년.

그의 동생 민병호 씨는 6년이 지난 뒤에 생전의 형이 작곡했던 노래를 대신 세상에 발표했습니다.

"길은 험하고 비바람 거세도 서로를 위하며 눈보라 속에도 손목을 꼭 잡고 따스한 온기를 나누리"

세상은 그들에게 비극을 가져왔지만 그 비극을 치유하는 것 또한 세상이라는 따뜻한 크리스마스의 기적.

오늘(25일)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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