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미국 가톨릭 교회를 뒤흔든 성추문의 중심에 섰던 인물인 버나드 로 추기경이 선종했다.
교황청은 20일 성명을 내고 "로 추기경이 숙환 끝에 오늘 아침 선종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뇨병 합병증 등으로 투병해오다 이날 이탈리아 로마의 한 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로 추기경은 자신의 교구에서 잇따라 발생한 사제들의 아동 성학대 추문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02년 보스턴 대교구장에서 물러난 뒤 2004년 로마로 이주, 줄곧 로마에서 생활해왔다.
그는 아동 성학대를 저지른 휘하 사제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단순히 다른 교구로 옮기게 함으로써 이들에게 면죄부를 줬을 뿐 아니라 이들이 옮긴 교구에 범죄 사실에 대한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가톨릭의 성추문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같은 보스턴 대교구의 성추문은 2002년 현지 언론 보스턴글로브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의 취재와 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로 추기경은 보스턴글로브의 당시 취재 과정을 그려 작년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영화 '스포트라이트'(2015)에서도 주요 인물로 다뤄지기도 했다.
보스턴 대교구의 성추문이 밝혀진 것을 기폭제로 미국 다른 지역은 물론 아일랜드, 독일, 호주 등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성추문과 조직적인 은폐가 있었음이 속속 드러나며 가톨릭 교회는 당혹스러운 처지에 놓였고, 아직도 그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취임 이후 성직자들의 교회 내 아동 성추행 사실과 이를 오랫동안 은폐해온 교회 내부의 문제가 세계 곳곳에서 드러나며 가톨릭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자 아동보호위원회를 창설, 문제 해결에 부심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로 추기경의 선종 소식이 전해진 뒤 조전을 통해 "그의 영혼의 안식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며 애도를 표현했다.
사제들에 의한 아동 성폭력에 무관용 원칙을 천명한 교황은 그러나 특별히 로 추기경이 연루된 아동 성추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로 추기경은 2004∼2011년 로마의 4대 성당 중 한 곳인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수석 사제로 활동하는 등 가톨릭 교단을 뒤흔든 파문 이후에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왔다.
그는 2005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 미사를 집전, 사제들에 의한 아동 성학대 피해자 단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로 추기경의 장례 미사는 오는 21일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