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오늘(22일) 오전부터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진행 중입니다.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던 김이수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때와는 다르게 큰 쟁점 없이 차분하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무난하게 인준안이 통과될 수 있을까요. 야당 발제에서 오늘 청문회 상황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기자]
[이진성/헌법재판소장 후보자 :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되어도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시인과 다름없이 살아가시는 인정 많은 우리 국민들이 헌법이라는 우산 아래 기본적 인권을 보장받으면서 비합리적인 차별을 받지 않으실 수 있도록 헌법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에서 이 시를 말씀드렸습니다.]
네, 오늘 청문회는 이렇게 문학적으로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 후보자가 시를 인용해 인사말을 하자, 청문 위원들은 "참신하다. 감동적이었다"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초반부터 제법 훈훈한 분위기가 조성이 된 거죠.
사실 저는 내심 "상당히 거친 청문회가 되지 않을까" 예상을 했습니다. 이 후보자가 사전에 제출한 답변서에 이런 대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헌법재판관으로 재직하는 중에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결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보충 의견을 통해 국가 최고지도자의 책임을 강조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 기억난다"라고 답을 했습니다.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답변이죠. 이 후보자는 청문회에서도 탄핵 당시 자신이 보충의견을 낸 이유를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이진성/헌법재판소장 후보자 :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서 저녁까지 그 시간에 전 대통령께서 무엇을 하셨는지에 관해서 명백히 밝혀져 있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 분야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은 당사자 본인입니다. 워낙 특별한 날이라서 모든 국민이 자기가 한 일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밝혀달라고 해서 소명은 했습니다만 그렇게 납득할만한 소명이 되질 못했습니다.]
사실 이 후보자는 박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이른바 '세월호 7시간' 문제를 가장 집요하게 따져물었던 재판관입니다. "세월호 사고 당일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이진성/헌법재판소장 후보자 (1월 10일) : 피청구인의 기억을 살려서 그 부분을 밝혀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지금 이 답변서에 따르면 10시에 보고를 받아서 알게 된 것처럼 기재가 돼 있는데, 그전에 TV 등을 통해서 9시 조금 넘어서부터 보도되기 시작했는데 피청구인은 TV를 통해서 확인을 하지 않았는지 그런 부분 밝혀주시기 바라고요.]
자,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아픈 기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청문회에서도 자유한국당이 이 후보자를 거칠게 몰아붙이지 않을까, 예상을 했는데, 전혀 뜻 밖이었습니다.
[권석창/자유한국당 의원 : 지금까지 청문회가 야당의 경우에는 흠집 내기로 일관돼서 국민들이 염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개인의 재산증식 과정이나 카드 결제 내역 등을 살펴본 결과 큰 흠은 없었다, 라고 저희들은 생각을 합니다.]
[송희경/자유한국당 의원 : 보수와 진보의 분류에 매몰되지 않겠다, 라고 모두 말씀 주셨습니다. 굉장히 소중한 말씀을 주셨고…]
[이철규/자유한국당 의원 : 헌법재판관으로 임용되실 때 이미 인사청문을 한번 거치셨습니다. 그 이후에 다시 인사청문회 자리에 서실 수 있다, 라는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이진성/헌법재판소장 후보자 : 지난번 인사청문회를 마친 다음 국회 쪽은 쳐다보지도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정말 5년 만에 다시 왔는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이철규/자유한국당 의원 : 오늘 지난번하고 달리 모두들 부드럽게 나가는 것…]
부드러운 분위기의 '이진성 헌재소장 후보자 청문회'
물론,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까지 한 마당에 굳이 세월호 7시간 문제를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박근혜 지우기'가 한창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른바 '보수 본색'을 드러낸 질의가 없진 않았습니다. 이 후보자도 자유한국당 위원들을 크게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답변을 내놨습니다.
[송희경/자유한국당 의원 : 북한을 주적으로 봐야 된다, 동의하십니까?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폐지로 가야 되는지 강화해서 가야 되는지 어떤 의견이 있으십니까, 지금?]
[이진성/헌법재판소장 후보자 : 남용을 방지하는 그런 방향으로 해야 되고 문제가 있는 것은 개정하는 것이 타당하지, 폐지까지는 하지 않아야…]
자, 오늘 청문회에서는 이 후보자의 개인 이념이나 도덕성과 관련한 논란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유한국당 내부에는 어제 홍종학 장관 임명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반대하자"는 의견도 일부 있습니다. 하지만 인준안 표결이 이뤄진다면, 이번에는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에 좀 더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자, 오늘은 오랜만에 시 한 편으로 발제를 정리하겠습니다. 지금 청문회에 참석 중인 이진성 헌재소장 후보자가 직접 낭독해 드립니다.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상 밥집 문턱엔 거지 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 짜리 두 개를 보였다"
네, 김종삼 시인의 '장편2'입니다. 이 후보자가 5년 전 헌법재판관 청문회 때 직접 시를 낭독했던 장면입니다. 당시 이 후보자는 "이 시에 나오는 소녀처럼, 밑바닥에서 고달픈 삶을 살지만 의연함을 잃지 않는 많은 국민들의 손을 잡고 가겠다"는 다짐을 밝혔습니다.
오늘 청문회에서 과연 이런 다짐을 실천할 수 있는 헌재소장 후보자인지 철저히 검증을 받아야겠습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여야 정치인 모두가 이 시에 나오는 소녀를, 그러니까 고달프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국민들을 한 번쯤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오늘 야당 기사 제목은 < 이진성 청문회…인준안 표결에 청신호? >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