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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뚝심' vs '마이웨이'…다른 듯 비슷한 한미정상

입력 2017-06-30 09:57 수정 2017-06-3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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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미국 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환영 만찬에서 처음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걸어온 삶의 궤적은 매우 대조적이다.

피란민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낸 문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 구속됐고 강제 징집까지 당했다. 제대 후 사법고시에 합격해 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지만 시위전력 때문에 판사로 임용되지 못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부동산 개발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업을 이어받아 거침없는 성공가도를 달렸다. 부동산 사업의 성공을 바탕으로 방송·연예·스포츠로도 영역을 확대한 트럼프 대통령은 '괴짜' 억만장자로 불렸다.

이처럼 정반대의 인생역정을 겪은 두 정상이지만 강한 카리스마와 뚝심, 쉽게 흔들리지 않는 소신으로 스스로 세운 원칙을 관철해온 점은 유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권변호사의 길 걸은 흥남철수 피란민의 아들

= 문재인 대통령은 1953년 1월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인 부모가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미군 함정에 몸을 실었던 게 남한 정착으로 이어졌다.

피란민의 아들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문 대통령은 부산의 명문 경남중·고에 진학했고 재수 끝에 경희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유신 반대 운동을 벌이다 구속됐고 강제로 징집돼 특전사에서 군 생활을 해야 했다. 그 와중에 학교에서 제적됐고 군 제대 후에야 사법시험에 몰두할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은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지만, 시위전력 때문에 판사로 임용되지 못했다. 이때 문 대통령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문 대통령은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간 이유는 변호사가 단순히 밥벌이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6월 항쟁 때인 1987년 부산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 시 노 전 대통령은 상임집행위원장, 문 대통령은 상임집행위원을 맡으며 부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다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 출마하자 문 대통령은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았고 함께 청와대에 입성했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 수석을 맡았고 마지막에는 비서실장까지 맡으면서 참여정부의 처음과 끝을 같이 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문 대통령은 정치와 선을 긋고 살았으나 그를 부르는 정치권의 목소리는 날로 커졌다. 결국,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 출마했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석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으로 탄핵됐고 문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대권에 도전했다. 본인 스스로 "재수에 강하다"고 했던 문 대통령은 두 번째 대선에서 압도적인 표 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넌 해고야"…'괴짜' 억만장자 출신 트럼프

= 트럼프 대통령은 부동산 사업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가업을 이어받아 부동산 사업에 뛰어든 트럼프 대통령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100만 달러를 밑천으로 공격적인 경영에 나섰다.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고층 빌딩을 지었고 1983년 뉴욕 맨해튼에 58층짜리 '트럼프 타워'를 지어 이름을 알렸다.

이후 전 세계를 무대로 굵직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은 성공 가도를 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본업인 부동산 사업에서 성공하자 방송·연예·스포츠 등으로 활동영역을 넓혀나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04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NBC의 인기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인 '어프렌티스'(Apprentice·수습생)'를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트럼프 대통령의 회사에 입사를 희망하는 수습생을 받아 몇 주 동안 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이를 평가해 실적이 저조한 수습생을 탈락시키는 형태로 진행됐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수습생에게는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회사 중 하나를 1년 간 경영할 수 있는 파격적인 우승 상품이 주어졌지만, 탈락자는 가차 없이 짐을 싸야 했다.

이 방송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탈락자를 지목하면서 말한 '넌 해고야'(You're fired)는 한때 미국 사회에서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프로레슬링을 공식 후원하기도 했다. 열렬한 프로레슬링 팬인 트럼프 대통령은 수차례 '트럼프 타워'에서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 대회인 레슬마니아를 개최한 바 있으며 2013년에는 WWE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1999년 트럼프 모델 매니지언트라는 모델회사를 설립하는가 하면, 미인대회도 개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96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인수해 2015년까지 미스 유니버스와 미스 USA 대회를 운영한 바 있다.

이처럼 대선 출마 직전까지도 '괴짜 억만장자'라는 이미지가 따라 다닌 탓에 그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대통령에 당선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대선 재수 성공·0% 확률 뒤집은 승리…뚝심의 정치 공통점

= 두 정상이 걸어온 삶의 궤적은 확연히 다르지만 정치 스타일은 의외로 유사한 측면이 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석패한 뒤 와신상담하며 힘을 길렀다.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맡아 의회 내 입지를 다졌고, 자신을 도울 인재를 끌어모았다.

덕분에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누구도 예상 못한 일대 사건이 벌어졌을 때 준비된 대통령의 면모를 보일 수 있었다.

대선 기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황교안 전 국무총리, 안희정 충남지사,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등이 차례로 문 대통령의 대항마로 부상했지만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뚝심을 보였고, 결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미국인 대부분은 괴짜 억만장자가 또 한번 별난 일을 벌인다고 생각했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었 때 트럼프 대통령의 초기 지지율은 2%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강한 미국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고, 거침없고 직설적인 말투로 백인 보수층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을 두고 공화당 내에서조차 비판이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뜻을 굽히지 않고 '마이웨이'를 고수했다.

대선 직전까지 미국 주류 언론은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당선을 확신했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적같은' 승리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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