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 논의'를 전격 제안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주 전만 해도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을 앞세워 "지금은 개헌 논의를 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던 박 대통령이 갑자기 개헌론을 꺼내들자 정치권에서는 '국면전환용' 카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선 야권 일각에서는 현실적으로 박 대통령 임기 내 개헌이 이뤄지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개헌론에 불을 지핀 것 자체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최근 국정 수행 지지율이 20% 중반대로 하락한 상황에서 현 정부가 개헌 논의를 이끌어 가기에는 무리라는 얘기다. 결국 개헌론이 추동받기 위해서는 차기 유력 대권주자들이 여론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경우 올해 말 사무총장 임기가 끝날 때까지 개헌에 대한 입장을 내놓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2위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개헌에 있어서는 떨떠름한 반응이다.
문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의 개헌 논의 제안이 있은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젠 거꾸로 '블랙홀'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냐"며 국면전환용 제안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야당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우병우 사태, 최순실 게이트 등으로 악화된 여론을 반전시키는 동시에 야권 1위 대선주자인 문 전 대표를 포위하는 등 야권 분열을 위한 카드로 개헌론을 들고 나온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당장 개헌 필요성을 꾸준히 제시해 온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가 "시기적으로는 적정한 시기가 되지 않았나 본다"고 환영 의사를 드러냈다. 그는 개헌론 제기가 국면전환용이라는 지적에도 "국회 내에서 개헌이라는 게 방향이 뻔한 거 아니냐"며 "그걸 가지고 뭐 이러고 저러고 시비할 게 별로 없다"고 일축하며 문 전 대표와 반대 입장을 보였다.
민주당 내의 반(反) 문재인 그룹과 친노 독식에 반대하는 대권 주자들의 경우에도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 불과해 '자력' 당선이 힘든 만큼 분권형 개헌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개헌을 놓고 야권 대선 주자간 입장이 갈리면서 분열 양상을 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7공화국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손 전 대표도 개헌을 매개로 정의화 전 국회의장, 이재오 전 의원 등과의 교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들이 김종인 전 대표와 손잡고 개헌 추진에 힘을 보탤 경우 야권의 향배는 안갯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
또 손 전 대표와 연대 내지 합류를 기대하는 국민의당은 개헌에 대해서는 긍정적 반응이다. 민주당에 비해서는 참여 의사가 더 적극적이다. 때문에 향후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개헌 추진 방향을 놓고 이견을 보일 수도 있다.
여기에다 박 대통령의 경우 여야 정치권에서 먼저 개헌 논의를 요구해 시작한 만큼 임기 내 개헌이 불발돼도 잃을 게 없다는 포석도 깔려 있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실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금 아마도 임기 마지막 개헌에 대한 논의들이 전개될 텐데 합의까지 이룰 수 있을 지 모르겠다"며 "합의를 못하면 국회에 책임 돌리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