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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강제 낙태·단종' 항소심도 국가배상 책임 인정

입력 2016-09-23 13:25

원심과 같이 국가배상 책임 인정…위자료 액수 변경

"남녀 차별 부당" 원고 모두에게 2000만원씩 배상

'천벌이라면 가혹하오, 인위라면 가증스럽소' 재판서 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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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강제 낙태·단종' 항소심도 국가배상 책임 인정


'한센인 강제 낙태·단종' 항소심도 국가배상 책임 인정


'한센인 강제 낙태·단종' 항소심도 국가배상 책임 인정


한센인들이 "정부의 강제단종·낙태 정책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항소심도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고법 민사30부(부장판사 강영수)는 23일 피해 한센인 엄모씨 등 139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국가는 원고에게 각 2000만원씩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한센인들에 대해 자녀 출산을 금지·제한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낙태 및 정관절제 수술을 시행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이같은 정책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자기결정권 등 기본적 권리를 침해해 위법하다고 판단, 국가가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한센인들에 대해 시행된 낙태 및 정관절제 수술은 국가의 미흡한 산아제한 정책에 의한 것"이라며 "국민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국가는 사회·가족들에게 버림받아 나약한 한센병 환자들에게 이같은 정책을 시행했고, 이로 인해 한센인들이 느꼈을 굴욕감·절망감은 적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어 "낙태 수술을 받은 여성 원고들의 경우 태아를 잃었다는 상실감과 죄책감이 평생 한이 됐을 것"이라며 "남성 원고들의 경우 복원이 가능했다 하더라도 당시 수술을 받으면서 느꼈을 성정체성의 혼란과 상실감, 두려움과 치욕은 잊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다만 국가가 여성 원고에 4000만원, 남성 원고에 3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에 대해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비춰보면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남성 피해자와 여성 피해자들이 받은 수술은 차이가 있지만 합리적으로 차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위자료 액수를 산정함에 있어서도 평등의 원칙을 적용했다"며 "국가 정책으로 인한 수술은 성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각기 받았을 정신적 고통의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가는 해방 이후 한센병에 대해 체계적인 대책을 세우고, 한센인의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계몽 정책을 실시한 바 있다"며 "국가가 한센인사건법을 제정해 한센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점 등을 모두 참작했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국가가 원고 각각에게 20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 주문을 읽기 직전 한센병환자 자치회에서 지난 1959년 발간한 잡지인 '성하(星河)'에 실린 '경계선'이라는 시를 인용했다.

'천벌이라면 가혹하오, 인위라면 가증스럽소. 누가 만든 죄이길래 사할 길 없어. 눈물이 자욱자욱 맺어진 선을 두고 몇천 번 울고 울어도 지울 수 없어 조상도 없는 이방인이 되어'

재판부는 "이 판결은 비록 법률적으로 국가의 위법 행위를 인정하지만 이는 국가 책임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국민 대다수의 책임이기도 하다"며 "자신의 소명과 신념을 갖고 자기가족처럼 한센인들을 따뜻하게 보살핀 의료인, 종교인, 자원봉사자들도 있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이 판결로 한센인들이 겪었던 아픔과 고통이 치유될 수 있고, 우리사회 근간을 이루는데 작은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 6월 사법 사상 처음으로 전남 고흥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특별재판을 열고 한센인 환자들을 증인신문한 바 있다. 아울러 소록도병원 내 시설을 직접 살피는 현장검증도 함께 실시했다.

이날 선고 직후 소송 원고 한센인 및 원고 측 변호인들은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의 위법 행위는 인정됐으나 위자료가 1심과 달리 2000만원만 인정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며 "돌아가신 한센인들의 영전에 고작 2000만원이라는 숫자가 무엇을 의미할지 답답하고 쓸쓸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수십년간 당한 피해가 말할 수 없는 입장인데도 이같은 판결은 너무 억울하다"며 "돈을 따지기 이전에 국가에서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고 응분의 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아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센인들에 대한 강제 정관수술은 1935년 전남 여수에서 처음 시행됐다. 소록도병원에서는 이듬해부터 한센인들을 상대로 강제 정관·낙태수술을 해왔다.

하지만 한센병이 유전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고 정부는 2007년 '한센인 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관련법에 따라 설치된 진상규명위원회는 한센인들의 피해 사실을 인정하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이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피해를 입은 한센인들은 총 5건의 소송을 냈고 법원은 강제 낙태수술 피해자에 4000만원, 정관수술 피해자에 30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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