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를 신청한 한진해운에 대한 조양호 회장 일가의 회생의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진그룹을 이끌고 있는 조 회장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채권단의 사재출연 요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것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조 회장과 슬하의 조현아 대한항공 호텔사업본부장, 조원태 대한항공 총괄부사장, 조현민 한진관광 대표 등 3남매가 보유하고 있는 상장 계열사 주식평가액(우선주 포함)은 지난달 31일 기준 3017억원이다.
우선 조 회장은 대한항공 보통주 5060주와 우선주 2만6698주, 한진칼 보통주 942만2418주와 우선주 1만2901주, ㈜한진 보통주 82만2729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주식의 가치는 약 2013억원이다.
조 본부장은 한진칼 보통주 131만3097주와 ㈜한진 보통주 4000주를, 조 부사장은 한진칼 보통주 131만4532주와 ㈜한진 4000주, 조 대표는 한진칼 131만716주와 ㈜한진 4000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3남매의 주식평가액은 1004억원이다.
앞서 한진그룹은 채권단에 대한항공 4000억원 유상증자에 더해 계열사 및 조 회장 사재출연 등 1000억원의 추가 지원 내용을 담은 자구안을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조 회장은 당초 사재출연의 경우 내년 7월 기준 자금이 부족할 경우에 한해 실행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 회장 일가가 조건부로 사재출연을 한 것에 대해 한진해운을 살릴 의지가 전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앞서 채권단은 한진해운에 대한 추가 자금 지원의 조건으로 '7000억원 유동성 확보'를 내걸었다. 4000억원 지원을 고수하던 한진에게 사실상 조 회장 일가가 주식을 팔아서라도 한진해운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이라는 무언의 압박을 했던 셈이다.
논란이 되는 점은 한진에서 제시한 기존 대한항공의 4000억원 지원에 조 회장 일가가 보유한 주식 규모를 더하면 채권단이 요구했던 7000억원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채권단의 요구가 조 회장 일가의 사재출연을 염두에 둔 카드였을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30일 연 브리핑에서 "단 한 푼의 혈세도 들어가지 않은 현대상선의 경우를 볼 때 한진해운에도 국민의 혈세가 함부로 쓰이면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는 조 회장 일가의 책임 경영에 대한 아쉬움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한진해운에 대한 처리과정은 법정관리 위기까지 몰렸던 현대상선의 경우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즉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및 그의 모친 김문희 용문재단 이사장이 5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하며 현대상선을 살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조 회장 일가는 사재출연에 대한 압박이 꾸준히 있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다 막판까지 몰려서야 조건부 사재출연을 약속하는 데 그쳤던 것이다.
때문에 조 회장 일가가 한진해운을 진정 살릴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룹 경영권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그룹 지주사 및 핵심 계열사 주식을 모두 파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 회장이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보다 적극적 행보에 나설 수 있었음에도 이를 사실상 회피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일각에서는 조 회장이 조기회생이 어려워 보이는 한진해운에 대해 '밑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지원을 하다 그룹 전반에까지 위기가 닥치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 선택을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조 회장은 법정관리 결정 후 임직원들에게 "한진해운이라는 한 회사의 회생이라는 차원을 넘어 한국 해운의 명맥이라도 유지해야 한다는 저희의 간절한 호소가 채권단을 설득하는데 부족했던 것 같다"며 편지를 보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만약 조 회장 일가가 한진해운을 어떤 방식으로든 살릴 의지가 있었다면, 향후 실행에 옮기든 그렇지 않든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이라도 다 팔아 자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싶다"라며 "그런 상황에서 조건부 사재출연을 언급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비판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