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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렌 흔적 지우기'…에르도안, 왜 교육계 정리에 집착하나

입력 2016-07-2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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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렌 흔적 지우기'…에르도안, 왜 교육계 정리에 집착하나


터키 정부가 쿠데타에 연루된 세력을 뿌리뽑겠다며 교육 기관을 집중적으로 손보고 있다. 특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숙적이자 정부가 이번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한 재미 이슬람학자 페툴라 귤렌의 흔적을 없애는 데 주력하는 모양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귤렌 세력의 요새인 '교육 네트워크'를 저격하고 있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쿠데타 실패 이후 정부는 귤렌을 추종한다는 이유로 교사 2만여 명을 해고하고 대학 총장과 학장 1577명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사립학교 524곳과 기숙 교육시설, 시험 준비 기관 102곳 등 모두 626곳의 교육 기관도 폐쇄하기로 했다.

귤렌은 2008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선정한 '세계 최고 100대 지성' 투표에서 노엄 촘스키,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세계적 학자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이슬람 사상가다. 수니파 내 하나피 학파를 따르며, 아나톨리아 수피교의 영향을 받았다. 1999년 지병을 치료한다는 이유로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현재까지 펜실베이니아주 세일러스버그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터키 이슬람주의자들의 정신적 지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60년대 세속주의와 공산주의, 이슬람주의 등 터키 내부에서 이념 갈등이 악화되자 귤렌은 공개 설교를 중단하고 이슬람에 세속주의를 가미한 학교를 세우기 시작했다. 봉사를 바탕으로 이슬람의 가치를 알린다는 '히즈메트'(Hizmet·봉사란 의미) 운동이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양질의 교육을 받는 데 목적을 뒀다. 히즈메트를 통해 성장한 인재들은 다시 정·관계와 기업·미디어 분야에 진출하며 광범위한 '귤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교육시설은 150여개 국에서 1000여 곳이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 9월 케난 에브렌 육군 참모총장이 일으킨 쿠데타 이후 귤렌의 학교는 번창하기 시작했다. 군부가 공산주의의 영향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이슬람 사상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2년 귤렌은 당시 총리였던 에르도안과 함께 교육 제도를 개선하며 직업전문학교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듬해 12월 귤렌과 에르도안은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귤렌 네트워크에 소속된 검사들이 에르도안과 가까운 정치·산업계 인사를 부패 혐의로 재판에 넘긴 것이다. 에르도안이 총리였던 터키 당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국내외 귤렌 네트워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당국이 귤렌 학교에 대한 폐쇄 명령을 내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2014년 8월 총리에서 대통령이 된 에르도안은 본격적으로 이슬람주의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을 강화했다. 우선 공립학교를 이슬람계 종교 고등학교인 '이맘하팁'으로 대거 전환했다. 2014년 터키 전국에 설립된 이맘하팁은 2010년보다 73%나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1928년 언어 개혁으로 사어가 된 오스만어를 이맘하팁에서는 필수 과목으로, 일반 학교에서는 선택 과목으로 채택하게 했다. 지난해에는 공립학교 교육 과정에 종교를 의무로 가르치게 했다.

이런 노력에도 터키 사회에 남아있는 귤렌의 영향력을 제거할 수는 없었다. 히즈메트 운동은 지난 50여년 동안 대학과 병원, 자선 단체, 은행, 언론사 등을 보유한 거대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케냐부터 카자흐스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적의 지지자들이 수입의 5~20%를 히즈메트 관련 단체에 기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9년부터 지병을 치료한다는 이유로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머물고 있는 귤렌에게 직접 찾아와 경의를 표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귤렌을 추종하지 않는 사람까지 이번 '숙청'의 피해를 입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다. 한 학부모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자녀를 귤렌 학교에 보낸 이유가 반드시 그를 추종해서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며, 수준 높은 교육과 교사들의 명성 때문에 그 학교에 보냈다고 설명했다. 귤렌 학교를 나오면 동문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지역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이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남성은 "교사와 연구자들이 귤렌을 지지하지 않는데도 해고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며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귤렌 네트워크와 어떻게든 관련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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