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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늑장 출동' 살인사건 피해 유족, 억대 손해배상 승소

입력 2016-07-1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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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늑장 출동으로 막지 못한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승소했다.

17일 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12일 박모(66)씨는 평소 교제를 반대해 온 아들 A씨의 여자친구인 이모(당시 34세·여)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박씨는 이날 이씨와 전화로 크게 다퉜다. 사흘 전인 9월9일 이씨가 술에 취해 집으로 찾아와 소란을 피운 것에 몹시 화가 나있던 터였다. 이씨는 박씨의 용산구 자택으로 오겠다고 했고 박씨는 부엌에서 흉기를 가지고 나와 이씨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불안감을 느낀 아들 A씨는 오후 9시12분께 "어머니가 여자친구와 전화로 싸운 후 죽이겠다며 흉기를 들고 집으로 오고 있는 여자친구를 기다리고 있다"며 112에 신고했다.

신고 후에도 경찰관이 오지 않자 A씨는 15분 뒤 한 차례 더 신고 전화를 했지만 경찰은 끝내 오지 않았다.

박씨는 오후 9시40분께 자택 근처에서 아들과 함께 있는 이씨를 발견하고는 흉기로 가슴 부위를 찔렀다. 박씨는 평소 우울증이 심해 약을 복용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이씨를 지혈하고 구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이씨는 치료를 받던 중 오후 10시25분 숨을 거뒀다.

알고보니 관할인 용산경찰서 상황실이 서울지방경찰청으로부터 사건 신고를 전달받아 한남파출소 순찰차에 출동 지령을 내렸으나 경찰관들이 중복 신고로 오인해 현장 출동이 늦어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A씨가 첫 신고를 하기 10분 전 살해 현장에서 100m가 채 안되는 주소지에서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돼 출동한 상태였는데, 경찰관들이 이를 A씨의 신고와 동일한 사건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용산서 상황실은 A씨의 2차 신고에 "다른 사건인 것 같으니 바로 출동하라"고 지시했지만 현장 경찰관은 이번에도 계속 '동일한 사건'이라며 따르지 않았다.

용산서 상황실에서 "어머니가 칼을 가지고 있다는데 확인했느냐. 신고자인 아들은 현장에 있냐"고 묻자 해당 경찰관은 "아들이 정상이 아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조금씩 술에 취해있다"고 엉뚱한 보고를 했다.

경찰관은 첫 신고가 접수된 후 24분이 지난 9시36분께야 두 신고가 서로 다른 사건임을 알아채고 현장을 향했지만 이번에는 도로가 막혔다.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박씨가 이씨에게 흉기를 휘두른 후였다.

서울서부지법 민사22단독 황병헌 판사는 이씨의 부모와 자녀 등 유족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83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황 판사는 "신고 내용과 주소가 명확히 다르고 상황실이 확인 요청까지 한 점에 비춰볼 때 24분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경찰관이 과실로 현저하게 불합리하게 공무를 처리해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박씨가 나이 많은 여성이어서 경찰관이 살인사건 발생 전에 현장에 도착했다면 사건을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직무상 의무 위반과 살인사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도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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