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참사 현장에서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던 민간 잠수사들은 당시의 모습을 지옥, 아수라장, 전쟁터라고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안에 살고 있습니다. 매일 무리한 수색 작업을 요구했던 정부의 치료비 지원은 다음 달부터 끊긴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이희정 기자입니다.
[기자]
[황병주/민간 잠수사 : 어떤 아이가 테이블 밑에 끼어 있어. 키가 커요. 키가 큰데 이게 안 빠져 나오는 거야. 내가 아무리 빨리 가자고 해도 안 빠져.]
세월호 선체 수색 작업에 나섰던 황병주 씨는 지금도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황병주/민간 잠수사 : 엄마한테 가자. 그 말이 내 최면이었나 모르겠지만, 진짜 추운데 빨리 엄마, 아빠한테 가자하면 손이 저절로 풀려. 그러면 데리고 올라오고…]
30년 베테랑 잠수사인 황 씨에게도 후유증은 컸습니다.
무리한 잠수로 건강이 악화돼 생업을 접고 대리기사 일을 시작한 지 3개월째.
[황병주/민간 잠수사 : 그래도 한때는 잘 나가는 잠수사였는데, 살고 싶은 의욕이 하나도 없어요. 눈뜨면 어떻게 죽을까. 다른 건 하나도 생각이 안 나고, 어떻게 죽을까.]
지난 17일 숨진 민간 잠수사 고 김관홍 씨도 평소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고 김관홍/민간 잠수사 (지난해 12월) : 수습 현장을 보고는 저도 멘탈이 깨지더라고요. 당시에 지옥이었어요. 아수라장. 전쟁터. 조명탄들 터지고 가족분들 울부짖고.]
개인 자격으로 수색에 투입됐던 민간 잠수사 대부분은 심각한 우울증과 수면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무리한 수색 작업 탓에 감압병을 앓고 뼈가 썩어들어가는 골괴사가 진행 중인 사람도 8명이나 됩니다.
[김상우/민간 잠수사 : 아픈 게 심하면 다른 현장에서 안 받아줘요. 그러니 여기서 어떻게든 치료가 끝나야지. 사실 잠수하면 안되는 상황에서도 들어간 거예요.]
정부는 수습 당시 치료와 보상을 약속했지만, 지난해 치료비를 중단했다가 올 1월부터 다시 지원했는데 7월부터 또 끊기게 됩니다.
[공우영/민간 잠수사 : 억울한 거는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정부에서 정말 우리를 생각해준다면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 줬으면 좋겠어요.]
정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의상자 인정도 받지 못하는 상황.
현행 법이 의사상자를 '직무 외 행위로 구조하다 부상입은 사람'으로 규정하는데 "수색 당시 일당을 받았다"며 직무 행위로 보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를 지원하는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잠수사들은 당장 제 2의 피해자가 나올까 두렵습니다.
[고 김관홍/민간 잠수사 (지난해 9월) : 돈을 벌려고 간 현장이 아닙니다. 저희가 간 게, 양심적으로 간 게 죄입니다.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정부가 알아서 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