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내 가족의 건강을 위해 가습기를 틀었고, 거기서 더 나아가서 살균제를 넣었지만, 이게 가족을 떠나보내는 일이 되게 만든 남은 이들. 그 한분을 저희 기자가 동행취재했는데요. 5년 전 만삭의 아내와 뱃속 아이를 잃었고, 당시 세살이었던 아들은 지금 폐섬유화를 앓고 있습니다.
업체와 정부의 책임규명을 위해 거리로 나선 이 아버지를 신진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지난 26일 오전 8시, 서울 명륜동의 한 고시원.
안성우 씨가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섭니다.
도착한 곳은 서울 정동의 한 시민단체 사무실.
[안성우/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 오늘 영국 대사관에 사안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물품하고 서류 이런 것 챙겨가려고 들렀습니다.]
노란 조끼를 입고 피켓을 챙겨 기자회견장으로 향합니다.
일정을 마친 뒤 점심을 먹으며 회의를 하고, 오후엔 또 다른 회견과 토론회에 참석합니다.
저녁엔 대학 빈 강의실에서 남은 일을 하다 자전거를 타고 귀가합니다.
경기도의 한 자동차 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가장 안 씨의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된 건 2011년 11월.
건강했던 아내는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일주일 만에 사망했습니다. 배 속에서 자라던 7개월 딸 아이도 함께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성우/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 저희 집사람의 사인은 급성호흡부전입니다. 정확한 병명을 모르고 진단을 하지 못해서 폐렴으로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당시 3살이던 아들은 폐섬유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안 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를 묻은 충북 옥천의 한 마을에서 1년 반 동안 지냈습니다. 내성적인 안 씨가 슬픔을 삭힌 방식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세상에 나오게 한 건 충격적인 뉴스였습니다.
[안성우/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 가습기 살균제가 산모들의 폐 손상의 원인이라고 뉴스에 나오면서 그때 알게 됐어요. 왜냐면 집에 가습기 살균제가 있었고. 제가 집사람한테, 제 아내한테 가습기 살균제를 권유했어요. 그래서….]
지난해 12월 피해자 접수 마감이 끝나자, 안 씨는 진실이 알려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아들을 부모에게 맡기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마음껏 뛸 수조차 없는 아들을 위해, 아빠로서 거리로 나섰다고 했습니다. 영국 본사까지 가서 기자회견을 한 것도 떠난 가족과 살아 있는 아들을 위해서입니다.
[안성우/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 이 아이가 자라가면서 성장하고 사회생활하면서 어떠한 불이익을 받고 자기의 생활이 망가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안 씨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시민단체의 임흥규 씨는 피해자들에게 정부보다 더 큰 존재입니다.
정부가 본격적인 피해접수를 받기 전부터 피해자들을 만나 왔습니다. 그의 휴대전화에 찍힌 하루 통화량은 2000통.
[임흥규 팀장/환경보건시민센터 : 정부가 고작 한다는 말이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기업과 개별소송해라. 시민단체 입장에서는 정부가, 국가가 국민들에게 이럴 수 있나.]
무책임했던 정부와 무관심했던 검찰과 언론, 사회의 모든 공적 기관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그때, 안 씨와 임 씨는 아스팔트 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