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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보험사 관행이 부른 '조폭 36억 전세대출 사기'

입력 2016-05-1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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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전세 계약서로 정부가 지원하는 전세자금 36억원을 챙긴 조직폭력배들의 대출 사기는 은행과 보험사의 형식적인 서류 심사 때문에 가능했다.

주택금융공사가 대출 보증을 서는 구조로, 손해 보지 않는 장사를 하는 금융기관은 대출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조폭들은 이점을 악용했다. 결국 정부 기금의 부실로 이어지며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떠넘겨졌다.

19일 광주경찰청에 따르면 집도 직장도 없이 모텔이나 여관을 떠돌던 A(35)씨는 "직업이 없고 신용 등급이 낮아도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은행과 보험사에 서류를 건네고 대출만 받으면 수천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며칠간의 교육을 마친 A씨는 조직폭력배 이모(30)씨 등이 소개한 집 주인 B(27)씨와 모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찾아 전세 계약을 맺었다. 물론 대출에 필요한 전세 계약서를 만들기 위해 온갖 거짓말로 공인중개사까지 속였다.

이렇게 만들어낸 가짜 전세 계약서와 이씨가 만든 유령회사의 재직 증명서를 들고 A씨는 은행과 보험사에 '주택도시기금 전세자금' 대출을 신청했다.

같은 전세 계약서로 두 곳에 대출을 신청했지만 각각 9700만원과 1억5600만원, 모두 2억53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A씨는 이중 2000여만원을 챙겼고 나머지는 2억여원은 이씨에게 넘겼다. A씨는 이렇게 쉽게 번 돈을 유흥비로 탕진했다.

경찰은 "주택도시기금 전세자금 대출은 국가가 무담보로 무주택자를 보증하는 제도로, 채무자가 사기 등으로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주택금융공사에서 대부분을 대신 변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출 받아 변제 기간인 2년간 대출금을 갚지 않고 파산 선고를 하면 된다. 대출을 받은 사람이나 금융기관은 모두 큰 손실이 없다. 이 때문에 형식적인 서류 심사만 거친 뒤 대출이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A씨처럼 신용 등급이 낮거나 직업이 없는 27명이 지난 2014년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1년 6개월 동안 같은 방법으로 시중은행 5곳과 보험사 3곳에서 34회, 36억여원을 대출 받아 챙겼다.

2012년 9월 국토부가 도입한 '사기대출 정밀 스크린제도' 등 사기대출 방지 시스템이 있었지만 대출 사기를 걸러내지 못했다. 심지어 1명이 같은 전세 계약서로 같은 날 동시에 대출을 받은 사실조차 은행과 보험사는 몰랐다.

경찰은 "이들이 근무하고 있다는 업체 사무실을 찾아가 실사만 했어도 사기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며 "그러나 전화 한 통과 서류 심사만으로 대출이 결정됐다. 이씨 등은 이점을 노려 전화를 응대하는 여직원을 채용, 은행과 보험사를 속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국민주택기금으로 운영하는 서민주택전세자금 대출이 사기에 악용되면서 결국 정부 기금의 부실, 혈세 낭비로 인한 국민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며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기주 광주경찰청 광역수사대장은 "은행이나 보험사가 리스크가 적다는 이유로 형식적인 서류 심사만을 통해 적격, 부적격을 판단하고 있다"며 "실효적인 심사가 이뤄지지 않아 대출사기 범죄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관련 기관에 제도개선을 위한 자료를 적극 제공할 것"이라며 "범죄자들의 불법이득에 대한 세금 환수를 위해 국세청에 관련 사실을 통보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광주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날 가짜 전세 계약서를 만들어 은행에서 36억여원의 불법 대출을 받은 혐의(사기)로 광주지역 모 폭력조직의 이씨 등 21명을 구속하고 3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또 달아난 4명은 체포영장(지명수배)을 발부받아 뒤를 쫓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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