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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집권당 몰락 방식' 따라가는 새누리, 과거 보니…

입력 2016-05-18 19:44 수정 2016-05-18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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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계속해서 국회 40초 뉴스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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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 '열린우리당 소멸' 전철 밟나

계파 갈등으로 새누리당의 분당 가능성까지 제기되자 10년 전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가 재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회 발제에서 계파 갈등 끝에 분당이 반복되는 배경을 짚어봅니다.

▶ "북 임진강 수계 무단 방류 유감"

북한의 임진강 수계 무단 방류와 관련해 통일부가 유감을 표했습니다. 남북 합의를 무시하고 북한이 일방적으로 방류했다며 재발 방지를 촉구했는데요, 2009년에 북한의 황강댐 무단 방류로 야영객 6명이 목숨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 "혐의 이해 못해"…구속 여부 곧 결정

박준영 국민의당 당선자 구속여부가 오늘(18일) 결정됩니다. 박 당선자는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법원에 출석하며 "혐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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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죠. 정당도 처음에 집권했을 때는 모든 게 일사불란하고 순조롭게 돌아가는 것 같지만, 일단 내리막길에 접어들면 그 순간부터 내부에서 파열음이 터져나오기 마련입니다. 지금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이 폭발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딱 그런 상황인데요, 과거 집권당 몰락의 패턴을 고스란히 되풀이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국회 발제에서 과거 열린우리당과 신한국당의 몰락 사례를 비교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기자]

딱 10년 전인 2006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한국 선거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기록했습니다.

어느 정도 참패였냐면 16곳의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전북지사 딱 1곳만 승리했고요, 심지어 수도권 67곳의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열린우리당 당선자가 고작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번 4월 총선에서 원내 1당 자리를 빼앗긴 새누리당의 참패를 연상케 하는데요. 이번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물러난 것처럼 당시에도 열린우리당을 이끌었던 정동영 의장이 퇴진하고, 김근태 최고위원이 의장직을 넘겨받았습니다.

하지만 선거 패배가 당시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라는 당내 비판이 갈수록 커지면서, 친노와 비노 간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새누리당에서 이번 총선 패배의 책임을 놓고 친박과 비박이 다투는 현 상황과 똑같습니다.

결국 열린우리당에선 2007년 1월 천정배, 정성호, 최재천 의원 등 6명이 선도 탈당을 결행했고요, 다음달엔 김한길 의원을 주축으로 주승용, 이종걸, 노웅래 의원 등 23명이 집단 탈당 했습니다.

[김덕규/당시 열린우리당 의원 (2007년 6월 15일/출처: 쿠키뉴스) : 민생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하지 못했고 국민 여러분의 신임을 얻는 데는 실패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무한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도 열린우리당을 떠나게 되는데 사실상 당에서 축출된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한국갤럽 조사에서 노 대통령의 지지율은 12.3%까지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열린우리당 탈당파는 2007년 5월 중도개혁통합신당을 창당했고요, 6월엔 구 민주당과 합당을 해 '중도통합민주당'을 만들었다가, 8월에 한나라당에서 건너온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합류하면서 '대통합민주신당'이 탄생했습니다.

얼마 뒤에 열린우리당 잔류파까지 이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하면서 복잡 다단했던 여권의 정계개편 소동이 마무리됐습니다.

이후 이들은 정동영 전 의장을 대선 후보로 선출하고 정권 재창출을 다짐했죠.

[정동영/당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2007년 10월 15일) : 87년 민주화 이후 97년 김대중 후보가, 2002년 노무현 후보가 들었던 승리의 깃발을 이제 정동영이가 높이 들고 국민 여러분과 함께 승리해내겠습니다.]

하지만 당시 여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이미 싸늘히 식어있었습니다.

정동영 후보는 그해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530만 표가 넘는 사상 최대 표차로 패배 했고, 정권은 한나라당으로 넘어갔습니다.

새누리당이 이런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밟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선거 패배 후 내분 격화로 이어지는 코스는 지금까지 서로 똑같지만 이게 과연 집단 탈당과 당 해체로 이어질지는 두고봐야 합니다.

하지만 비박계에선 친박계가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면 결국 그런 코스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 (지난 11일) : (지금 새누리당은 앞으로도 친박 중심으로, 친박이 주도권을 갖는 그런 정당으로 계속 갈 것이다, 이렇게 지금 전망을 하시는 거네요?) 계속 가는 게 아니라 소멸하죠, 나중에는. (소멸을 한다고요?) 예, 계속 가지는 못합니다. 열린우리당처럼 소멸하죠.(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소멸한다는 게…) 없어졌잖아요, 열린우리당.]

친박과 비박의 충돌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촉발돼 9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2008년 총선에선 비박계가 친박을 공천학살했고, 이번엔 정반대였습니다.

서로 원한과 감정이 누적된 상태죠. 하지만 양측의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리더십은 현재 새누리당 내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국회 발제는 < 새누리당, 열린우리당 전철 밟나 > 로 잡고 과거 집권당의 몰락 패턴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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