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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36주년, 잊을 수 없는 고1 아들의 숭고한 죽음"

입력 2016-05-1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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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36주년, 잊을 수 없는 고1 아들의 숭고한 죽음"


"5·18 36주년, 잊을 수 없는 고1 아들의 숭고한 죽음"


"5·18 36년이 됐는데도 그날 우리 아들이 어떻게 숨졌는지 알지 못하네요"

5·18광주민주화운동 36주년 기념식을 사흘 앞둔 15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문재학 열사의 묘역 앞에는 백발이 된 열사의 아버지 건양(81)씨와 어머니 김길자(77)씨가 국화를 놓은 채 앉아 있었다.

부부는 번갈아가며 묘비를 쓰다듬으며 대답없는 아들의 이름을 연신 불렀다. 이내 눈에는 36년이 되도록 마르지 않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들은 아들의 묘역을 떠나지 않았다. 떠날 수가 없다고 했다. 해마다 찾아오는 5·18기념주간이 아니면 아들의 숭고한 죽음을 알릴 기회가 없다며 묘역을 찾는 참배객들에게 당시의 참상을 전했다.

건양씨의 아들 문재학 열사는 1980년 5·18당시 광주상업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문 열사는 광주시내를 지나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동창이었던 양창근 열사가 숨져 있는 모습을 보고 친구들과 함께 시민군에 합류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부모는 5월26일 전남도청을 찾아 문 열사를 만나 집으로 돌아오라고 호소했다.

건양씨는 "아들이 도청에 있는 사실을 알고 엄마와 같이 찾아갔다. '계엄군이 총을 쏜다'며 돌아오라고 했는데 돌아오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부모는 가슴을 졸이며 문 열사를 찾아 광주 곳곳을 돌아다녔다.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병원도 뒤졌다.

하지만 아들의 마지막 모습은 사진으로 접했다. 상무관에 목에 총을 맞고 누워있는 문 열사의 모습을 외신 기자가 촬영해 전달했다.

어머니 김길자씨는 "사진 속 카키색 면티에 교련복 바지를 입고 있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민주묘지를 찾은 참배객들에게 그날 아들이 어떻게 숨졌는지에 대해 설명을 하며 진실을 규명해 달라고 호소했다.

건양씨는 "윤상원 열사와 함께 아들이 죽었는데 우리 아들의 죽음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고교 1학년이었던 아들이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죽음으로 알리고 싶어 했던 것을 부모가 대신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지나가는 참배객을 붙잡고 설명을 반복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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