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보신 것처럼 위기 의식을 느낀 조선업계 빅3는 이제서야 구조조정 카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저희 취재진이 현장에서 들여다 본 결과, 조선업의 위기는 이미 예고돼 있었습니다. 하청업체들은 오래 전부터 재정난에 허덕이며 줄도산을 해 왔고, 폐업한 회사들의 노동자들은 길거리에 내몰려 왔습니다. 오늘(9일) 탐사플러스에서는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조선업계 현주소와 그 원인을 심층 취재했습니다.
김태영 기자입니다.
[기자]
경남 거제의 한 공장입니다.
멀쩡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안에는 텅텅 비어 있습니다.
곳곳에 녹슨 기계와 자재들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직원들이 버리고 간 작업복과 안전모도 보입니다.
직원들로 붐볐을 식당은 문짝이 떨어져 나간 채 폐창고가 된지 오래입니다.
삼성중공업에 선박 철골 구조물을 납품하면서 연매출이 수십억원이던 이 공장이 문을 닫은 건 지난해 9월입니다.
[공장 관리자 : 인건비도 줘야 하고 자재도 사야 할 테고 돈이 안 들어오는데 부도지.]
올 들어 거제 지역에서만 조선 관련 업체 91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중소형 조선소들이 밀집한 인근 통영과 고성까지 확대하면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A씨/하청업체 대표 : 3년 동안 이윤을 낸 업체들이 별로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대부분 원청 업체인 조선소들로부터 납품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며 부도로 이어졌습니다.
[조현우 정책실장/대우조선해양 노조 : 원청에서 지금 어렵다 보니까 기성 단가를 낮추고, 낮추다 보니까 과거에는 한개에 100원 하던 것이 지금은 90원, 80원밖에 안 하다 보니까 생긴 문제라는 거죠.]
최근에는 원청 업체들이 납품 대금을 깎기 위해 하청업체에게 직원 수를 줄이거나 임금을 삭감하도록 유도합니다.
[A씨/하청업체 대표 : (원청에서) 무조건 뼈를 깎는 아픔을 같이 하자고 한다면 협력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난감해요.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저희도 임금을 삭감했어요.]
원청 업체의 이런 압박은 하청업체의 대량 해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강병재 의장/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 : 지금 물량이 이러니까 사람을 지금 현재 350명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면 너희 150명만 운영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원청에서 합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임금 체불로 또 다른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통영지청. 임금체불을 신고하는 하청업체 실직자들로 북적입니다.
[김모씨/하청업체 노동자 : 은행 가면 피크 시간에 보면 바빠서 하는 거 있잖아요. 줄 서 있고. 일찍 오신 분들도 밖에서 기다리고.]
실제로 지난 3월 기준 거제 통영 고성 지역 임금체불 액수는 99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월급과 퇴직금뿐만 아니라 심지어 보험료까지 가로채고 도주한 업주도 있습니다.
[정모씨/하청업체 노동자 : 작년에 12억 체불 금액을 아직 못 받고 있고. 하루 차이로 퇴직금도 없고.]
임금 체불은 단체 농성과 법정 다툼 등 하청업체 내부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하청업체 노동자 : 조선소 생활이 15년차가 넘는데, 요새 같이 경기가 안 좋은 적은 처음이거든요. 다른 업종으로 이직한다는 것도 그렇고.]
그나마 버티고 있는 하청업체의 노동자들도 언제 해고될 지 모르는 불안감에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정모씨/하청업체 노동자 : 분위기가 엄청 험악하죠. 뒤숭숭하고. 경고 한 번 받으면 '너 나가라' 이렇게 되는 거죠. 퇴사시켜버리겠다. 위협을 가하는 거죠. 일 못하니까 나가라 하면 이해를 하겠는데 억울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