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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우영 상임고문, 조선일보 중흥 이끈 신문인

입력 2016-05-0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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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우영 상임고문, 조선일보 중흥 이끈 신문인


"젊은 시절 방우영 사장을 처음 봤을 때 차돌 같았다. 어느 맑은 냇물이 흐르는 모래밭에서 여름 햇빛을 받으며 눈부시게 반짝이던 차돌…."

이어령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월 출간된 방우영 상임고문의 미수(米壽) 문집 '신문인 방우영'에서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8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한 방 상임고문은 조선일보의 중흥을 이끈 신문 경영인이다.

1928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 강점기에 제9대 조선일보 사장을 지낸 방응모(1890~1950)의 친형 방응곤의 손자다.

아버지 방재윤(1902~1940)이 숙부 방응모의 양자로 가면서 형 방일영(1923~2003)과 양손자가 됐다. 양할아버지 방응모를 따라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로 이주한 뒤 서울로 유학, 경성 경신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연세대 상과를 졸업하고 1952년 공무국 수습생으로 조선일보에 입사, 사회부와 경제부 기자로 8년간 일했다. 1960년에는 조선일보 방계 회사인 아카데미극장 대표를 맡기도 했다.

1962년 조선일보 상무로 복귀한 그는 1963년 발행인, 1964년 전무 대표이사가 됐다. 1969년에는 숙원 사업이던 신사옥을 준공했고 1970년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앉았다.

이후 '월간 조선'(1980)을 창간했고 월간 '산'을 인수하는 등 조선일보의 잡지 전성시대를 선도했다. 1990년에는 '스포츠조선'을 만들었다.

1993년 조카 방상훈(68)에게 사장 자리를 물려주고 조선일보 대표이사 회장이 됐다. 2003년 조선일보 명예회장, 2010년 상임고문으로 추대됐다. 그동안 연세대 재단 명예이사장, 고당 조만식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연세대 명예동문회장, 대한골프협회 명예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2006년 9월 조선일보의 정치적 성향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로 추정되는 괴한 두 명에게 피습을 당하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2일 오전 8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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