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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발권력 동원' 압박에…속앓이 하는 한국은행

입력 2016-04-29 09:38 수정 2016-04-29 10:45

박 대통령, 한국형 양적완화 '선별적 양적완화'로 구체화

이틀 만에 또다시 대통령이 나서 기업 구조조정 지원 주문

신중론 유지했던 한은, 청와대·정부 요청에 궁지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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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한국형 양적완화 '선별적 양적완화'로 구체화

이틀 만에 또다시 대통령이 나서 기업 구조조정 지원 주문

신중론 유지했던 한은, 청와대·정부 요청에 궁지 몰려

청와대의 '발권력 동원' 압박에…속앓이 하는 한국은행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형 양적완화'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나서면서 한국은행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28일 오전 청와대에서 주재한 영상국무회의에서 "미국, 일본, EU(유럽연합) 등 선진국들이 펼친 무차별적인 돈 풀기식의 양적완화가 아닌, 꼭 필요한 부분의 지원이 이뤄지는 선별적 양적완화 방식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정부와 관계 기관이 긴밀하게 협의해 최적의 방안을 마련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의 간담회에서 "(한국판 양적완화를) 우리가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지 이틀 만에 한국형 양적완화의 추진을 더욱 강도 높게 주문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발언을 통해 한국형 양적완화의 범위를 '선별적 양적완화'로 구체화했다.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돈을 풀자는 의미다.

한국형 양적완화는 지난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공약으로 제시했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으로 KDB산업은행이 발행하는 산업금융채권(산금채)을 직접 인수해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토록 하는 게 골자다. 또 주택금융공사의 주택담보대출(MBS) 증권을 매입해 상환 기간을 20년 장기분할로 전환해주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해운·조선사의 구조조정이 추진되면서, 한은의 산금채 인수와 국책은행에 대한 한은의 출자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현재 부실기업에 대한 산은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부담은 심각한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한진해운·현대상선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 중 국책은행이 15조원을 보유, 지난해 산은의 당기순손실은 1조8951억원에 달한다. 수은은 당기순이익을 기록하긴 했지만 전년 대비 반 토막 난 411억2700만원에 불과했다.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하는 방법으로는 ▲정부의 현금출자 ▲한은의 출자 ▲한은의 산금채 매입 ▲한은의 금융안정기금 활용 등이 거론된다.

금융안정기금은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으로 실효성을 상실, 시행 가능성이 작다.

정부의 현금 출자 여부에 관심이 쏠리긴 하지만 좋지 않은 재정여건을 감안하면 정부의 여력이 크지 않다.

정부가 현금을 출자하려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야 하는데,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경 편성이 쉽지 않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또 국민의 세금을 투입한다는 비판 여론과 국회 통과를 거쳐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결국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총대를 메야 하는 상황이다.

그간 한은은 중앙은행의 발권력으로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산은에 직접 자금을 지원하는 그런 요구에 대해서는 한은이 나설 때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총재는 "현재 한은은 금리와 통화량 조절 대출 정책 등의 여러가지 정책 수단을 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구조조정이라든가 하는 큰 문제에 중앙은행이 나선다든가 하는, 별도의 권한을 떠나 지금의 수단으로도 한은이 적합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직접 '선별적 양적완화'를 거론하며 사실상 기업 구조조정 지원을 요청한 데다, 경제계에서도 한은의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28일 열린 역대 기획재정부 경제부총리·장관 간담회에서는 기업 구조조정이 한국 경제의 최대 현안으로 꼽히며 참석자들이 한목소리로 기업 구조조정 추진을 주문했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한국판 양적완화는) 부총리 때 매우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이라며 "재정만 갖고 기업 구조조정을 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 결국 한은의 역할과 관련되는 것인데 한은법이 제한적으로 돼 있다"고 발언했다.

한은법 제76조에 따르면 중앙은행은 국채와 정부가 보증한 채권에 한해서만 직접 인수할 수 있다.

최 전 부총리는 "그래서 한은법을 개정하려고 했는데 한은의 독립성 문제 때문에 진전을 못 시켰다"고 덧붙였다

한국형 양적완화 정책을 처음으로 제시한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정부나 한은의 출자 정도로는 안 된다"며 "(채권 매입 등을 통해) 실탄을 더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은 "구체적인 요청이 오면 한은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공식 입장으로 발표한 상태다.

하지만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마치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할 발권력 동원의 정당성이 불분명하고 재원 규모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한인의 지원이 당연한 것처럼 언급되는 현실에 불편해 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려면 무엇보다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가 한국형 양적완화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한은이 마냥 뒷짐지고 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내달 4일 국책은행 재원확충 태스크포스(TF)의 첫 회의에 참석해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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