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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 그림 속 말 이야기 24. 유하 백마도

입력 2012-06-2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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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 그림 속 말 이야기 24. 유하 백마도

▲오현미(40)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버드나무 가지가 초여름 미풍에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고 그 나무 아래에는 흠결 없는 백마 한 마리가 뒷다리 하나를 슬쩍 든 자세로 여유롭게 쉬고 있다. 완만하게 솟은 언덕의 굴곡은 부드러운 선으로 묘사되었고 군데군데 솟은 잡초와 돌들까지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말이 묶여 있는 버드나무 둥치는 사진처럼 치밀하게 그려져 표면 질감이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백마의 몸은 그냥 매끈하게 처리하지 않고 양감을 가진 근육질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입체감 있게 묘사되었다. 이 그림은 고산 윤선도의 증손인 공재 윤두서가 그린 '유하백마도'이다.

공재 윤두서는 조선 중후반기 당쟁이 치열한 시대에 남인계열의 가문에 태어나 사대부로서 정치적 뜻을 펼칠 길이 막힌 채 태어났다. 할아버지 윤선도가 서인과의 당쟁에서 패하고 유배를 떠나는 바람에 패권이 서인계열로 넘어간 것이다. 공재는 똑똑하고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회적 뜻을 펼칠 수 없던 그는 여생을 학문과 예술에 쏟으며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학식이 높아 세상의 이치에 깊은 깨달음을 가졌고 이에 못지않게 탐구심이 강해 다른 실용 잡학에 대한 연구와 저서도 많이 남겼다.

그의 관심은 대동여지도 같은 지도제작에까지 나아갔으니 공재가 가지 않은 영역이 어디인지 꼽기가 힘들 정도이다. 그는 당시 조선에 불어온 실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무엇이든 현실에서 관찰하고 그 이치를 깨닫고자 노력했다. 이런 그의 태도는 그림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공재는 말을 무척 좋아해 말그림 그리기를 즐겨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말을 그리고자 할 때면 "마구간 앞에 서서 종일토록 주목하여 보기를 몇 년간이나 계속 한 다음 무릇 말의 모양과 의태를 마음의 눈으로 꿰뚫어 볼 수 있고 털끝만큼도 비슷함에 의심이 없는 다음에야 붓을 들었다"고 하니 윤두서의 실사적 태도가 얼마나 치열했던 것인지 알 수 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인 백마는 공재가 가장 아끼는 말로 자신의 아들조차 이 말에 올라타지 못하게 했을 정도라고 한다. 가지런하게 정리된 갈기와 탄탄한 둔부, 힘 있는 꼬리와 빗질이 잘되어 찰랑이는 꼬리털까지 공재의 백마는 어디 한 군데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유하백마도'는 어쩌면 공재 자신일지도 모른다. 혼자 나무에 묶여 있는 모습은 정계 진출을 포기하고 홀로 귀향한 당시 공재의 상황과 겹치며, 흠 없고 깨끗한 흰 말은 그의 성품을 은연중에 나타낸 것 같다.

나아가 백마의 당당한 모습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견뎌나가는 그의 기백이 느껴지기고 한다. 슬프기도 하지만 다행이기도 한 것은 시대적 제약이 우리에게 정치가 윤두서 대신 화가 윤두서를 남겨주었다는 사실이다. 실사를 추구하는 그의 화풍은 결국 단원의 시대를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양희원(34) KRA한국마사회 교관

한국사람들이 가장 많이 그린 말은 한국의 조랑말이고 그림 속 주인공도 조랑말이다. 과거의 조랑말은 현재의 조랑말보다는 컷던것 같다. 여기에 비해 제주도에 남아있는 조랑말은 덩치가 400~500년 전에 비해 작아진것 같다. 그림속의 말은 비현실적인 체형을 가지고 있다. 다시말해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비율이다. 엉덩이는 어마어마하게 큰 반면 목은 가늘고 얼굴은 작다. 조선말 또는 조랑말의 품종적인 특징과는 큰 차이가 난다.

조랑말의 특징은 머리가 크고 입은 뭉뚝하며 키는 작다. 또 조랑말은 다리가 강건하지만 그림속의 백마는 몸의 크기에 비해서 다리가 서러브렛 처럼 얇다. 서러브렛은 말 품종중에서도 다리가 대단히 가는 편이다. 말의 나이는 최소 12살이 넘었다. 말이 그림 처럼 완벽한 흰색의 백마가 되는 것은 12살 이후이기 때문이다.

그림에 표현된 말은 관리가 잘 된 말이다. 털 갈기 꼬리 등의 정리가 잘 돼 있고 영양상태도 좋다. 그림속 말이 관리가 잘 된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한데 조선시대에도 흰말은 많은 그 희귀성과 외모 덕분에 많은 사람이 갖고 싶어했고 부의 상징이었다. 요즘으로 따지면 최고급 승용차나 마찬가지다.

장구는 수장굴래만 하고 있는데 수장굴래는 말을 타지 않지만 이동해야 할 경우에 사용하는 장비다. 이 장비는 정확히 잘 그려져 있는데 말이 편하게 쉴수 있도록 잘 설계돼 있다. 요즘에도 제주도에서는 비용 절감을 위해서 밧줄을 사용해 그림 같은 수장굴래를 사용하기도 한다.

정리=채준 기자 doori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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