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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노동자 세 명이 죽었습니다

입력 2022-10-24 17:07 수정 2022-10-24 17:36

한국에서 일하던 30대 노동자 세 명의 죽음, 원청은 개인 탓으로 책임 돌려
만약 한국인이었더라도 그랬을까, 다른 '죽음의 무게'에 우리 안의 차별 고개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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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일하던 30대 노동자 세 명의 죽음, 원청은 개인 탓으로 책임 돌려
만약 한국인이었더라도 그랬을까, 다른 '죽음의 무게'에 우리 안의 차별 고개 들어

〈사진=JTBC 캡처〉〈사진=JTBC 캡처〉

흰머리 50대 남성은 아이처럼 울었습니다. 30대 아들 심장이 멈췄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오전 일찍 공사장으로 나선 아들, 사고가 났다는 얘기에 '그래도 설마 괜찮을 거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장례식장에 있었습니다. 텅 빈 빈소에서 며느리와 둘이 길게 울었습니다.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한 병원 장례식장 모습입니다.

이날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물류 창고 공사 현장에서 30대 노동자 세 명이 숨졌습니다. 이 세 명 가운데 주 모 씨가 실려 간 병원에서 아버지 주 씨를 만났습니다. 아버지도 건설 노동자였습니다. 현장 조끼를 입었고 어깨엔 시멘트 가루가 묻었습니다. 아들이 숨진 시각에 아버지도 다른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스스로 책망했습니다. “차라리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우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사고가 난 물류 창고로 가봤습니다. 밤 10시가 넘도록 조명을 켜뒀습니다. 사고 원인을 조사하거나 구조 작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사망 사고가 보도되자 정치인과 장관이 찾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장엔 이들을 맞고 안내하는 인원이 가득했습니다. 지시 사항을 수첩에 받아 적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같은 시각, 사망 노동자 빈소엔 조문객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주 씨를 뺀 다른 2명 노동자는 빈소조차 차리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숨진 노동자들이 중국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시신을 받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저 안치실에 놔둘 뿐입니다.

이 3명 노동자들, 국적은 중국이지만 우리 말 쓰는 이른바 '조선족', 중국 동포였습니다. 이름도 한국식이었습니다. 한국과 중국 운동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쩌면 어느 쪽을 응원할까 고민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들에게 야박했습니다. 주 씨 유가족이 취재진에게 물었습니다. “한국에선 사람이 죽어도 이렇게 아무도 안 오는 거냐”고. “사고로 사람이 죽어도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거냐”고. 취재진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주 씨는 부지런한 노동자였습니다. '힘들면 하루쯤 쉬라'고 해도 '일을 빠질 순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주 씨 유가족은 “한국에서 물건 훔치다가, 범죄를 저지르다 숨진 게 아니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남들 하지 않는 더럽고 힘든 일을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실제 사망한 3명 노동자 모두 현장 경력이 꽤 되는 숙련공들이었습니다.

원청인 SGC 건설, 사고 원인을 묻자 개인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안전 관리자는 “공사장에선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올라가다 자빠지는 일도 잦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과 달리 공사장은 지지대가 무너지면서 바닥 전체가 내려앉았습니다. 개인 책임이 아니었습니다.

한번 가정해 봅니다. 숨진 3명 노동자들, 만약 한국인이었다면 원청 답변이 이토록 성의 없었을까요. 이들 여권에 '한국'이란 글자가 붙었다면 빈소가 이렇게 텅 비었을까요. 취재진 스스로도 반성해 봅니다. 똑같은 일을 하다 숨졌는데도 그들이 한국인이었다면 언론도 애도하고 애도했을 겁니다. '미래가 창창한' 젊은 노동자가 숨졌다고 안타까워했을 겁니다.

이 30대 중국인 노동자 세 명. 국적 말고 다른 모든 건 우리와 같습니다. 남들이 피하는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떠나는 길조차도 쓸쓸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애도하고 그리는 방식, 평소 숨기고 있지만, 우리 안의 차별과 편견이 고개를 들어 제 모습을 드러낸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경찰은 50여 명 전담팀을 꾸리고 사고 원인 수사에 나섭니다. 정부도 중대재해법 처벌 여부를 두고 조사에 시작합니다. 50대 중국인 아버지가 다시 일터로 나갈 때, 그곳이 조금 더 안전하고 차별 없는 곳이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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