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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국장 '프락치 의혹'에 사퇴 촉구까지...밀고자인가 프레임인가

입력 2022-08-12 19:18 수정 2022-08-1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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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과 김순호 초대 경찰국장 〈사진=연합뉴스〉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과 김순호 초대 경찰국장 〈사진=연합뉴스〉

성균관대학교 동문들이 김순호 초대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성균관대 민주동문회와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진실규명추진위원회 등 민주 활동 관련 단체들은 오늘(1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화 운동 동지들을 배신하고 밀고한 자를 경찰국장에 임명한 것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 국장은 학생 운동을 하던 1980년대 동료들을 감시하는 이른바 프락치로 활동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 국장은 이를 '프레임 씌우기'라며 전면 반박하고 있습니다.

■“붉게 물든 학생을 푸르게”하는 녹화사업

전두환 군사정권을 반대하는 학생운동이 확산된 1980년. 전두환 정권은 학생운동에 참여한 대학생들을 강제징집했습니다. 교내 시위, 유인물 제작, 야학 운영, 동아리 활동 등의 이유로 강제로 휴학을 당하고 군대에 끌려간 대학생만 1152명에 달했습니다.

이후 전두환 정권은 이들을 프락치로 활용하는 이른바 '녹화사업'을 진행합니다. “붉게 물든 학생을 푸르게 만든다”는 뜻의 녹화사업은 학생운동 관련 첩보를 수집하는 프락치 활동이 핵심이었습니다. 이를 거부할 경우, 회유와 협박, 고문이 이어졌습니다. 고문과 폭행을 이기지 못한 일부 '배신자'들은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습니다.

조종주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 사무처장은 "우리는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군대에 끌려가 녹화공작을 받았다"며 "그 후유증으로 극단선택을 하기도 했다. 살아남은 우리는 지금도 그 상처에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화사업은 노태우 정권까지 이어졌습니다. 1984년 녹화공작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면서 강제징집은 중단됐습니다. 그러나 군은 '선도공작'으로 이름을 바꿔 계속해서 군인들에게 프락치 활동을 강요했습니다.

■김순호 국장도 '강제징집 피해자'였다

애초 김 국장도 강제징집 피해자였습니다. 대학 내 운동권 동아리 '심산연구회'에 가입한 김 국장은 1983년 4월 친구들과 함께 강제징집됐습니다.

군대에서 2년을 보내고 제대한 김 국장은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부천의 한 공장에 위장취업을 한 뒤, 인노회(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에 가입해 활동합니다. 김 국장에게 인노회 가입을 제안했던 사람은 한 학번 선배이자 심산연구회를 만들었던 고(故) 최동 열사였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 열사의 여동생 최숙희씨는 “김 국장은 오빠가 아끼는 후배였고 제가 어린 나이에 밥도 많이 해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인노회에서 활동하던 김 국장은 1989년 4월 잠적했는데, 그 해 8월 대공 공작요원으로 경찰에 특채됩니다. 인노회 회원들이 줄줄이 연행된 것도 그 무렵입니다. 최 열사는 그해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뒤 후유증에 시달리다 다음 해에 분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행안부 경찰국이 2일 공식 출범하는 가운데 지난 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 마련된 경찰국 사무실 모습. 〈사진=연합뉴스〉행안부 경찰국이 2일 공식 출범하는 가운데 지난 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 마련된 경찰국 사무실 모습. 〈사진=연합뉴스〉

■'녹화사업' 피해자 vs. 동료 배신한 밀고자

양측 주장이 엇갈리는 건 여기서부터입니다. 당시 인노회 회원들은 김 국장이 자신들을 밀고했다는 의심을 강하게 품었습니다. 인노회 한 회원은 취재진에게 "경찰에 잡혀가보니, 이미 자신들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며 "그 내용들은 조직 책임자였던 김순호가 제일 잘 아는 내용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김 국장 주장은 다릅니다. 잠적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운동권에 대한) 회의와 갈등은 있었다”는 겁니다. 김 국장은 어제(11일) MBC라디오에 출연해 “4월에 제가 주사파로부터 단절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해 고향으로 내려갔다며 “공교롭게도 '인노회 사건'이 되면서 도피가 돼버린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또 본인이 있던 곳은 “사설독서실이고, 잠을 잘 수 있는 곳”이었다는 겁니다.

인노회 사건이 일단락된 뒤, 김 국장은 그 해 7월 서울 홍제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을 직접 찾아가 그동안의 활동을 자백했다고 합니다. 김 국장에 따르면 사흘 동안 조사를 받았는데 주사파에 물들까 걱정된다고 고백하자, 경찰이 '대공 특채'를 제안했다는 겁니다. 또 자백할 때도 인노회 동료들이 구속되거나 수사에 영향을 끼칠 진술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김 국장은 “제가 진짜 밀고를 했거나 프락치였다면 왜 사라지겠느냐. 의심받을 게 뻔한데 인노회 사건이 끝나자마자 어떻게 특채가 되느냐”며 “억측으로 구성된 소설같은 소리”라고 일축했습니다.

■설령 밀고자가 아니었더라도…

김 국장의 동료들은 설령 김 국장이 밀고자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떳떳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조 사무처장은 “어쨌든 이런 활동을 하다가 경찰에 대공 전문가로 들어간다는 그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사실 이렇게 떳떳하게 말할 수는 없다”고 겁니다. 강제징집을 당해 일부 소극적으로 협력했던 사람들도 평생 그 상황을 부끄러워했다는 겁니다.

조 사무처장은 “감출 건 감추지만, 일부는 써서 내게 되고 이런 일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렇게 해놓고도 부끄러워서 평생동안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지금도 트라우마 프로그램 진행 중”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동문들의 한맺힌 의심과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김 국장이 직접 나서서 본인이 소명할 건 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김 국장에겐 소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국가기록원은 지난 2000년 보안사로부터 녹화공작 자료를 모두 건네받았는데, 이 안에는 김 국장 자료도 포함돼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보공개법에 따라 해당 자료는 당사자 정보공개청구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 국장은 취재진에게 의혹이 과열될 것이 우려된단 취지로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자료를 공개하면 왜 과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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