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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면]그들에게 환희는 울분이다...김민재가 함께한 나폴리 우승 이야기

입력 2023-05-09 14:29 수정 2023-05-0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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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 같지만 울분처럼 다가옵니다. 나폴리 팬들에게 이탈리아 세리에A 우승이란 대체 무엇이기에 그렇게 격정적일까요. 축구가 뭐라고. 우승이 뭐기에.
나폴리의 희열이 느껴지시나요. 나폴리 팬들이 김민재를 에워쌌습니다. (사진=신화연합뉴스)나폴리의 희열이 느껴지시나요. 나폴리 팬들이 김민재를 에워쌌습니다. (사진=신화연합뉴스)
나폴리가 우승한 뒤 '파이낸셜타임스'가 만난 나폴리 팬들의 이야기엔 절절한 감정이 담겨있습니다.
“우승은 사회적 구원의 한 형태입니다. 우리는 축구를 위해 삽니다.”( 나폴리 팬 알키드)
“우리는 고통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아야 합니다. 나폴리는 산업이, 또 일자리가 충분치 않아요. 축구가 전부입니다.” (나폴리 팬 부치올리)
나폴리 사람들에게 축구는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마라도나도 다시 소환됐습니다. (사진=EPA연합뉴스)나폴리 사람들에게 축구는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마라도나도 다시 소환됐습니다. (사진=EPA연합뉴스)
나폴리는 소외, 차별, 멸시, 핍박의 상징이었습니다. 가난한 도시의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1970년대 콜레라가 창궐했다는 이유로 이탈리아의 일원이었지만 다른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야유와 무시를 받았죠. 부유한 이탈리아 북부의 밀라노, 토리노, 또 로마 사람들에겐 이탈리아의 수치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이탈리아 축구 역사 역시 주인공은 돈 많은 유벤투스, AC밀란, 인테르 밀란, AS로마의 몫이었습니다.
또 한번의 우승까지 33년을 기다렸습니다. 나폴리 팬들은 격정에 젖었습니다. (사진=EPA연합뉴스)또 한번의 우승까지 33년을 기다렸습니다. 나폴리 팬들은 격정에 젖었습니다. (사진=EPA연합뉴스)
마라도나는 나폴리와 함께 반전의 어퍼컷을 날렸죠. 1984년 바르셀로나를 떠나 나폴리로 옮겨온 마라도나는 나폴리 사람들에게 열망하는 게 언젠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니까요. 강등권 위기에 놓인 나폴리는 마라도나와 함께 1987년 세리에A 첫 우승을 거머쥐었고, 그리고 3년 뒤 1990년 다시 한번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차량에 올라탄 나폴리 팬들이 우승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사진=EPA연합뉴스)차량에 올라탄 나폴리 팬들이 우승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사진=EPA연합뉴스)
일화도 차고 넘칩니다. 1987년 우승한 뒤 나폴리 공동묘지에 '이것을 못보고 세상을 떠나다니….'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하죠.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의 1990년 월드컵 4강전이 나폴리 홈구장에서 열리자 마라도나는 멸시하는 이탈리아 대신 자신을 응원해달라고 나폴리 팬들에게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나폴리의 세번째 우승, 마라도나를 떠올리는 건 당연합니다. (사진=AP연합뉴스)나폴리의 세번째 우승, 마라도나를 떠올리는 건 당연합니다. (사진=AP연합뉴스)
그렇다면 1991년 마라도나가 떠난 후 나폴리는 어땠을까요. 영화는 금방 사라졌습니다. 추락이 이어졌죠. 한때 3부리그로 떨어졌고 2004년엔 파산하기까지 했습니다. 영화제작자 데 라우렌티스가 구단을 사들이면서 2007년 세리에A에 복귀했고 그때부터 조금씩 변화했습니다.
김민재에게도 축구인생의 황홀한 순간 아니었을까요. (사진=EPA연합뉴스)김민재에게도 축구인생의 황홀한 순간 아니었을까요. (사진=EPA연합뉴스)
부침에 시달린 나폴리의 역사를 기억하기에 33년만의 우승이 도드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 여전히 축구는 회복, 구원, 부활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러나 마라도나 시절과는 또 다릅니다. 이번엔 탁월한 한 사람의 스타가 일궈낸 성취가 아닌, 여러 선수가 모여서 일군 놀라운 이야기라서 의미가 있습니다. 나이지리아 공격수 오시멘, 축구의 세계에선 변방일 수밖에 없는 조지아의 미드필더 크바라츠헬리아, 또 한국의 수비수 김민재처럼. 잘 알려지지 않아 저평가된 선수들이 하나의 팀으로 힘을 발휘했으니까요. 그래서 나폴리 팬들은 더 열광하고, 더 흥분하며 나폴리의 밤을 파랗게 수놓았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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