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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vSee] 옛날 축구, 옛날 중계

입력 2013-07-15 15:39 수정 2013-07-15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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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해 걸린 티켓 32장 중 아시아에 배정된 티켓은 4.5장, 그 가운데 무려 3장을 동아시아축구연맹 소속인 한국과 일본, 호주가 거머쥐었다. 이제 아시아 축구에서의 무게 중심은 동남아, 중동을 거쳐 동아시아로 넘어왔고,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아시아 팀들은 1승의 제물이 아닌 넘어야 할 산이 됐다.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국인 한국, 일본 호주가 모인다. 그리고 무너진 자존심 회복을 위해 칼을 간 중국 축구대표팀, 여자축구의 전통 강호 북한 여자축구대표팀도 한국을 찾는다. JTBC에서 독점 중계하는 2013 동아시안컵 축구대회를 앞두고 이의재 전 TBC(KBS) 축구해설위원을 만나 동아시아 축구의 발전사, 그리고 축구 중계 발전사를 되짚어 봤다.



#1. 옛날 축구

-아시아축구가 과거와 비교하면 많이 발전한 것 같습니다. 과거 메르데카컵이나 킹스컵을 중심으로 동남아 축구가 아시아를 이끌었는데, 이젠 동아시아 쪽으로 무게중심이 많이 넘어온 것 같습니다.

그럼. 과거랑 비교하기도 힘들지. 아시아축구를 사실상 오늘로 올려놓은 게 말레이시아 압둘 라만 수상(당시 아시아축구연맹 회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압둘 라만 수상이 1957년 메르데카컵을 창설했고, 그 때부터 아시아 축구가 강해졌거든. 우리나라 축구도 그때 많이 성장했지. 또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더 발전했고. 동아시아 축구가 세계 축구에서 1류는 못 되도 2류는 된다고 생각해. 축구 변방이었던 옛날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발전 한 거지.

-그만큼 상향 평준화가 됐고, 아울러 한국도 아시아 최강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 위치인 것 같습니다.

월드컵 본선만 계속 나간다고 잘 하는 게 아니야. 한국이 아시안컵 우승을 못하잖아. 옛날 1, 2회대회(각각 1956년, 1960년) 우승 이후에 한 번도 우승을 못했어. 자존심 상하는 얘기지만 일본은 1990년대 이후에만 5번 우승(1992년, 2000년, 2004년, 2011년) 했거든. 한 번씩 이기기는 하지만, 일본에 밀린다는 느낌이 든 지가 꽤 됐어. 빨리 시스템을 갖추고 쫓아가야지.

-한일전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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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판순
1960년대에 한일전 때 얘기하나 하자면, 당시에 일본 골키퍼가 워낙 잘 막아서 한국이 골을 못 넣었어. 그때 한국팀에 조윤옥이라는 주축 스트라이커가 있는데, 유판순 선수에게 가서 "판순이형이 해 줘야겠수" 한 마디 했다는 거야. 우리나라식인거지. 유판순이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고 경기장에 나섰지. 축구 하는데 손에 침은 왜 뱉어.

아니나다를까 코너킥 찬스가 났을 때 유판순이 골문 앞으로 들어가면서 헤딩을 했는데, 일본 골키퍼는 곧장 병원으로 실려간 거야. 당시엔 부상이 나면 선수교체를 못했어. 부상 당하면 당한 대로 10명이 뛰어야 했다고. (실제로 경고, 퇴장 제도와 선수교체 제도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때부터 도입해 적용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두 골 넣고 이겼다고. 지금 생각하면 참…중동 침대축구 뭐라고 할 게 아니야.(웃음)

한일전은 언제나 그렇지. 난 옛날에 두 나라 축구 하는 스타일을 바둑에 비교를 했었는데, 일본 바둑기사들은 정석으로 바둑을 두고, 한국 바둑기사들은 정석을 알면서도 무시하고 뒀다고. 그럼 일본은 얼떨떨해 하다가 당해. 축구도 마찬가지였어. 일본은 정석대로 축구를 하는데, 한국 선수들은 즉흥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 플레이를 한다고. 그게 어찌 보면 창의적인 플레이라고도 할 수 있지. 좀 나쁘게 말하면 배운 걸 무시하고 하는 건데, 그게 먹혀 들어간 거야.

1952년 스위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두 경기를 다 일본 동경에서 했는데(홈 앤드 어웨이 방식이었으나,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 대표팀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아 두 경기 모두 일본에서 치러짐), 1차전을 5-1로 이기고 2차전을 2-2로 비겨 우리나라가 본선에 출전하게 되지 않았어? 그 이후로 1990년대까지 그랬어. 일본은 정석플레이, 우리는 변칙플레이. 그런데 1990년대 일본이 유학 보낸 선수들이 성장하고, 외국 선수들도 귀화시키고 하면서 정석 위에 창의적인 플레이가 씌워지니까 당연히 그 위력이 세지. 빨리 한국이 노력해서 뒤집었으면 좋겠어.

-요즘 선수들은 SNS, 즉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거침없이 밝히는 편입니다. 요즘 기성용 선수는 이 때문에 논란이 됐었는데요. 바라보시는 마음이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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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기성용 행동이 잘못 됐지. 국가대표 선수가 가질 마음가짐은 아니야. 우리나라는 감독에게 항명한 선수가 거의 없었어. 그런데, 지도자 역할에 대해서도 얘기를 한 번 하고 싶어. 과거 서독(현재 독일)의 쾰른 체육대학 교수로 있다가 FC 쾰른 감독을 맡았던 바이스 바일러라는 지도자가 있었는데, 사람이 FC 쾰른 감독을 맡은 첫해 우승을 시켰다고. 어떻게 우승을 시켰느냐. 사이 나쁜 선수를 같은 방에 집어넣고, 최고참 선수와 최고 어린 선수들을 한 방에 집어넣었지.

당시로서는 상식을 파괴하는 지도 방법이었어. 팀워크를 위해서. 그리고 선수들이 화장실 다니는 주기까지 파악하는 등 개개인 특성을 철저하게 파악해 그 재능을 살려준 거지. 그렇게 하면 기성용 같은 선수도 이번 일 같은 행동이 나올 수가 없어. 성질이 삐딱하다 해도 그 성격이 그런 식으로 나올 수가 없다고.

기성용 행동의 잘못은 분명하지만, 기성용이 커 온 환경도 생각해 보고 자신이 원하는 팀에 녹아들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감독의 역할이라고 봐요. 기성용은 중학교 때부터 호주에서 생활했고, FC서울서 뛴 이후에도 스코틀랜드, 영국 가서 외국 선수들과 함께한 삶이 많아서 외로움이 컸을 거야. 거의 유일한 소통 수단이 아마 SNS였을 거라고. 기성용 선수 편 들어주자고 하는 얘긴 아니지만, 그런 면에서 감독의 역할도 나는 조금 아쉽지.

-과거에도 분명 지도자에 대한 불만도 있었겠고, 표현하려는 선수들도 있었을 텐데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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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택
대놓고 빈정대는 일도 있었지. 이회택.(웃음)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을 앞뒀을 때 한국과 이란이 부산에서 경기를 했어. 최정민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나에게 물어보더라고. 쓸만한 선수 좀 추천해달라고. 나이 조금 들었지만 이회택을 다시 써보라고 추천을 했지. 당시 차범근하고 투톱으로 뛰었는데 영 맞지가 않았어. 결국 이회택을 빼더라고. 그런데 이회택이 벤치 바로 옆에서 축구화 벗어 땅에 ‘탕탕’ 치면서 “땀 좀 나려고 하니까 교체시킨다”면서 불평을 하더라고.(웃음)

이거 한 번이 아니야. 그 전에 최영근 감독이 대표팀 맡을 때는 감독이 옆에 지나가니까 "겁쟁이 지나간다"고 하더라고. 최영근 감독이 "내래 귀는 밝아요"하면서 넘어갔지.(웃음) 이회택 같은 선수도 보기 힘들어. 의리도 있었거든. 박이천이 선수 때 홍콩 세미 프로에 진출해있을 때, 한국서 자기 경기가 없으니까 친한 선수 몇 명 데리고 가 돈도 안 받고 임대로 가서 성적을 확 올려주고 온 일도 있어. 박이천이 얼마나 고마웠겠어.(웃음) 어쨌든 그래도 한국 선수들은 감독 말 참 잘 듣는 것 같아서 좋아.

#2. 옛날 중계

-'옛날 중계'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축구 해설하시던 시절, 환경이 어땠나요?

라디오 중계로 시작했으니, 그 때를 먼저 생각하게 되지. 지금처럼 TV화면에 경기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말로 표현해야 됐어.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해설하려면 캐스터도 해설자도 항상 입이 바빴지. 문제는 TV해설을 할 때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말이 많아진다는 거야.(웃음) TV해설을 할 때는 상황 설명할 일은 줄어드니 더 깊은 해설을 할 수 있게 되지. 중계 환경도 과거에 좋아졌으니,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해설자가 많아졌으면 해.

-스포츠중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신문 기자로 일을 했고, 스포츠에 항상 관심이 많았지. 기회는 우연하게 왔어. 1962년 서울신문 정치부로 들어가서 기자로 일했고, 1970년대 초반 동아방송(DBS)에서 라디오 해설을 할 기회를 얻었어. 일반 관중으로 축구장에 가 본부석 옆쪽에서 축구를 보고 있는데, 낯익은 DBS 기자가 경기 후 같이 어딜 좀 가자고 하더라고. DBS에 가서 스포츠 좌담회를 한 거지. 좌담회 이후에 라디오 중계를 맡아달라고 해 중계를 시작하게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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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재 前 축구해설위원·대한축구협회 이사
-이후 TBC(지금의 JTBC)에서 TV중계 해설을 맡으셨습니다.

그렇지. 1975년 동양방송(TBC)에서 해설을 시작해서 1980년까지 만 5년을 그곳에서 해설했었지.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잠시 MBC에서 해설을 맡다가 1983년 프로축구가 생기는 시점에 KBS에서 내가 일하던 서울신문사로 직접 요청이 와 KBS에서 해설하게 됐고. 내가 해설자 노릇하면서 딱 하나 실수 한 게 있었지.

1980년 언론통폐합 후에 TBC가 KBS로 넘어갔었는데, KBS해설하면서 자꾸 ‘TBC’라고 말을 한 거야. 5년 해설한 그 버릇을 못 버린 거지. 당시 중계를 담당하던 김재길 PD가 나한테 급히 와서 쿡쿡 찌르는 데 표정이 안 좋더라고. 바로 정정했지 “KBS를 TBC로 잘못 얘기했다”고.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지.(웃음)

-언론통폐합 전후 분위기나 상황은 어땠는지요.

KBS에 TBC, DBS, CBS등 몇 개의 방송국이 다 모여들어 어수선했지. 몇 년이 지나도 불협화음이라는 게 말도 못할 정도로 심했어. TBC를 제외한 다른 방송국에서 온 아나운서들은 수준도 좀 떨어졌다고 생각했고. KBS와 TBC가 보이지 않는 다툼도 많이 했다고. 그 둘을 뺀 나머지 방송사 아나운서들은 조금 무시당하기도 했고. 불화가 방송에 그대로 나타나기도 했지.

-중계 환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요즘은 누적된 축구 데이터도 방대해 중계 소재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과거에는 어떤 데이터를 위주로, 어떤 내용을 해설하셨는지요.

취재와 책이지. 취재는 내 본업이 기자고 해설 맡아가며 꾸준히 취재 했으니 당연히 할 수 있었던 것이고, 나머지 지식은 전부 책이었죠. 일본에 출장 갔을 때 축구관련 책은 다 사다가 읽었지. 일본만큼 번역문화가 잘돼있거든. 갈 때마다 축구관련 도서는 몽땅 사서 찬찬히 읽었다고. 내 돈이 아까울 때는 신문사에 신청해서 보기도 했고.(웃음)

-캐스터와의 호흡도 중요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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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前 TBC-KBS 아나운서
그럼. 가장 잘 맞았던 캐스터는 서기원 아나운서(TBC 1기 아나운서)였지. 같이 지방 출장 가면 여관방에서 소주 한 잔 하면서 자연히 축구얘기를 한다고. 대화를 하다 보면 보통 내가 혼자 수다스럽고 아는체하고 떠들어.(웃음) 그런데 그걸 그 사람은 다 기억해. 다음날 축구 경기 해설을 하다 보면 내가 지난밤 했던 이야기를 떠올려서 적시에 잘 끄집어낸다고. 그러면 중계가 재미있어지고, 내용도 풍부해지지. 워낙 호흡이 척척 들어맞아서 그 뒤에 다른 분들하고 해설 하려니 힘들더라고. 아마도 나 말고 모든 해설위원들이 그런 생각을 했을거야.(웃음)




#3. 아시아 맹주로의 부활을 바라며.

-홍명보 선수가 이제 감독이 되어 벤치에 서는데, 격세지감 느끼시죠?

어릴 때부터 유명했지. 당시 동대문운동장에서 축구중계를 할 때였는데, 고려대에 입학면서 대표팀에도 뽑혔고 그걸 중계도 몇 번 했고. 언젠가 일본 NHK 방송으로 축구를 봤을 때 감흥도 컸어. NHK에서 축구 중계를 하는데 마침 홍명보가 뛰는 가시와레이솔 경기를 틀어주더라고. 잘 하더라고. 참 잘 하더라고. 일본이 외국선수, 특히 한국이라면 더 배척했을 건데, NHK 캐스터와 해설자가 “오늘 너무 잘하더라”면서 칭찬이 이만 저만이 아니더라고. 선수들 퇴장할 때 홍명보가 돌아서 들어가는 모습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서 홍명보만 찍어. 기특하더라고. 기쁘고. 선수들을 많이 품을 줄 아는 훌륭한 감독이 됐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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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이 동아시안 컵을 통해 데뷔하는데, 힘 될 말씀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독일에는 1920년대부터 1986년까지 감독이 딱 4명이었어요. 오토 네르츠(1928~1936), 제프 헤르베르거(1936~1964), 헬무트 쇤(1964~1978), 유프 데어발(1978~1984) 이렇게. 물론 감독 선임에도 독일 거주 기간, 대표팀 어시스턴트 코치 경험, 외국어 등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들이 붙어있었고. 프란츠 베켄바우어를 선임할 때 그 원칙들이 깨지긴 했지만, 감독을 한 번 뽑으면 쉽게 바꾸지 않아. 이처럼 우리나라도 믿어 주면서 멀리 보고 키워갔으면 좋겠고.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월드컵에서 잘하는 것도 좋지만, 아시아 최강 자리부터 되찾았으면 싶어.

정리=방송뉴스팀 김형준 기자 mediaboy@joongang.co.kr
사진=중앙 포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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