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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하면 꼭…" 잇단 한인 피살…필리핀 현지 가보니

입력 2015-10-20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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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필리핀에서 한국인이 피살됐다는 소식, 끊이지 않고 들려옵니다. 지난 3년동안 31명이 목숨을 잃었는데요.

이곳에 한국인과 관련해서 대체 어떤 문제들이 있는 건지 강신후 기자가 직접 필리핀 현지 사건 현장들을 찾아가봤습니다.

[기자]

[필리핀 교민 : 본인은 예감을 했다고. 예감을 했다니깐.]

[이동활 대표/필리핀 112 : 교민들 사이에서는 아 이 사람이 문제가 있을 수 있겠다. 위험할 수 있겠다. 이런 징조가 있지 않습니까.]

지난 2일 수도 마닐라 인근 아마데오시에 거주하던 54살 이모 씨와 부인 박모 씨가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취재진이 현지 경찰을 직접 찾았습니다.

[경찰 관계자/필리핀 아마데오시 : 한 사람을 지목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용의자로 이미 특정했습니다.]

범인을 곧 체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더 이상의 말은 아꼈습니다.

저는 경찰과 함께 사건현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개들이 짖어댑니다.

사건이 난 새벽. 담을 넘어온 범인이 쏜 총에 이 씨 부인이 먼저 쓰러졌습니다.

고압주의라는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있습니다. 고압선으로 사방이 둘러싸여져 있는데 이런 곳을 침입한 것입니다.

이 씨는 범인을 피해 도망을 가다 저곳에서 총을 맞아 숨졌습니다.

살해 현장에 남아있는 이 씨의 슬리퍼가 당시 급박한 상황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취재진은 이 씨 부인이 죽기 전 현지 경찰에 두 번이나 신고를 했던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홍덕기 영사/필리핀주재 한국대사관 : 남편의 동생이 거기 목사인데 혹시 위험한 일이 있으면 전화를 해라. 그래서 경찰서 전화번호를 가르쳐줬대요.]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고 있었지만 경찰과 통화는 되지 않았고 결국 숨진 겁니다.

[경찰관/필리핀 아마데오시 : (전화를 받은) 기록이 없어요.]

경찰 수사 기록을 보면 이 씨 부부는 건물을 짓던 과정에서 필리핀 현지 공사업자들과 대금 문제 등으로 심한 다툼과 위협까지 받았습니다.

이 씨 사건 현장에서 2km 떨어진 곳에서도 두 달 전 60대 부부가 숨졌습니다.

인적이 드문 외딴 지역에 지어진 단독 주택. 64살 나모 씨와 부인 김모 씨가 살던 집입니다.

나 씨 부부는 자신의 집안에서 10여발이 넘는 총탄에 맞고 숨졌습니다.

[필리핀 교민 : 원래 한국인들이 이렇게 외진 곳에 살면 안 돼요. 이렇게 외진 곳에 살면 여기는 나라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에.]

나 씨 부부 역시 자동차 대금 문제와 공사 문제 등을 놓고 갈등을 겪으며 살해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여러 마리의 개를 키우고, CCTV도 설치하려 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나 씨 집은 무려 16명의 명의로 등록돼 있었습니다.

이처럼 필리핀에선 집이나 건물을 한국인 단독으로 소유할 수 없어 다른 투자자들과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큽니다.

[경찰 관계자/필리핀 실랑 : (나 씨의) 건물 공동소유자 가운데 몇 명을 이미 불렀습니다. 계속 조사를 해야 합니다.]

마닐라로부터 차로 2시간 거리인 앙겔레스.

지난달 이곳에 사는 사업가 박모 씨가 총을 맞고 숨졌습니다.

취재진이 당시 CCTV를 입수했습니다.

급히 계단을 내려가는 한 남성. 이후 사람들이 누군가를 들고 내려옵니다.

피해자 박 씨로, 총격 직후 바로 앞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이 계단으로 박 씨가 실려갔습니다. 이곳 사무실에 있었는데, 쓰러졌는데도 총격을 가해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있습니다. 6발을 난사했는데 벽에도 여전히 총알 자국이 보입니다.

[사건 목격자 : 이 동네에선 폭죽 터트리고 하는 게 많아요. 처음엔 장난인가 싶었는데 총 쏘는 모션을 하고 손을 안 내리더라고요. 아 이거는 장난 아니다.]

박 씨는 자신의 호텔 매각을 놓고 다른 한국인과 분쟁을 겪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박 씨가 청부살해를 당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박 씨 측근들은 지금도 반대 측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모 씨/박 씨 측근 : 한국 가라. 안 가면 우리가 죽일 수도 있다. 이런 위협을 하고 갔어요.]

박 씨 죽음의 배후로 지목된 이모 씨는 다른 범죄로 필리핀 도피생활을 하다 최근 현지 경찰에 검거돼 한국에 송환됐습니다.

한국인 간의 분쟁에서 청부 살인업자가 동원되는 사례는 이번 사건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인터넷 도박업자 신모 씨는 자신의 한국인 직원을 청부살해했다가 현지 경찰에 검거됐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쳐온 수배자들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최근 일어난 사건들 모두 사건 현장에선 피해자들이 스스로 신변을 보호하려 했던 흔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실제 협박을 받고 있는 교민들은 필리핀에서 받는 살해 경고는 현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매우 높다며 우려합니다.

[필리핀 교민 : 한번 경고하고 나면 꼭 죽여요. 그러니까 그걸 (갈등을) 지금 풀어야 돼요. 정말 급해요. 그런 상황이고.]

필리핀에서 살인 사건이 많은 이유는 총기 소유가 쉽다는 겁니다.

[필리핀 현지인 : 3000~5000페소 (12만원) 이면 총을 살 수 있습니다. (총기 자격증은?) 없어도 됩니다.]

취재진이 사설 경호원들에게 접근해 총기를 만져도 특별한 제지가 없습니다.

수십 달러만 내면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할 수도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끊이지 않는 한국인 피살. 지난 3년간 무려 31명이 살해됐습니다. 재외국민 살인의 40%가량이 이곳에서 발생했습니다. 매년 10명꼴입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위험상황에 있는 교민들에 대한 신변보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분쟁에 휘말린 교민들을 중재할 기구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됩니다.

[문종구/필리핀 현지 사업가 : 필리핀 내에서 발생하는 교민들 간 알력이나 이해관계 이런 것에 대한 분쟁을 그 피해자가 대사관에 있는 우리 수사관에게 먼저 신고를 해서 그 수사관이 1차적으로 수사한다거나…]

반면 우리 정부는 필리핀 경찰에 40억 원을 들여 수사기자재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한국의 여느 시골 마을처럼 평온해 보이는 이곳. 하지만 매년 10여 건의 한국인 피살사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건발생 후 범인을 쫓기보다는 분쟁 속에서 위협받고 있는 교민들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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