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서울 동대문에 무료 급식소 '밥퍼'라는 곳이 있습니다. 벌써 36년째 어르신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따뜻한 밥 한끼 드리는 곳인데 매일 5백명씩 찾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참 고마운 곳일 텐데, 올 겨울이 지나면 철거될 수 있다고 합니다.
무슨 사연인지, 이은진 기자입니다.
[기자]
아직 거리는 어둑한데 멀리 건물은 벌써 불을 밝혔습니다.
밥퍼라고 쓴 두 글자 간판.
36년 동안 누군가에겐 밥 굶지 않아도 된다는 표식이었습니다.
새벽 6시. 영하 날씨.
안으로 들어갔더니 공기는 뜨끈합니다.
한 솥 가득 삶는 가래떡에서 허연 김이 올라오고 누룽지는 끓기 시작했습니다.
식사 한 시간 전인데 벌써 자리는 반쯤 찼습니다.
[곽영동/경기 의정부시 : 겨우 첫차 타고 와요, 그냥.]
[밥퍼 이용객 : 추워서 아주 그냥 힘들어요. 집에 있기도 힘들어, 진짜.]
추운 집에 혼자 있느니 여기 와서 밥 기다리고 서로 대화하는 게 낙입니다.
책 펴놓고 공부하고, 일자리를 찾아보기도 합니다.
[밥퍼 이용객 : 독서실도 갈 수가 없고 공부하고 싶어도… 집에서도 뭐 책상 같은 것도 잘 마련이 안 돼 있고…]
밥만 먹는 게 아니라 사랑방이자 공부방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급식이 시작됩니다.
둘러앉아 밥술을 뜨는 노인들, 국은 따뜻하고 마음은 더 따뜻합니다.
식사가 끝났는데 이 노인들, 그대로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안 먹는 식료품을 나누고, 경로당에서 탄 상장 자랑도 합니다.
집에서 자식들에게 부담 주느니 여기 있는 게 마음 편합니다.
[성차경/서울 답십리동 : 조용하게 나 혼자 빠져버리면은 조용해지니까…]
[김미경/밥퍼나눔운동본부 부본부장 : '자녀들이 있으세요?' 하면 고개를 흔들어요. '없으세요?' 해도 흔들어요. 근데 제가 방문을 해보면 가족사진이 있는 경우가 많이 있었어요.]
점심이 되면 식사하러 오는 노인은 더 늘어나고 줄은 밖까지 길게 늘어섭니다.
매일 점심 500여 명이 찾아옵니다.
[밥퍼 이용객 : 무릎이 아파 가지고 쉬어 가면서 오고, 한 시간도 더 걸리지.]
하지만 밥퍼는 곧 없어질 위기입니다.
관할구청이 불법건축물이라며 철거명령을 내렸습니다.
1년째 법정 싸움 중인데, 곧 결론이 납니다.
[곽영동/경기 의정부시 : 내 집같이 살던 사람이라, 뭐 말할 수 없는 거지.]
어쩌면 내년 겨울엔 이 공간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