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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승리에 묻힌 희생…"우리도 기억해달라"

입력 2023-09-15 21:16 수정 2023-09-1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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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 인천 월미도에선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대규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떠들썩했던 행사 뒤편엔 잊힌 것들도 있습니다. 월미도에 살았던 원주민들의 희생은 여전히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윤정주 기자가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기자]

군함은 일제히 함포 사격을 시작하고 상륙 대원이 탄 고속정은 뭍으로 돌진합니다.

연막탄을 터뜨리고 헬기가 엄호합니다.

73년 전 인천 상륙 작전을 재현한 장면입니다.

[강력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힘에 의한 평화를 구축하고자유 민주주의를 굳건히 수호할 것입니다.]

오늘 기념식, 함정 25척과 항공기 15대를 동원했습니다.

맥아더 장군 동상에 헌화하고 전사자 추모 행사와 거리 행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큰 행사에서 잊힌 존재가 있습니다.

상륙 닷새 전 월미도 민간인 주거지에도 대규모 폭격이 이어졌습니다.

[이애자/월미도 민간인 폭격 피해자 : 비행기가 빙빙 돌고 그랬어요. 이상하다. 왜 그럴까 하는 찰나에 갑자기 폭탄이 와장창하고 뿌렸어요.]

당시 9살이던 이애자 씨 가족은 살기 위해 섬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애자/월미도 민간인 폭격 피해자 : 갯벌을 들어가는데 발이 빠져요. 내가 (가족과) 많이 떨어졌어요. 우리 오빠가 나 데리러 오다가 폭격을 던진 거예요. 그래서 오빠가 맞은 거예요.]

오빠를 잃은 이애자 씨처럼 폭격에 희생된 민간인은 100여 명이었습니다.

전쟁은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월미도를 떠난 주민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이애자/월미도 민간인 폭격 피해자 : 불바다가 다됐는데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 씨가 살던 곳은 전쟁 뒤에 군사 지역으로 묶였고 지금은 공원이 됐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승리 뒤에 가려진 민간인 희생자들, 우리 존재도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광호/인천평화복지연대 : 추모 행사는 단 30분도 안 이뤄지고 있습니다. 아픔이라든지 이런 내용에 대해서는 대부분 다 묻히고 있어서…]

승리를 기억하는 것 만큼, 희생과 아픔도 새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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