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이장면]누구나 골만 기억한다, 그래도 이강인은 '드리블'이다

입력 2023-04-19 16:43 수정 2023-04-19 18:01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트위터

서너 명이 에워싸도 휘휘 빠져나갑니다. 겹겹이 막아서도 어느샌가 틈을 찾아냅니다. 그 사이를 요리조리 뚫고 지나갑니다. 공은 늘 몸 중심 어딘가에 품듯 간직한 채. 상대를 따돌리는 방식은 뻔하지 않습니다.

셀타비고전에서 눈부셨죠. 마요르카 이강인은 '주간 베스트11'에 잇달아 이름을 올렸습니다. (사진='풋몹' 트위터 캡처)셀타비고전에서 눈부셨죠. 마요르카 이강인은 '주간 베스트11'에 잇달아 이름을 올렸습니다. (사진='풋몹' 트위터 캡처)
공을 짚고 한바퀴를 휘돌아 나가는 '턴'은 발레리노의 한 장면과 포개집니다. 공을 두 다리 뒤로 보내서 툭 차서 수비를 교란할 때는 '아하, 이런 방법도 있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어쩌다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마르세유턴', '팬텀 드리블'이 언제나 쏟아집니다. 실제 상황이지만 서로 계산된 수를 나눠 갖는 영화 속 '약속 대련'처럼 보입니다. 속는 사람도, 속이는 사람도 매끄럽습니다.

이강인은 셀타비고전에서 골을 못넣었지만 양팀 통틀어 최고 평점인 9.1을 받았습니다. (사진=EPA연합뉴스)이강인은 셀타비고전에서 골을 못넣었지만 양팀 통틀어 최고 평점인 9.1을 받았습니다. (사진=EPA연합뉴스)
호나우지뉴는 “축구는 환희에 관한 것이고, 드리블에 관한 것이다. 나는 경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모든 아이디어를 좋아한다”고 말한 바 있죠. 이강인을 보면 왜 수많은 축구의 드리블러가 자랑하듯 드리블을 예찬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한 번의 속임, 한 번의 젖힘, 한 번의 터치, 한 번의 질주에 '쾌'는 쌓입니다. 그런 드리블이 화려함 하나로만 머물렀다면 여느 유튜브 창에서 진기명기처럼 나오는 쇼라 넘겼겠죠. 그 현란함은 상대 수비를 제대로 헤집는 효과적인 방식이어서 설득력을 얻습니다. 드리블은 더 좋은 패스와 더 나은 찬스를 만드는 과정으로 읽힙니다.
셀타비고전에선 이강인의 영리한 경기 운영에 눈길이 쏠렸죠. 상대 선수와 신경전도 지혜롭게 넘겼습니다. (사진=EPA연합뉴스) 셀타비고전에선 이강인의 영리한 경기 운영에 눈길이 쏠렸죠. 상대 선수와 신경전도 지혜롭게 넘겼습니다. (사진=EPA연합뉴스)

축구 통계 사이트 '풋몹'에 따르면, 올 시즌 이강인의 드리블 성공률은 67.8%입니다. 10번 드리블을 하면 7번가량은 수비를 제치고 자기만의 공간을 열어 나아갔다는 거죠. 언제든, 어디서든 수비 한 사람 정도는 따돌릴 수 있는 선수라는 것입니다. 올 시즌 한 경기당(90분) 드리블은 평균 2.4회 성공했습니다.
올시즌 이강인의 히트맵. 측면에 서지만 중앙에서 역할도 상당합니다. 활동폭은 더 넓어졌습니다. (사진=소파스코어닷컴 캡처) 올시즌 이강인의 히트맵. 측면에 서지만 중앙에서 역할도 상당합니다. 활동폭은 더 넓어졌습니다. (사진=소파스코어닷컴 캡처)
셀타 비고전에선 더 두드러졌습니다. 13번의 드리블을 시도해 9번이나 성공했습니다. 성공률은 69%나 됩니다. 골을 넣지 않았어도 '후스코어드닷컴'이 양 팀 통틀어 가장 높은 평점 9.1을 준 이유입니다.
이강인은 수비 한명 정도는 쉽게 제칠 수 있는 선수입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이강인은 수비 한명 정도는 쉽게 제칠 수 있는 선수입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이강인의 드리블이 돋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따로 있습니다. 전형적인 윙어도, 스피드를 내세우는 돌파형 선수도 아니죠. 손쉽게 빈 공간에 공을 차넣고 달리는 스타일도 아닙니다. 밀집된 지역에서 압박을 풀어내기 위해 드리블을 활용할 뿐입니다. 작은 키는 낮은 무게중심을 선물했고 그래서 좁은 공간에서 작은 움직임으로 상대를 떨궈냅니다. 메시가 드리블할 때 공은 몸에서 70cm 정도로 가둬두듯 간수한다고 하는데, 이강인도 공은 몸 가까이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3월 우루과이전. 이강인을 막아서기 위해선 반칙이 필요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3월 우루과이전. 이강인을 막아서기 위해선 반칙이 필요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무엇보다 이강인의 드리블은 어떤 목적과 연결됩니다. 네이마르는 "드리블에는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하고, 나는 골을 위해 드리블을 한다"고 말한 바 있죠. 이강인 역시 자신의 기술을 뽐내는 창으로서 드리블을 부리진 않습니다. 드리블을 해야 하는 세 가지 목표와 닿습니다. '공을 지닌 채 수비수를 제치는 것, 그로 인해 새로운 패스할 길을 열어젖히는 것, 나아가 공의 소유와 통제를 유지하는 것'. 모두에 충실합니다. 드리블만을 위한 드리블이 아닌, 그다음이 있는 드리블. 누군가의 축구는 골로 기억되겠지만 이강인의 축구는 드리블로 기억될 수밖에 없습니다.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