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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러닝머신 시위' 미국 아빠 아이들 만났지만...'준이 찾기' 또 실패

입력 2024-04-30 12:43 수정 2024-04-30 15:57

한국으로 불법 탈취된 두 아동 인도 집행 성공
아동에 의사 묻는 법 조항 삭제했지만
여전히 "학교도 안 보내고 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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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불법 탈취된 두 아동 인도 집행 성공
아동에 의사 묻는 법 조항 삭제했지만
여전히 "학교도 안 보내고 잠적"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 돌아간 존 시치. 〈사진=부모따돌림방지협회〉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 돌아간 존 시치. 〈사진=부모따돌림방지협회〉


아내가 데리고 사라진 자녀들을 만나기 위해 '러닝머신 시위'를 하던 미국인 존 시치가 지난 15일 아이들을 되찾았습니다. 아이들과 미국에 돌아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 데리고 잠적한 아내, 시작된 긴 싸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던 존은 2013년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두 아이를 두었습니다.

아내는 2019년 10월 여행을 간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간 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한쪽 배우자가 일방적으로 해외로 아동을 불법 이동시킨 '아동 탈취'에 해당합니다. 국내에선 생소한 개념이지만, 국제사회에선 심각한 범죄로 봅니다.

〈지난해 JTBC 보도〉

〈지난해 JTBC 보도〉


송미강 부모따돌림방지협회 대표(상담심리 전문가)는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한 채 한쪽 부모에 의해 익숙한 세계를 떠나와 숨고 도망 다니게 된 아이들은 불안하고 힘든 시기를 보낸다"라며 일종의 학대라고 설명했습니다.

함께 생활하는 한쪽 부모의 일방적인 설명에 세뇌되며, 다른 쪽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갖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아이는 사랑한다는 말 대신 다른 한쪽의 부모가 나쁘고 무섭다는 얘기만 듣고 자라게 됩니다. 혼란스럽겠죠. 왜 나를 버렸을까, 왜 나를 떠났을까. 학교 친구들은 아빠가 있는데 왜 나는 없을까? (존 시치. 지난해 4월 JTBC 인터뷰)

이런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 협약도 있습니다. 94개 나라가 '헤이그 국제 아동 탈취 방지 협약'을 맺었습니다. 한국도 가입한 지 11년이 됐지만, 지난해까지 매년 세계 15개 '아동 탈취' 국가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3살 아이에게 '누구랑 살래?'...바뀐 예규 첫 시행


존은 양육권, 아동반환 청구 소송 등에서 모두 이겼습니다. 미국과 한국 법원 모두 존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강제집행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법원 예규는 당시 '아동의 의사에 반해 집행할 수 없다'는 조항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유아 인도 집행 절차가 상식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낯선 집행관이 찾아가 '아빠와 함께 가고 싶니?'라고 물어본 뒤, 아이들이 아니라고 하면 집행을 하지 않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몇 년에 걸친 법원의 판결이 현장에서 무력화되는 현실, 유아의 거부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집행 절차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아이에게 5분 남짓한 시간에 '판결이 이렇게 났는데 너는 엄마랑 살고 싶니 아빠랑 살고 싶니' 이렇게 물어요.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도 못하고 운다거나 또는 싫다거나 아니면 뒤로 숨는다든지…. 실질적으로 유아 인도 집행률은 거의 없다시피 한 실정이고요. (민지원 변호사. 지난해 4월 JTBC 인터뷰)

러닝머신 시위를 하는 존 시치의 모습. 〈사진=부모따돌림방지협회〉

러닝머신 시위를 하는 존 시치의 모습. 〈사진=부모따돌림방지협회〉


존은 경찰서, 대법원 앞 등에서 '러닝머신'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따돌림방지협회 등 시민단체의 법 개정 촉구가 잇따랐습니다. 관심이 커지면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현실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당시 최호식 가정법원장은 예규 개정을 고민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결국 지난 1월 대법원이 예규를 바꿔 '아동의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조항을 삭제했습니다. 이달부터 예규가 현장에 적용됐고, 존은 아이를 찾았습니다.

'준이 찾기' 이번에도 실패…바뀐 예규 허점은?


하지만 비슷한 처지에 놓인 미국 치과의사 성재혁씨는 이번에도 아들 성준이를 되찾지 못했습니다. 어제(29일) 집행관과 미국 대사관 직원 등이 아동의 집을 찾아갔지만 이미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잠적한 뒤였습니다. 병결 처리를 하고 학교도 보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성 씨는 아들 준이를 못 본 지 5년이 넘었습니다. 2019년 한국인 아내가 당시 만 3세였던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잠적했습니다.

역시 미국과 한국 법원이 모두 성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미국 법원은 당시 “아내의 정신 건강에 심각한 우려가 될만한 증거들이 있다. 아동에게 장기적으로 심리적 위해를 가할 수 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사진=지난해 JTBC 보도〉

〈사진=지난해 JTBC 보도〉


미국 FBI는 성준이를 실종자로, 아내를 납치범으로 수배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반환에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성씨는 최근 이런 과정을 'Do you remember dad (아빠가 기억나니?)' 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올해 한국 국제 단편영화제, LA 독립 단편 영화제 등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거의 매일 밤 잠이 들면서 아이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성숙한 어른이니까, 슬픔과 비탄에 빠져서 허우적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아이가 나중에 컸을 때 '아빠가 힘들지만 꿋꿋이 나를 찾기 위해 이렇게 최선을 다했구나'라고 생각하도록 말입니다. (성재혁씨. 지난해 4월 JTBC 인터뷰)

성재혁씨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Do you remember dad (아빠가 기억나니?)' 캡처.

성재혁씨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Do you remember dad (아빠가 기억나니?)' 캡처.


예규가 바뀌어 이번엔 기대를 했던 성씨는 좌절했습니다. 그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도 '잘 될 것이니 기다려보자'는 말을 했는데 실제 현장에서 너무 다른 상황을 맞닥뜨려 충격이었다"라며 "미국 FBI가 아이의 안전한 미국 귀가 등 상세한 계획까지 짜 놓았던 상태였다" 라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송미강 대표는 "현장 집행관, 동행하는 아동 심리 전문가들이 이 사안의 특수성을 미리 충분히 이해하고 비밀리에 신속히 집행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그런 점이 법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라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이들의 자세한 사연과 새로운 예규의 허점 등은 오늘(30일) 저녁 6시 40분 〈JTBC 뉴스룸〉에서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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