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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사망'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사망 9년 만 산재 인정

입력 2024-03-21 20:39 수정 2024-03-21 20:49

법원 "산재보험, 첨단산업의 불확실 위험 대비해 근로자 희생 보상하는데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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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산재보험, 첨단산업의 불확실 위험 대비해 근로자 희생 보상하는데 목적"

삼성전자에서 14년 넘게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A씨가 항소심에서 산재 인정을 받았습니다. A씨가 숨진 뒤 9년 만입니다.
 
〈자료사진=JTBC 방송화면 캡처〉

〈자료사진=JTBC 방송화면 캡처〉

서울고법 행정4-1부(재판장 이승련)는 어제(20일)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를 인정하고 유족급여를 지급하라고 낸 소송의 1심 판결을 뒤집고 유족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건강했던 30대, 백혈병 확인 뒤 일주일 만 사망

A씨는 2001년부터 2015년 2월 초까지 약 14년 동안 삼성전자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했습니다. 매일 텔레비전 모니터들을 쳐다보며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결함은 없는지 검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섭씨 50도가 넘는 고온의 시험실에 들어가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2007년부터 정기적으로 종합건강검진을 받아왔지만 큰 이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2015년 2월 말 급성 백혈병을 진단받았고, 진단이 있고 나서 일주일 여 만에 결국 숨졌습니다.

건강했던 A씨의 갑작스러운 사망. 유족은 산재를 의심했습니다. A씨가 매일 검사하고 쳐다보던 텔레비전 모니터에서 나오는 '극저주파 전자기장'은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특히 급성 백혈병과의 관련성도 보고된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극저주파 전자기장과 백혈병 간의 연관성이 현재까지는 명확하지 않다"는 근거를 들었습니다.

2018년, 유족은 법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1심 결론을 받아보는 데까지는 4년이 더 걸렸습니다. 재판과정에서 감정을 거부하는 의사들이 많아 재판이 늦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근로복지공단의 판단과 같았습니다.

1심 판단의 주된 근거는 '논문의 숫자' 였습니다. 1심 재판부는 "극저주파 전자기장 노출이 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논문은 4개인데, 연관성이 없다는 내용의 논문 숫자가 더 많다"며 산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감정의들도 대체로 비슷한 의견이었습니다. 법원은 또 A씨가 20년 간 하루 반 갑의 담배를 피운 것도 산재 판단을 가로막는 근거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2심에서 뒤집어진 '관계없음' 논문 숫자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제출한 업무상 질병여부 역학조사 결과 회신. 〈사진=임자운 변호사 제공〉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제출한 업무상 질병여부 역학조사 결과 회신. 〈사진=임자운 변호사 제공〉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앞서 "최신 연구결과들을 검토한 결과 11개 논문 중 7개의 논문이 극저주파 자기장과 백혈병 간 역학적 연관성이 없다고 발표했다"는 내용의 업무 관련성 평가결과를 회신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 '논문의 숫자'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원고 측에 "인용된 논문들의 연구결과를 개별적으로 살펴보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결과, '연관성 없음'의 근거가 됐던 논문 7개 중 일부는 오히려 극저주파 자기장과 백혈병이 '연관성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결과적으로 11개의 논문 중 절반 넘는 연구가 '연관성 있음'을 가리키고 있었고, 2심 산재 인정의 주요 근거가 됐습니다.

2심 재판부는 그 밖에도 A씨의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관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 여러 근거를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1심은 A씨의 극저주파 전자기장 노출 추정치(18.5μT)를 국제비이온화방사보호위원회 직업인 노출 기준(1,000μT)과만 단순 비교해 낮은 정도에 불과하다고 봤지만, 2심은 여러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유럽 환경의학학술원의 극저주파 전자기장 노출 권고 하한(1μT)를 18배 초과하는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적지만 주기적으로 이뤄졌던 포름알데히드 노출, 주 60시간을 초과하는 근무시간에 따른 과로와 스트레스도 병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아직' 증명되지 않은 위험?…"그게 법의 목적"

1심과 2심의 결정적인 차이는 '현재까지 명확히 증명되지 않은' 직업환경적 요인과 질병 사이의 관계를 해석하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1심은 '아직 증명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곧바로 산재를 부정하는 근거로 들었지만, 2심은 이걸 산재보험법이 필요한 이유로 봤습니다.

2심 재판부는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새로운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인과관계 규명이 곤란하더라도 곧바로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산재보험법의 목적은 "첨단산업의 불확실한 위험을 대비해 근로자의 희생을 보상하면서 첨단산업의 발전을 장려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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