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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자다가도 벌떡"…1년 전 작은 불씨 하나가 만든 '산불 흉터'

입력 2023-03-0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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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꼬박 1년 전 경북 울진을 비롯한 동해안 일대에 난 대형 산불로 서울 3분의 1 크기의 산림을 잃었습니다. 지금처럼 건조하고 바람이 강한 3월에는 작은 불씨 하나만으로도 주민들은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을 수 있는데요.

최악의 화마가 지나간 경북 울진을 최재원 기자가 찾아가 봤습니다.

[기자]

산 능선을 타고 시뻘건 불길이 타오릅니다.

1년 전 경북 울진을 태운 화염은 213시간, 역대 가장 길게 이어진 최악의 산불입니다.

다시 찾은 울진, 까맣게 탄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습니다.

산들은 초록빛이 사라진 채 벌거벗고 있습니다.

원래는 산 전체가 소나무로 울창했던 곳인데 지금은 모두 베어졌고, 이렇게 나무 밑동들만 검게 그을린 채로 남아있습니다.

민둥산에 둘러싸인 신화2리 마을은 산불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장세탁/경북 울진군 신화2리 주민 : 여기에요, 여기요. (여기가 원래 선생님 댁이셨어요?) 예. 원래 집이에요.]

장세탁 씨의 집이 있던 자리는 이제 공터가 됐습니다.

[장세탁/경북 울진군 신화2리 주민 : 정말로 조금만 늦었으면요. 아버님은 돌아가셨다고. 마루 있는데 뒤에서 불이 그냥 넘어오는데도 어르신이 거동을 못하니까. 불이 그냥 이 동네를 다 덮쳐버린 거야.]

집을 잃은 가족은 8평짜리 컨테이너 임시주택에서 지냅니다.

[장영동/경북 울진군 신화2리 주민 : 불편하지만 할 수 있는가. 이거 아니면 갈 데가 없는데. 이 집이 아니면. 숟가락도 하나 못 가지고 나왔네. 다 태워버렸네.]

주민들은 여전히 그날의 악몽이 두렵고, 컨테이너 생활에도 지쳤습니다.

[엄석/경북 울진군 신화2리 주민 : 아직도 심장이. 밤에 누워있으면 겁이 나가지고 퍼뜩퍼뜩 깨는데 약을 먹어도 안 줄어.]

[남향난/경북 울진군 신화2리 주민 : 눈물이 펑펑 쏟아져. 와 보니 기가 막혀가지고. 내 집이라고 (새집을) 지어 가지고 조금이라도 살아보고 죽었으면 그게 소원이지.]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앗아간 대형 산불, 시작은 작은 불씨였습니다.

1년 전 울진 산불이 시작된 곳입니다.

여기서 붙은 작은 불씨가 산 전체로 번졌고 울진을 넘어 동해안 일대를 화염에 휩싸이게 했습니다.

울진 산불의 최초 발화 장면입니다.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이 포착되고 불과 3분 뒤, 산 중턱까지 불길이 번집니다.

[배영호/경북 울진군 북면 산불감시원 : 인재야. 인재. 담배 피는 사람들이 차 몰고 가다가 턱 던진단 말이야. 그게 붙어버리면 큰불이 나는 거지.]

실험으로 확인해봤습니다.

바람에 날린 불씨들이 바짝 마른 나무더미에 달라붙자 금세 불길이 솟구칩니다.

제자리 서 있던 불길은 강한 바람과 만나 기세가 등등해집니다.

산비탈처럼 경사가 높은 곳에선 더 빠르게 번집니다.

불길이 도깨비불처럼 치솟으면 주위에 불똥을 흩뿌리며 대형 산불로 이어집니다.

[권춘근/국립산림과학원 박사 : 바람이 6㎧에 경사도가 20도 이상 주어졌을 때 확산 속도는 78배 이상 차이가 나요. 작은 불이 재빠르게 확산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돼 있는 게 동해안 지역의 특징이에요.]

경북 예천에서 축구장 50개 규모의 산림이 불에 타는 등 이달 들어 하루 10건 꼴로 크고 작은 산불이 전국에서 잇따르고 있습니다.

산림 당국은 산불을 내면 실수든 고의든 봐주지 않고 처벌하겠다며 집중 단속에 들어갔습니다.

(화면제공 : 국가산불실험센터)
(영상디자인 : 강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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