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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 전설이 잠들다…"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인류에 남긴 유언

입력 2022-12-30 20:30 수정 2022-12-30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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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골대를 등지고 공중에서 때린 공이 골망을 흔듭니다. '오버헤드킥'의 역사는 1968년, 펠레의 이 장면에서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요. 불멸의 기록은 물론이고, 현대 축구의 규칙에도 큰 영향을 미친 축구황제 펠레와의 이별에 세계 곳곳에서 추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선화 기자입니다.

[기자]

'전설'이 된 위대한 이름 '펠레'.

본명은 '에드손 아란테스 두 나시멘투'입니다.

천재 발명가 에디슨을 닮길 바라는 부모의 바람이 담겼습니다.

발명가가 되진 못했지만, 펠레는 스포츠를 예술로 바꾼 가장 창의적인 축구 선수가 됐습니다.

열일곱의 나이에 월드컵에서 여섯 골을 터뜨리며 고국에 첫 우승컵을 안겼고,

[1958년 스웨덴 월드컵 : 펠레는 불과 17살이지만, 이미 최고의 축구선수입니다!]

이후 칠레, 멕시코 월드컵까지 총 세 번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빈민촌에서 맨발로 양말 뭉치를 차던 소년은 '황제'로 불리기 시작했고, 등번호 10번은 축구 선수들에게 꿈의 숫자가 됐습니다.

월드컵 최연소 우승, 최연소 해트트릭, 클럽 역대 최다 득점까지 숱한 기록을 써내려간 펠레.

유럽 명문팀의 러브콜이 쏟아지자 브라질 정부는 국외로 나가는 걸 막기 위해 '국보'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현란한 몸놀림에 상대는 거친 파울이 아니면 막을 수 없었고 펠레를 향한 이런 반칙들은 '교체카드'와 '레드카드' 같은 규칙이 만들어지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은퇴 이후에도 해설가로, 체육부 장관으로, 또 유네스코 친선대사로 그라운드를 맴돌았고, 카타르 월드컵을 기간에는 대장암으로 투병하는 와중에도 병상에서 대표팀을 응원하며 선수들과 함께했습니다.

축구 영웅, 그 이상이었던 펠레의 별세 소식에 브라질은 사흘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고, 추모는 국경을 넘어 전 세계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1977년 선수 유니폼을 벗으며 외쳤던 '사랑하라'는 말, 그는 같은 말을 인류에 남기며 여든둘의 나이로 퇴장했습니다.

[펠레/전 축구선수 : 저와 함께 세 번 외칩시다.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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