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X 첫 구상' 경기도 8년 이끈 김문수…윤 정부서 '발탁'[앵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역시 비주류로 통했습니다.
한때 당 밖에서 전광훈 씨와 손잡으며 강성 우파의 모습을 보였던 김 후보가 어떻게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떠올랐는지, 최연수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김문수 후보는 1994년 3월, 민주자유당에 입당합니다.
현재 국민의힘의 뿌리가 된 정당입니다.
[신계륜/전 국회의원 : (민자당) 중심에 노태우가 있단 말이에요. 내란의 주범이 있는 정당에 김문수가 들어간다? 이게 말이 되는가. 일종의 배신행위였고…]
비난이 쏟아졌지만,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인명진/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 긴 역사적인 안목으로 보면 그걸 변절자라고 평가하는 건 너무 단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들어왔기 때문에 보수 정당이 새로워졌어요.]
이후 김 후보는 15, 16, 17대를 연달아 경기 부천 소사 국회의원이 됩니다.
[설난영/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배우자 (유튜브 '매일신문') : (첫 국회의원 선거 때) 본인만이 오로지 당선된다고 일관되게 생각했기 때문에 결국 저희가 이겼는데요.]
2006년 처음으로 경기도지사에 당선됐고, 재선에 성공하며 내리 8년 경기도정을 이끌었습니다.
GTX를 처음으로 구상하고 삼성전자 평택 유치, 광교신도시 개발 등 적극적 경제 정책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박상길/경기지사 시절 비서실장 : 참모들도 농담으로 후보님은 뇌가 발에 달렸다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발이 가게 되면 모든 게 해결된다…현장형 리더인 거죠.]
당시 직접 택시를 몰며 민심을 살폈던 일화는 유명합니다.
하지만 경기도지사 퇴임 후 잇따라 선거에 패배했고, 10여 년 야인 생활 동안 강성 우파 면모는 짙어졌습니다.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씨와 자유통일당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다시 제도권에 들어온 건 윤석열 정부에서입니다.
노동운동에 정치, 행정까지 경험한 이력을 인정받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 이어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됐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비상계엄 직후, 김 후보는 야당 의원의 사과 요구를 국무위원 중 혼자 거부하며 단숨에 보수 진영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올랐습니다.
국민의힘 경선을 다 치르고도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압박을 받았지만 김 후보는 버텨냈습니다.
[김문수/국민의힘 대선 후보 (지난 8일) : 저는 감옥에 가더라도 어떤 고문을 당하더라도 옳지 않은 것하고는 타협해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국민의힘 후보로 대선에 나선 김 후보, '정직하고 청렴하다'는 평가와 '오른쪽으로 치우쳤다'는 우려를 동시에 받으며 이재명 후보를 추격하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이학진 / 영상편집 김동준 / 영상디자인 조성혜]
이재명, 성남시 빚 다 갚고 '사이다 행정'…위기마다 '극적 생환'[앵커]
대선 후보 연속 기획, 오늘은 주요 후보들의 정치 역정을 되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오랜 기간 비주류로 통했던 이재명 후보가 어떻게 정치적 위기를 넘어서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로 자리 잡게 됐는지, 김안수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이재명 후보는 2006년 지방선거와 2008년 총선에서 낙선했습니다.
이후엔 정동영 캠프에서 부대변인을 맡았습니다.
[정동영/더불어민주당 의원 : 자신의 능력과 의지로 극복한 개천에서 용 난 사람이다. 시민운동가였고, 변호사였는데 정치적 야망을 가진 인물로 봤죠.]
첫 승리는 2010년 지방선거였습니다.
당선 직후 채무 지급정지 선언,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성남시의 재정난을 일시정지시켰습니다.
이 후보는 성남시장을 연임하면서 6600억이 넘는 빚을 모두 갚았습니다.
그리고 무상 교복,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등 주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보편적 복지'를 시작했는데, 만 24세 청년들에게 100만원씩을 지급하는 청년배당 제도가 관심을 모았습니다.
[김경서/2017년 청년배당 수급자 : 취업 준비하는 데도 돈이 들잖아요. 대학생 신분으로 넉넉지 않으니까 안경점 가서 안경을 맞춘다든지. 그때가 딱 그런 것들이 필요했던 나이여서…]
2017년 대선 경선에선 3위에 그쳤지만,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친문' 전해철 전 의원을 꺾고 경기도지사가 됐습니다.
도지사 시절 별명은 '사이다'였습니다.
계곡에서 수십년간 자리 값을 받으면서 바가지 장사를 해온 상인들과 담판을 지은 건 지금도 이 후보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회자됩니다.
2022년 대선에선 역대 최소 격차인 0.73%p차로 패했습니다.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2022년 3월) : 모든 것은 다 저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패배도, 민주당의 패배도 아닙니다. 모든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습니다.]
1년 뒤 검찰은 성남FC 사건 등을 이유로 이 후보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한 차례 부결 끝에 체포동의안이 통과됐습니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해 위기를 넘겼지만, 이듬해엔 부산에서 피습을 당했습니다.
[강훈식/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총괄본부장 : 물리적 테러, 정치적 압박, 그리고 검찰을 통한 또 사법부까지 나서서 총체적으로 (이 후보를 압박)했고, 그 과정에서 계엄이라는…]
이 후보는 12·3 내란 사태 당시 라이브 방송을 켜고 국회로 와 비상계엄 해제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대선 국면, 이 후보는 단 한 번도 여론조사 1위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화면출처 유튜브 '이재명']
[영상취재 반일훈 이학진 / 영상편집 김동준 / 영상디자인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