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기후 1.5] VRE가 석탄 넘어선 미국, “재생이 주력” 선언한 일본'석탄 제국'으로 불리던 영국이 지난해 탈석탄을 마무리지으며 자국내 남아있던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를 멈춘 가운데, 세계 최대의 화석연료 생산국 중 하나인 미국에서도 최근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태양광과 풍력의 발전량이 오랜 기간 미국의 주력발전원이었던 석탄의 발전량을 넘어선 겁니다.
태양광과 풍력의 발전비중은 2010년 2.3%에서 2020년 11.6%로 처음 10%대를 넘어섰고, 2024년 17.2%를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수력까지 더하면 그 비중은 2010년 8.5%에서 2024년 22.6%로 더 커집니다. 이렇게 비연소 재생 3원은 이제 미국에서 제1 발전원인 천연가스 다음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반대로 2010년 무려 44.9%에 달했던 석탄의 발전비중은 최근 10년새 급격히 감소하면서 지난해 14.9%로 줄어들었습니다. 그 결과, 불과 15년 전만 해도 석탄-천연가스-원자력-수력-태양광 및 풍력 순서였던 발전원별 발전량 순위는 지난해 천연가스-원자력-태양광 및 풍력-석탄으로 뒤바뀌게 됐습니다.
최근 15년(2010~2024년)간 미국의 발전믹스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영국의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엠버가 집계한 통계를 살펴봤습니다. 당장 전체 발전량은 2010년 4,113.9TWh에서 2024년 4,387.3TWh로 6.6% 증가했습니다. 우리와 비교했을 때, 이는 전력수요의 증가를 상당히 잘 억제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선 연재에서 우리나라의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살펴봤던 것처럼, 한국의 전력 생산은 2010년 475,076GWh에서 2023년 604,577GWh로 27.3%나 늘었습니다.
2010년, 미국의 주요 발전원별 발전량은 석탄(약 1,847TWh)-천연가스(약 988TWh)-원자력(약 807TWh)-수력(약 255TWh)-태양광 및 풍력(약 96TWh) 순이었습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태양광과 풍력은 '기타'로 분류되던 소규모의 여러 발전원들의 발전량보다도 적었지만, 2011년엔 이 '기타' 발전량(약 117TWh)보다 많은 122TWh의 전력을 생산했죠.
파리협정 채택 이듬해인 2016년엔 석탄(약 1,239TWh)과 천연가스(약 1,378TWh)의 역전이 일어났습니다. 오랜 기간 지켜온 석탄의 '압도적 1위' 지위가 꺾인 겁니다. 그 해, 태양광 및 풍력 발전량(약 282TWh)은 수력 발전량(약 261TWh)을 넘어서는 유의미한 변화도 기록됐습니다. 그리고 2021년, 소위 '비연소 재생 3원'인 태양광과 풍력, 그리고 수력 발전량은 약 789TWh에 달하면서 원자력 발전량(약 780TWh)을 넘어서게 됐습니다. 이어 2023년, 석탄의 발전량(약 675TWh)은 원자력 발전량(약 775TWh)보다, 2024년엔 약 653TWh로 더욱 감소하며 태양광 및 풍력 발전량(약 757TWh)보다도 적어졌습니다. 이제 미국의 발전믹스는 천연가스(약 1,865TWh), 비연소 재생 3원(약 993TWh), 원자력(약 782TWh), 석탄(약 653TWh) 순서가 된 겁니다.
미국뿐 아니라, 최근 제7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한 일본 또한 유의미한 변화를 보였습니다. 일본 정부는 수립 과정에서 한국의 전력수급기본계획처럼 자국 안팎의 관련 상황들을 분석했습니다. 대내 환경 변화에 대해 일본 정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중동에서의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면서 자국내 경제 안전 확보에 대한 요구가 높아짐과 동시에, 정부가 추진중인 DX(디지털전환)와 GX(녹색전환)으로 전력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대외적으론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을 위해 다양한 현실적 방법들을 내놓고, 실제 이행에 나서는 한편,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과 탈탄소화라는 탄소중립 정책을 경제성장과 연결하기 위한 산업정책을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에 2040년까지① DX(Digital Transformation, 디지털전환), GX(Green Transformation, 녹색전환)로 늘어나는 전력수요 속에 탈탄소 전원을 경쟁력있는 가격으로 확보하는 것이 일본 산업 경쟁력에 직결되는 만큼, GX2040 비전에 발맞춘 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하고, ② 가용 자원의 부족과 섬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과 탈탄소 모두를 이루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주력 전원으로 최대한 도입함과 동시에 특정 연료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균형잡힌 전원을 구성하고, ③ 에너지 위기에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에너지 수급 구조로의 전환을 실현하기 위해 철저한 절약, 제조업의 연료 전환을 추진함과 동시에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등 에너지 안보를 높이고, ④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대책부터 우선 강구해야 하는 것이 불가결한 상황인 만큼, S+3E 원칙에 따라 탈탄소화에 따른 비용의 상승을 최대한 억제한다고 제7차 에너지기본계획의 정책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여기서 S+3E 원칙은 오랜기간 일본의 에너지 정책을 관통하고 있는 기본 원칙을 의미합니다. 당초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이었던 일본 에너지 정책의 기본 목표는 2000년대 초반 3E(Energy Security, Economic Efficiency, Environment)라는 방향성으로 한 차례 변화했습니다. 에너지의 안정적인 수급을 뜻하는 에너지 안보와 더불어 경제적 효율성과 환경의 3E 원칙은 이후 2011년 3월 후쿠시마 참사를 계기로 안전(Safety)이 추가된 S+3E로 변경됐습니다.
이러한 원칙에 의거해 일본 정부는 2023년 현재 기준 68.6%에 달하는 화석연료의 발전비중을 2040년 30~40%까지 낮추고, 현재 22.9%인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은 40~50%로 높이는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이렇게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과정에 가장 큰 몫을 하는 것은 태양광으로, 전체 발전량에서 23~29%를 태양광의 몫으로 정했습니다. 이어 수력(8~10%), 풍력(4~8%)과 더불어 바이오매스(5~6%), 지열(1~2%)이 그 뒤를 잇게 되고요.
재생에너지를 주력으로 하는 가운데, 후쿠시마 참사 이후 여전히 발전믹스 내에서 정상적인 역할을 하지 못 하고 있는 원전의 비중은 지금의 8.5%에서 20%까지 높임으로써 필요한 규모는 지속적으로 활용할 방침이고요. 이 과정에서 SMR 등 차세대 혁신형 원자로의 연구개발 및 설치도 꾸준히 진행되나, 그러한 신형 원자로의 설치는 “지역의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경우에 한해 폐로를 결정한 원전부지 내에서의 재건축을 대상으로 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신규 부지를 찾아 원전의 물리적 확산을 도모하기보다는 기존 원전 부지에서 효율성을 높이는 식으로 원전의 세대 교체를 추진하는 겁니다.
일본은 이를 통해 전력의 탈탄소화는 물론, 에너지 자급률 개선을 꾀하는 만큼,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습니다. 현재 2013년 대비 약 23%의 감축을 달성한 가운데 2040년엔 73%를 감축하고, 현재 15.2%에 그치는 일차에너지 자급률을 2040년엔 30~4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발전믹스는 어떻게 달라지고, 이렇게 달라질 발전믹스가 불러올 효과는 무엇일까요. 지난 연재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나라는 2023년 현재 기준, 60.9%에 달하는 화석연료의 발전비중을 2038년 29.3%로 낮추고, 8.4%에 그치는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같은 기간 29.2%까지 높인다는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일본의 40~50%라는 2040년 목표보다 미국과 일본의 현재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에 더 가까운 수준입니다. 우리의 과거에 비해 재생에너지의 발전량도, 그 발전비중도 높아지는 것은 맞지만 '충분한 수준'인지에 대해선 아쉬운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는 이유입니다.
아쉬움의 목소리는 환경단체뿐 아니라 청정전력의 '대량 소비자'인 기업들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전 세계 수백여 거대 글로벌 기업을 회원사로 두게 된 글로벌 이니셔티브 RE100의 지적이 대표적입니다. RE100 이니셔티브를 이끄는 클라이밋 그룹(Climate Group)은 한국의 전기본에 대해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목표는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며, 전기본엔 석탄가스화복합발전(IGCC)와 같은 비재생에너지원이 '신에너지'로 포함되어 있다”며 “이러한 낮은 목표는 신속한 탄소배출 감축은 물론, 기업 투자 촉진 및 글로벌 시장의 요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한국 내에서 36개 한국 기업이 RE100에 참여중이고, 한국서 활동중인 해외 RE100 가입 기업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160곳이 넘는다”며 “한국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 없이는 이들의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RE100 이니셔티브 대표인 올리 윌슨은 “재생에너지를 향한 글로벌 여정은 분명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며 “한국은 재생에너지 목표를 높여 이러한 흐름을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윌슨 총괄은 이어 “기업들은 한국의 재생에너지 잠재력에 투자할 준비가 되어있기에 한국 정부가 기회를 적극 활용해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보내기를 촉구한다”며 “정책 입안자들이 기업의 재생에너지 목표에 부응하고, 민간 부문이 한국의 에너지전환에 투자할 수 있도록 정책적 장벽을 제거해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속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전환부문의 온실가스 감축경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숫자를 담았습니다. 2024년 2억 1,840만톤의 전환부문 배출량을 2030년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에 맞춰 2030년 1억 4,590만톤으로 줄이고, 11차 전기본의 마지막 목표연도인 2038년엔 8,310만톤으로 줄여낸다는 목표입니다. 이는 조만간 국제사회에 새로 제출해야 할 2035년 NDC에서 검토중인 두가지 안(1안: 9,580만톤, 2안: 8,310만톤) 가운데 더 강력한 감축안을 반영한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입니다.
지금보다 더 청정한 전력을 만들겠다는 목표임은 분명하지만, 여기서도 아쉬움은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본 상의 배출량과 발전량 통계에 기반해 국제사회의 단위 전력당 배출량과 비교를 해보면, 그 아쉬움은 구체적인 숫자로 확인됩니다.
11차 전기본 상의 2024년 발전량과 배출량을 통해 추산된 우리나라의 2024년 단위 전력당 탄소 배출량은 395.44g/kWh입니다. 전체 아태국가 평균(572.8g/kWh)이나 세계 평균(445.45g/kWh)보다는 준수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유럽(193.55g/kWh)이나 미주(274.69g/kWh)에 비해선 높습니다. 같은 전력을 소비하더라도, 유럽이나 미주에서는 온실가스 배출을 훨씬 더 적게 할 수 있는 셈이죠.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 국제에너지기구)는 최근 〈Electricity 2025〉 보고서를 통해 각국의 에너지 정책에 기반한 2027년까지의 단기 전망을 내놨는데, 그에 따르면, 2027년 유럽의 단위 전력당 배출량은 146.78g/kWh로, 미주의 배출량은 239.83g/kWh로 줄어들 걸로 추정됐습니다. 한국과 주요 선진국 그룹과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못하는 거죠. 이는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여기서 다시금, 일본이 자국 에너지기본계획의 정책 방향에서 첫 번째로 강조한 부분이 떠오릅니다.
“디지털전환, 녹색전환의 진전에 의한 전력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가운데, 그에 맞는 탈탄소 전원을 국제적으로 손색 없는 가격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가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력에 직결되는 상황이다.”
“그에 맞는 탈탄소 전원이 확보되지 않아서 국내 산업으로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일본 경제가 성장의 기회를 잃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내세운 발전믹스 목표는 반도체, 모바일, 이차전지, 전기차 등 에너지전환을 선도하는 품목에서 수출 강국을 꾀하고, 글로벌 선도주자를 표방하는 모습과도 괴리가 큽니다. 이들 산업의 핵심이 결국 청정 전력에 있는데 말입니다. 마치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정작 자국 내에선 '소가 끄는 수레'가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인 것과 같은 상황인 겁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과연 누가 그 나라의 비전에 공감하고 투자할까요. 그 나라의 기술이 실제 목표대로 발전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렇다고 한국의 에너지전환 의지가 “이전과는 다르다”는 시그널을 시민사회뿐 아니라 산업계와 국제사회 및 국제시장에 분명히 낼 수 있는 방법이 더 이상 없는 것은 아닙니다. 번번이 목표와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인 풍력발전에서 실제 정부 목표가 현실로 이행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한국은 다시금 시장과 국제사회의 신뢰와 기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태양광 발전을 향한 온갖 부정적 이슈가 쏟아졌던 것에 비해, 우리의 현실에서 태양광 발전설비는 항상 정부 목표를 초과 달성해왔습니다. 빛 공해를 만든다, 중금속 오염을 일으킨다, 산사태의 주범이다… 온갖 비과학적인, 검증 안 된 주장을 넘어 시장의 활성화를 저해하는 정부기관의 각종 활동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하지만 정당을 가리지 않고 “활성화하겠다”고 했던 풍력발전은 정작 제자리걸음을 걸어왔고, 그럼에도 2년에 한 번씩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나올 때마다 해상풍력 목표는 도전적으로 제시됐습니다. 이젠 '도전적인 목표'를 넘어 실제 성과를 보여줘야 할 때가 아닐까요. 해외 기업이나 투자자가, 그리고 국내 산업계가 한국을 외면하고 떠나기 전에, “양치기 소년이 아니었다”고, “도약을 위해 준비중이었을 뿐이었다”고 말이죠.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