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딸 결혼식장인 어느 숲 속도…평생 자라온 집, 키워온 나무들은 지금[앵커]
경북 지역을 덮친 역대 최악의 산불,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현장에선 잿더미가 된 집을 이제야 철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30일) 밀착카메라는, 여전히 고통을 겪는 이재민들 상황을 취재했습니다.
이상엽 기자입니다.
[기자]
푸른 나무를 배경으로 신랑 신부가 입장합니다.
결혼식장은 어느 숲 속.
바로 신부 아버지 노목현 씨가 30년 동안 가꿔온 나무 농장입니다.
느티나무, 매화나무 그리고 소나무.
이 조경수 덕분에 자식들 키우며 삶을 일궜습니다.
[노목현/경북 의성군 : {한 그루 한 그루 심을 때는 어떤 마음이셨어요?} 자식과 같이 이 나무가 10년, 20년 됐을 때의 모양을 상상하면서 그렇게 심었죠.]
하지만 지난 3월 산불이 딸아이가 결혼했던 그 숲을, 자식처럼 가꿔왔던 나무들을, 그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조경수는 보험 적용이 안 되는 탓에, 받을 수 있는 보상이라고는 땅 1㎡당 단돈 8천원.
새 나무를 심기 위해선 숯으로 변한 나무를 다 베야 합니다.
[노목현/경북 의성군 : 자식 같은 심정으로 키운 나무인데 이걸 내 손으로 벤다는 것은… {나무껍질을 보면서도 아버지의 세월을 보실 것 같으세요.} 이제 긴 세월을 같이 하다 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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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성 씨는 오늘도 대피소에서 밭으로 출근합니다.
한창 꽃이 필 무렵, 하지만 눈 앞엔 꽃도 열매도 없습니다.
[송원성/경북 안동시 : 벌이 여기 와서 수정해서 지금쯤 같으면 수박이 이 정도로 굵을 거예요.]
다 타버린 집 대신 받을 수 있는 값은 200만원에서 300만원.
[송원성/경북 안동시 : 작년에 내가 칠순이라서 칠순 사진도 있었고… 다 타버렸네요.]
이제 남은 건 3월 달력과 가족사진 한 장 뿐.
새로 생긴 건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 화마입니다.
[송원성/경북 안동시 : 그날을 기억하기 싫어요. 그날만 기억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같은 시각, 새 잎이 자란 나무 뒤로 굴착기가 집 잔해를 옮기고 담을 부숩니다.
7살 결이, 6살 솔이 형제가 살던 집, 이제 철거하는 겁니다.
결이가 아끼던 '꼬꼬닭'은,
[결이/7살 (지난 2일 / JTBC 뉴스룸 '밀착카메라') : 그런데 불에 타서 네 마리는 죽었고, 두 마리는 살아있어요. 꼬꼬닭은 죽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렇게 알을 낳았습니다.
[손인숙/경북 안동시 : 알 낳았어요. 알 낳아서 계란 많이 갖다 먹었어요.]
결이 형제는 집이 내려앉는 장면을 다 봤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꼬꼬닭' 덕분에 씩씩합니다.
[결이/7살 : 2025년 3월 기억나요. 그때 산불이 났잖아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잘 지내고 있어요. {꼬꼬닭이 알을 낳았다며?} 네. {달걀 프라이도 해 먹었다고…} 네? 그건 못 들었어요.]
많은 이들의 관심으로 할머니도 버티고 있습니다.
[손인숙/경북 안동시 : 천사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우리 아이들도 선생님 잘 만났다 했잖아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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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로 집을 잃은 또 다른 아이들.
검게 그을린 학교 텃밭에 감자와 고구마를 심습니다.
흙에 생명을 심는다는 건 회복하자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한 달 만에 대구에서 또 산불이 났다는 소식, 아이는 이렇게 위로의 말을 전했습니다.
[남세롬/11살 : 저희 집이 산 밑에 있다 보니까 그래서 다 타버려서…너무 슬퍼하지 말고 다시 잘 생활할 수 있으니까 더 힘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곳 사람들은 마을이 텅 빌까 봐 그리고 잊힐까 봐 두렵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버틸 수 있는 건 슬픔을 나누려는 많은 이들의 노력 덕분입니다.
산불 한 달. 여전히 우리가 들여다봐야 하는 현장입니다.
[작가 강은혜 / VJ 김진형 / 영상편집 홍여울 / 취재지원 권현서]
[박상욱의 기후 1.5] '예상 밖' 산불의 위험과 영향…수도권도 위협?1990년대 112일이던 산불일수는 2000년대 136일, 2010년대엔 143일로 늘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대 초반, 이는 204일을 기록 중이고요. 산불의 일상화와 더불어 대형산불의 발생 지역 또한 넓어지고 있습니다. 더는 동해안 산간 지방의 전유물이 아닌 겁니다. 이러한 산불을 자연재해로 인식하고, 위험의 증가 또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의 변화 때문으로 인식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불을 내는 것도 인간, 그 불이 더 커지게 만드는 것 또한 우리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연재에서 산불 확산의 3요소, 연료와 지형, 그리고 기상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얼핏 인간과 관련 없는 '외부 요인'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화재 자체는 탈 것이 있어야 하는 만큼, 연료의 측면부터 살펴보면, 국내 산림을 구성하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침엽수입니다. 침엽수는 활엽수와 달리 사시사철 가지 끝에 잎을 달고 있습니다. 산불의 관점에선 연료가 풍부한 것이죠. 또한, 침엽수는 테라핀이라고 하는 정유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열에너지가 활엽수의 1.4배에 달하고, 그로 인해 화재의 지속시간 또한 활엽수의 2.4배에 이릅니다. '한반도의 자연환경이 그런 것이지 인간과는 상관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이런 산림 구성을 갖게 된 데엔 우리 인간의 영향도 있습니다.
과거 한국의 산림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북한의 남침으로 인한 6.25 전쟁 등으로 심각하게 황폐해졌습니다. 전국이 민둥산이었고, 1960년대가 지나고서야 이를 본격적으로 복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1차 치산녹화10개년계획의 계획기간이 1973~1982년일 정도이니, 우리의 산림이 푸르게 변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닌 것이죠. 이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생존력과 생장의 속도였습니다. 활엽수 대비 열악한 토양을 딛고 더 잘, 더 빠르게 자라나는 침엽수를 중심으로 녹화사업이 추진된 이유입니다.
산불 확산의 3요소 가운데 그나마 인간의 영향이 적은 것은 지형입니다. 고도나 경사, 경사의 방향, 지세 등에 따라 산불의 확산 속도가 달라지는데, 이는 인간의 인위적 개입이 어려운 부분인 것이죠. 하지만, 기상의 경우는 다릅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실효습도가 40% 이하로 떨어질 때 낙엽의 수분 함유량은 10%에 불과해집니다. 낙엽의 수분 함유량이 15% 이하만 되더라도, 35%의 낙엽보다 발화율이 25배 높아질 정도이니 '수분 함유량 10%' 낙엽은 말 그대로 '불쏘시개'인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껏 뿜어댄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로 한반도의 겨울과 봄은 점차 건조해지고 있습니다. 지난주 연재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실효습도 35% 이하의 매우 건조한 날의 일수는 1980년대 연간 4.8일에서 2010년대 연간 15.7일로 크게 늘었을 정도입니다. '건조해진 날씨'는 '하늘 탓'이 아닌 '내 탓'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수의 전문가가 '한국은 그래도 해외와 달리 자연발화로 인한 산불 발생의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분석한다는 점입니다. 소위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나무에 불을 붙이고, 그 불이 퍼지게 될 일이 한국에선 발생하기 어려운 덕분입니다. 동아시아 몬순 지역의 특성상, 번개는 주로 비구름과 함께 찾아오니까요.
그렇다고 '호주나 미국 캘리포니아처럼 자연발화 가능성은 작아서 다행이구나' 위안을 삼기도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불을 내기 때문입니다. 최근 10년간 발생한 산불 5,668건 가운데 '실수로 인한 불'은 총 2,376건(입산자 실화 1,862건, 담뱃불 실화 338건, 성묘객 실화 176건)으로, 전체의 42%에 달합니다. 여기에 어린이 불장난에서 비롯된 18건과 논 또는 밭두렁 소각으로 인한 산불 677건, 쓰레기 소각에 따른 산불 338건까지 더하면 그 비율은 66.8%로 높아지고, 산림 인근 건축물에서의 화재가 산불로 번진 336건까지 포함하면 결국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72.7%의 산불이 인간에 의해 비롯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산림 탓, 기후 탓을 할 수 없는, 결국 인간 탓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런 가운데, 산불 가해자의 검거율은 50%를 밑돌기 일쑤입니다. 같은 기간, 검거율은 2016년(52.2%)을 제외하고는 모두 절반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실수일 뿐인데'라며 산불 '가해자'라는 표현에 일부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실수로 인한 산불도 처벌 대상입니다. 산림보호법은 산림보호구역이나 보호수에 불을 지른 경우 7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타인 소유의 산림에 불을 지른 경우 5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자기 소유의 산림에 불을 지른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과실로 산림을 불에 태워 공공을 위험에 빠뜨린 경우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실제로 2016년, 쓰레기를 태우다 산불로 번져 53.8ha의 산림을 태웠던 충주시 사례에서 산불 가해자는 징역 10개월의 처벌과 더불어 8,000만원의 민사 배상금을 내야만 했습니다. 2022년, 강릉 산불의 가해자의 경우엔 대법원 판결까지 이어진 재판 끝에 징역 12년이 확정됐습니다.
산불을 낸 것도 인간이지만, 이를 꺼야 하는 것 또한 인간입니다. 2주 전 〈[박상욱의 기후 1.5] 예견됐던 대형산불, 원인은 이번에도 '인간'〉에서 전해드렸던 것처럼, 대형산불의 위험이 커지는 와중에 2025년 산림청의 산불 관련 예산은 감소했습니다. 산불방지대책 관련 예산은 2024년 624억 3,400만원에서 2025년 578억 6,900만원으로, 산림헬기 도입 및 운영 관련 예산은 1,123억 4,400만원에서 938억 5,800만원으로 줄어든 것이죠. 이를 두고 예산을 깎은 국회를 탓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취재 결과, 현실은 달랐습니다. 산림청이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 자체부터 이들 항목의 예산은 줄어있었습니다. 상임위 예비심사뿐 아니라 예결위 및 본회의 의결 과정에서 산림청의 모든 예산안 가운데 감액된 것은 '정원조성관리(76억 8,800만원 감액)' 사업뿐이었습니다.
또, 2주 전 연재에서 이번 산불의 발화지인 경남 산청군과 경북 의성군의 인구 변화를 살펴보며 산불 예방 및 초동 대응의 어려움을 설명해 드린 바 있습니다. 더불어 한반도 전반에 걸친 산림 노령화의 문제에 대해서도 전해드렸죠. 그런데, 문제는 군민의 노령화, 산림의 노령화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송옥주 의원실이 산림청에 요청해 제출받은 산불 진화 인력 현황에 따르면, 산불 진화 인력 전반의 고령화 또한 심각한 문제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공중진화대, 산불전문예방진화대, 산불재난특수진화대 등 모든 진화 인력의 수는 산불의 빈번화, 대형화가 무색하게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2016년 전체 1만 104명이었던 진화 인력의 수는 2025년 고작 1만 143명으로 39명 늘었을 뿐입니다.
구성에 있어서도 심각한 문제를 보입니다. 60세 이상의 비율은 2016년 27.2%에서 2025년 69.9%로 급증했습니다. 10년의 세월, 40세 미만의 인원은 절대적인 수도 감소했고, 그 비율 또한 2016년 7.5%에서 2025년 4.7%로 줄어들었습니다.
60세 이상 인원은 '산불전문예방진화대'로서 열악하고, 험준한 산불 현장에 투입됩니다. 의원실에 따르면, 6~7개월 단기계약직인 예방진화대는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습니다. 산불이 나면, 20리터짜리 등짐펌프를 지고 산속으로 들어가게 되고요. 이번 영남 지역 산불 당시, 산청군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3명 또한 예방진화대였습니다.
이러한 인명피해와 관련해 거론될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임도(林道)입니다. 임도는 말 그대로 산림의 관리를 위해 난 도로를 의미합니다. 산림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임도 밀도는 ha당 4.1m로 일본(24.1m/ha)과 독일(54m/ha) 등에 비해 낮습니다. 낮은 밀도로 인해 숲에서 임도에 다다르기까지 우리나라는 1km 이상을 가야 하는 반면, 독일은 100m 정도만 이동하면 임도에 닿을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불씨가 수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만큼, 임도는 산불 저지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실제 임도 자체는 산불 저지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닌, 인력과 장비의 산림 진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산불 진화 인력이 없는 상황에선 임도가 바람길의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진화 인력이 투입됐을 때, 혈혈단신 등짐펌프에만 의지해 불길 속 수백m를 뚫고 들어가야 하는 일은 막을 수 있습니다. 우주의 위성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의 대규모 화재와 연기에 맞서는 데에 있어 그저 '나무가 빽빽한 것이 낫다'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60세 이상이 대부분인 비정규직 산불 진화 인력에 '부족한 임도를 감안하여 20리터 물통을 이고 수백m~수 킬로미터 능선을 올라야만 한다'고 강요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숲은 수백 년간 지속될 수 있는 소중한 생태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숲을 '백년대계'로 접근해 조성한 것이 아니라, 그저 '민둥산에서 안 죽고 빨리, 빼곡해질 수 있는 방법'에만 집중해 인위적으로 녹화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속도의 측면에선 해외에서도 깜짝 놀라 배우려 하는 '성공적인 정책'이 됐지만, 관리의 측면에선 후손이 손 쓰기 어려운 산림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렇다고 선배 세대의 탓만 할 수는 없습니다. 수탈과 전쟁으로 황폐해진 산림이지만, 이후에도 땔감을 확보하기 위한 무분별한 벌목으로도 산림을 황폐하게 만든 우리였고, 그런 산림의 황폐화를 막기 위한 당시의 대책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된 녹화 사업과 연탄 및 석탄의 보급이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전국 곳곳에서 푸른 산을 볼 수 있는 것은 어려웠을 테고요. 오늘날, 그 결과는 관리할 수 없는 산림, 신속한 탈석탄을 주저하게 만들 만큼 커져 버린 석탄화력발전의 발전비중으로 나타났고, 이젠 후배 세대인 우리가 그에 맞는 해답을 찾아야 할 때일 뿐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업보로 인하여 대표적인 '산불 취약지'인 강원 영동의 겨울 강수량과 봄 강수량은 모두 큰 폭으로 줄어들었습니다. 1974년 이래, 50년 동안 이 지역의 겨울철 및 봄철 평균 강수량 통계를 살펴보면, 그 감소 속도는 전국 평균을 상회합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상황을 상정한 SSP5-5.8 시나리오에 따른 강릉과 삼척, 울진의 최대 무강수 지속기간 전망을 살펴봤습니다. 이들 지역에 1mm의 강수량조차 기록되지 않는 날의 일수는 금세기 후반, 최대 8일 안팎 늘어날 거로 예측됐습니다. 결국,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대한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온실가스 흡수량을 최대한 늘릴 수 있을까', 이 두 가지뿐입니다.
당장 산불 발생을 줄이는 것 자체가 그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이번 3월 산불로 피해를 입은 면적은 총 4만 8,239ha로, 서울 면적의 80%에 달합니다. 그로 인해 배출된 온실가스만도 365만 9,283톤으로, 대구광역시에서 한 해 동안 뿜어져 나오는 양에 맞먹습니다. 늘어난 온실가스 배출로 산불 확산의 위험이 커졌는데, 그렇게 발생한 산불이 또다시 온실가스 증가로 이어지는 '양의 되먹임'이라는 악순환이 더욱 심각해지는 것이죠.
앞으로 더욱 열악해지는 환경 속, 앞으로의 산불 위험은 얼마나 더 커지게 될까. 국립산림과학원은 기후변화로 인한 미래를 가정한 RCP(Representative Concentration Pathways, 대표농도경로) 시나리오와 SSP(Shared Socioeconomic Pathways, 공통사회경제경로) 시나리오를 활용해 이를 전망했습니다. 이젠 '구버전' 시나리오가 된 RCP 시나리오 가운데 우리가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에 해당하는 RCP8.5 시나리오를 반영한 결과, 20년 후 한반도의 산불 위험도는 과거 30년(1971~2000년) 평균 대비 57.3%, 50년 후엔 98.7% 증가할 거로 예측됐습니다.
SSP 시나리오를 반영한 결과, 그 위험은 20년 후 최대 108.5% 증가해 그 위험은 배가 넘고, 약 50년 후엔 최대 158.1% 증가해 거의 2.6배에 달할 거로 예상됐습니다. 우리가 지금껏 뿜어온 온실가스 가운데 이산화탄소만 하더라도, 대기 중에 200년가량 머무는 만큼, 당장 최선의 감축 노력을 기울인다 한들(SSP1-2.6 시나리오), 산불 위험은 2040~2070년 31% 증가하고, 2071~2100년 47.1% 높아질 거로 예상됐고요.
그저 '수도권은 괜찮잖아'라며 애써 이 위험을 외면하려는 이도, 그래서 '다른 동네 일'처럼 여기는 이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런 생각과 다릅니다. 대규모 산불이 발생한 지역은 공교롭게 우리나라의 에너지 대동맥과 겹쳐있습니다. 동해안을 따라 즐비한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는 물론, 서해안의 석탄화력발전소 등 전통의 대규모 발전소들과 그 사이 곳곳에 위치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그리고 이들을 엮어 서울 등 대도시로 전력을 보내는 고압 송전망까지. 어느 것 하나 산불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없습니다. 영남 산불은 이를 '먼 동네 일'로 여기던 서울시민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셈이죠.
이러한 위험은 앞으로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거로 예상됩니다. 당장 송전선로의 길이는 2031년 지금보다 1만km 더 길어지고, 2036년엔 약 1.8만km 길어질 전망입니다. 늘어나는 전력수요에 맞춰 늘어나는 발전설비를 연계해야 하는 만큼, 2050년엔 지금보다 배 수준의 송전선로가 설치돼야 하고요.
현재 예정된 주요 송전선로 계획을 보면, 소위 '레거시 발전원'이라 할 수 있는 대규모 발전설비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 퍼져나갈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또한 이러한 송전설비 증가의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레거시 발전원이든, 신생 발전원이든, 공히 전력의 주요 수요지와 동떨어진 곳에 설치되기에 기존 송전망의 보강을 넘어 신규 송전선로의 설치 없이는 대응할 수가 없을 지경인 겁니다.
결국 늘어나는 산불 위험은 국가 전력 시스템의 취약성 심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취약성 평가의 대략적인 방법을 통해 살펴본 우리의 현실은 어떤지 살펴봤습니다. 취약성은 영향에 비례하고, 적응 능력에 반비례합니다. 영향 자체는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빠르게 줄이거나 늘리는 등 조절이 어렵고, 적응 능력의 경우엔 그나마 인위적인 조절이 가능한 편이죠. 영향은 노출과 민감도로 결정되는데, 산불의 빈도 증가와 산불 규모의 확대는 이러한 '노출'을 높이는 주요한 요인입니다. 같은 문제에 노출됐을 때, 얼마나 더 민감해지느냐를 뜻하는 민감도의 경우, 발전설비나 송변전 설비 등이 늘어나는 것은 곧 '민감도'의 증가를 의미합니다. 설비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피해 또한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전력 인프라의 대형 산불 피해라는 '영향'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이러한 영향에 대규모 발전설비 부지 내 온갖 소방력을 집결시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재 '적응 능력'이라고 볼 수 있고요. 그 결과, 발전소는 멀쩡하더라도 주요 송전망이 산불로 소실되게 되면 전국 규모의 블랙아웃이라는 '취약성'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구밀도가 적은 어느 산골의 화재가 수도권 전체의 교통과 금융, 행정, 의로 등 온갖 사회 시스템을 일순간에 마비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겁니다.
취약성을 줄이는 데에 있어 왕도는 없습니다. 영향을 줄이고, 적응 능력을 키우는 정공법만 있을 뿐입니다. 다만 성과가 눈에 띄기 시작하는 시점에 있어선 차이가 있기에, 단기적으로 적응 능력을 키우고, 노출과 민감도를 낮추는 일은 중장기적 대책이 될 것입니다.
노출을 줄이기 위해선 궁극적으론 범국가적인 온실가스 감축이 우선되어야겠지만, 당장 산불 확산에 따른 전력 시스템의 취약성 측면에 있어선 바이오매스 제거 등 정기적인 숲가꾸기 등 산림 전반에 대한 체계적이고도 지속가능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인위적인 이는 개입으로 압축 성장시킨 산림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이런 노력은 당장의 대형산불 위험을 줄일 뿐 아니라 장기적으론 산림의 탄소흡수 역량을 강화시키는 결과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민감도를 낮추기 위해선 최대한 전력 인프라의 증가 압력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발전설비를 확충할 때엔 수요지 인근을 우선적으로 확충함으로써 불필요한 송배전망의 증가를 억제하고, 지금처럼 특정 지역에 발전설비가 집중되는 현상을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죠.
더불어 우리의 적응 능력 또한 개선이 필요합니다. 사전 예찰 활동의 효율성을 높여 산불의 예방 또는 초기 대응 역량을 키우고, GIS나 기상 관측 및 예보 데이터, 토지 피복 데이터 등을 융합한 산불 예보 및 예측 시스템의 고도화도 필수입니다. 또, 대형산불의 동시다발 발생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인력과 장비를 확보함과 동시에 소방 및 군 자원의 효율적인 개입과 운영을 도모할 수 있는 워크플로우를 재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화재 발생 이후, 발전설비 자체에 소방력을 집중시키는 방식에서 발전소 반경의 10~20km 단위 방화선을 구축해 주요 송전망까지 함께 지킬 수 있도록 화재 대응 매뉴얼의 개정도 뒤따라야 하고요.
3월 말, 온 국민이 뉴스를 통해 산불에 집중했던 짧은 시간이 지나고, 이젠 봄비와 초여름 급 포근한 날씨로 그 관심은 사그라들었습니다. 더욱이 대선 일정이 다가오면서 이 문제는 또다시 우리의 머릿속에 남아있을 자리를 잃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비가 내리고, 습도가 높아진 시기야말로 다음의 건조한 시기를 앞두고 준비에 몰두하기에 최적의 시기입니다. 줄어든 관심에 준비와 대응을 내일로, 다음 분기로 미룬다면, 우린 같은 실수를, 그리고 안타까운 인명피해를 또다시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