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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금감원 직원이라는데"…신원조회 요청 무시하고 피싱범 돌려보낸 경찰

입력 2022-08-16 13:50 수정 2022-08-16 14:03

파출소 앞에서 수천 만 원 건넨 택시 기사의 기막힌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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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출소 앞에서 수천 만 원 건넨 택시 기사의 기막힌 사연

뭉칫돈을 건넨 경남 산청군 시천파출소 앞 〈사진=배승주〉뭉칫돈을 건넨 경남 산청군 시천파출소 앞 〈사진=배승주〉
"보이스피싱인지 아닌지 반신반의했죠. 그래서 금감원 직원을 인근 파출소로 데려갔는데 막상 경찰이 아니라고 하니 돈을 건넸습니다."

택시기사 권 모씨(58)는 지난 5월 27일 한 남성을 경남 산청군 시천면사무소 앞에서 만났습니다.

자신을 금융감독원 직원이라고 소개한 남성입니다.

권 씨는 남성을 자신의 택시에 태웠습니다.

50m 앞에 시천파출소가 있으니 실제 금감원 직원이 맞는지 신분확인을 요구했습니다.

피싱범이면 중간에 도망치거나 경찰을 찾아가면 진위를 가려낼 수 있을 것이란 판단 때문입니다.

남성은 태연하게 파출소로 동행했습니다.

잠시 뒤 파출소에서 나온 권 씨는 뭉칫돈을 이 남성에게 건넸습니다.

현금 2천 5백만원입니다.

파출소 바로 앞입니다.

사흘 뒤 현금 천 5백만원을 추가로 건넸습니다.

지난번처럼 파출소로 데려가면 곤란하다는 말에 남성에게 사과까지 했습니다.

이번에는 파출소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만나 돈을 건넸습니다.

권 씨 계좌에 있던 4천만 원이 보이스피싱 조직에 모두 털린 순간입니다.

전형적인 보이스 피싱 수법인데 어떻게 당했을까?

사건은 지난 5월 27일 오전 9시쯤 02-1599-3333으로 걸려온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습니다.

카카오뱅크 상담원이라며 기존 현대캐피탈에서 빌린 2천 5백만원을 싼 이자로 바꿔주겠다는 내용입니다.

권 씨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캐피탈 측에서 이를 반대했습니다.

지난 5월 27일 권 씨 통화 목록에 남아 있는 현대캐피탈과 금감원콜센터 〈사진=배승주〉지난 5월 27일 권 씨 통화 목록에 남아 있는 현대캐피탈과 금감원콜센터 〈사진=배승주〉
이에 카카오뱅크 상담원이 금감원 콜센터 1332에 직접 민원을 넣으면 해결된다고 했습니다.

권 씨는 1332로 바로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금감원 직원이 전화를 받았고 현대캐피탈 대출금을 먼저 갚으면 가능하다 했습니다.

다른 직원을 보낼 테니 현금을 인출해 전달하라고 했습니다.

권 씨는 은행 2곳에서 현금 2천 5백만원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금감원 직원이라는 남성에게 돈을 건넨 겁니다.

금감원 콜센터 번호는 1332입니다.

02를 뺀 1599-3333은 카카오뱅크 고객센터 번호입니다.

휴대전화에 악성 앱을 심어 전화를 가로채는 수법에 당한 겁니다.

실제 권 씨가 통화했던 카카오뱅크와 현대캐피탈, 금감원 직원까지 모두 보이스피싱 조직원입니다.

권 씨가 금감원 직원 사칭 남성을 자신의 택시에 태운 경남 산청군 시천면사무소 앞 주차장 〈사진=배승주〉권 씨가 금감원 직원 사칭 남성을 자신의 택시에 태운 경남 산청군 시천면사무소 앞 주차장 〈사진=배승주〉
이들은 권 씨 대출금과 통장 잔액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해를 막고 범인도 검거할 수 있었습니다.

권 씨가 순순히 돈을 주지 않고 파출소까지 피싱범을 데려간 겁니다.

자기 발로 걸어 들어온 피싱범을 놓아 준 건 다름 아닌 경찰입니다.

경남 산청군 시천파출소를 바라보고 서 있는 권 씨〈사진=배승주〉경남 산청군 시천파출소를 바라보고 서 있는 권 씨〈사진=배승주〉
권 씨가 금감원 직원이 맞는지 신원 조회 요구를 파출소 직원들은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채권추심이라는 남성의 현란한 말솜씨에 속아 넘어간 겁니다.

채권추심을 잘 이해하지 못한 권 씨는 그 자리에서 반박을 못 했다고 했습니다.

권 씨는 경찰에게 남성 신분증이라도 확인해 달라 요청했습니다.

이에 경찰은 남성에게 신분증을 보여달라 했습니다.

남성이 신분증을 꺼냈고 그 순간 권 씨가 이를 촬영하려 하자 경찰이 저지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이라며 막았습니다.

그러면서 경찰은 자신들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며 두 사람을 파출소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권 씨는 보이스피싱이 아니라는 경찰의 판단을 믿고 파출소 앞에서 돈을 건넸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 시천파출소 직원들은 권 씨와 다른 말을 했습니다.

권 씨가 남성을 금감원 직원이라 말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채권추심 즉, 개인 간 돈거래로 받아들여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경남 산청군 시천파출소 〈사진=배승주〉경남 산청군 시천파출소 〈사진=배승주〉
하지만 파출소 직원들의 대응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권 씨 휴대전화에는 금감원 콜센터와 여러 차례 장시간 통화한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또 뭉칫돈을 파출소 앞에서 건네는 등 충분히 피싱 범죄를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들은 피싱범이 보여준 신분증을 눈으로만 보고 실제 맞는지 확인을 안 했습니다.

근무 일지에는 이런 사실을 기록조차 안 했습니다.

파출소 CCTV는 1개월이 지나 지워졌습니다.

피싱범 얼굴도 신원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권 씨는 피싱범을 잡아 파출소에 데려왔는데 무능한 경찰이 놓쳤고 자신은 전 재산을 날렸다며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산청경찰서에 신고한 지 2주가 지났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다며 경찰청에 진정서를 제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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