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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훈 "하얼빈 속 안중근, 거사보다 재판이 클라이맥스"

입력 2022-08-12 21:03 수정 2022-08-1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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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보도 시 프로그램명 'JTBC 뉴스룸'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JTBC에 있습니다.
■ 방송 : JTBC 뉴스룸 / 진행 : 오대영


[앵커]

역사를 소재로 소설을 여러 편 낸 작가입니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이 대표적이죠. 이번엔 안중근 의사를 다뤘습니다. 특히 '인간 안중근', 그중에서도 '청년 안중근'을 제대로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신작 소설 < 하얼빈 >으로 돌아온 김훈 작가가 스튜디오에 나와주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김훈/작가 : 네. 안녕하세요, 김훈입니다.]

[앵커]

네, 반갑습니다. 안중근의 청춘을 소설로 쓰는 게 청춘의 소망이었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점이 특히 김훈 작가의 가슴을 뛰게 했을까요?

[김훈/작가 : 제가 대학을 다닐 때, 안중근 신문 조서 기록을 읽었어요.]

[앵커]

신문 조서요?

[김훈/작가 : 신문 조서. 안중근 의사가 거사 후에 일본 관원에게 붙잡혀가지고 받은 취조의 내용이지요. 그가 그 신문을 받는 과정에서 그 언어의, 그분이 사용하는 언어의 정직성.]

[앵커]

네.

[김훈/작가 : 예를 들자면, "너는 어디를 겨누었는가." 이렇게 물어봐요. 검찰관이. "나는 가슴을 겨누었다." 이렇게 말을 하죠. "가슴을 겨누었다."]

[앵커]

가슴을 겨누었다?

[김훈/작가 : 가슴을 겨누었다. "너는 그 총을 쏜 후에 도주할 생각이 있었느냐." "나는 도주할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자살할 생각도 없었다. 나는 이토를 죽인 것으로 내 사명이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도주할 생각이 없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근데 참, 그게 놀라운 진술이지요. 자기한테 전혀 유리한 상황을 말하지 않고 그걸 그렇게 있는 그대로 사실을 내질러 대는 그 어법에 제가 참 놀랐습니다.]

[앵커]

네. 거의 50년이 그러면 걸린 셈인데, 물론 50년 동안 내내 준비하시지는 않으셨겠죠.

[김훈/작가 : 50년을 제가 그걸 쓰지를 못하고 그렇게 세월이 갔는데, 그걸 잊어버린 적은 없었어요. 이걸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고 엄두도 안 나고 이제 두려운 생각도 들고 미뤄놨던 것입니다. 근데 지난해 몸이 아팠다가 이제 회복이 되니까, 더 이상 미뤄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랴부랴 쓰기 시작했습니다.]

[앵커]

< 하얼빈 >을 쓰시면서, 가장 안타깝거나 슬펐던 대목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한 집의 가장으로서, 처자식을 둔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안중근의 그 고뇌를 담아내는 게 상당히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김훈/작가 : 그것은 참, 후인들이, 후인이 말하거나 입에다 올리기 어려운 부분인데,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쏘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덕순과 함께 기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가는 그 시간에, 안중근 부인 김아려 여사가 애기 둘을 데리고 남편을 만나러 기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기차가 동선이 맞아서 하얼빈에서 만나는 것이지요. 안중근 의사는 26일날 총을 쐈는데, 안중근 가족들은 27일날 하얼빈에 도착했어요. 하루가 차이가 났죠.]

[앵커]

거사 이후에 도착한 거죠?

[김훈/작가 : 하루 뒤에 도착한 거죠. 그런데 그 안중근 부인 김아려 여사는 하얼빈으로 오면서 기차 안에서 자기 남편이 무슨 구상을 하고 있는지를 몰랐던 것이지요. 그런 것을 생각해보면, 그때 젊은 안중근이 느꼈던 고뇌라는 것은 참 끔찍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것을 다 묘사는 못 했습니다.]

[앵커]

네. 제가 여타 작품들하고 조금 다르다고 느낀 또 하나의 부분은, 주로 거사의 그 과정과 그 순간을 많이 다뤘는데, 생각보다는 담담하게 혹은 짧게 지나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훈/작가 : 일반 국민들은 거기가 이 사태의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하는 것이 십상인데, 저는 그것보다도 그것은 우선 자기의 소망을 이루기 위한 물리적 행위였고, 이 사태의 클라이맥스는 재판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앵커] 

재판이요?

[김훈/작가 : 재판 과정에서 세계의 이목을 거기다 집중시켜놓고, 세계의, 전 세계의 기자들을 대련재판소에 모이게 해놓고 그 자리에서 재판과정에서 이토의 죄악을 성토하고 동양평화의 대의명분을 말하는 것이지요.] 

[앵커]

15가지 죄목을 발표를 했죠?

[김훈/작가 : 네. 그 총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말'이 오히려 이 사태의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앵커]

300쪽이 넘는 소설입니다. 그중에서 김훈 작가가 꼽기에 이 대목과 이 문장은 이 책의 핵심이다 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어디일까요?

[김훈/작가 : '안중근'이라는 분의 정신세계를 소설적으로, 소설가로서 한 마디로 표현하는 대사가 있다면 안중근이 이렇게 고민하는 대목이 있어요. '이토가 이렇게 덩치가 작구나.' 이토가 사실 키가 163인가? 153인가 6인가 그랬어요. 그것은 이토를 타겟으로 보는 거예요. 저 작은 표적이 그 키 큰 러시아인들 틈에 섞여 있으면은 저걸 맞추기가 굉장히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이것은 그 매우 방법적이고 기술적인 고민인 것 같지마는 이 한 마디가, 그 안에 그분의 정신이 응축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어쨌든 '총알이 7발인데, 이걸로 거사를 성공시켜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하니까, 이토의 몸의 덩치가 작다는 것을 고민하게 되는 것이죠. 나는 이러한 고민을 아주 순수한 고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앵커]

이 책이 반일민족주의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그 경계심을 강조하시기도 했는데, 어떤 이유일까요?

[김훈/작가 : 그것은 안중근의 시대와 지금 우리의 시대는 크게 다른 것이죠. 우리가 국권을 상실하고 나라가 이렇게 멸망 직전에 있을 때, 위기의 민족주의는 국민을 한데로 모으는데 큰 구심점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민족주의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참, 상당한 제약이 있는 것이죠. 지금 당장의 문제를. 근데 이 안중근의 평화구상에서도 안중근이 처형당하기 직전까지도 주장했던 것은 동양평화입니다. 한국, 중국, 일본 뿐 아니라 인도차이나반도 이런 나라까지 포함하는 동양 전체의 평화 안에서, 그 틀 안에서 조선독립과 중국의 독립, 일본공정 이런 것들을 구상했던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동북아의 현실의 문제를 생각하려면은, 민족주의보다도 더 높은 비전이 있어야 되고 더 넓은 구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뭐 엊그저께 대만 같은 데서 벌어지는 사태를 보니까, 지금 동양평화라는 것은 안중근 시대보다 더 절박한 위기에 처해있는 게 아닌가 싶은 두려움이 들더군요.]

[앵커]

네. 지금 이 시대에도 이 < 하얼빈 >이란 책과 또 안중근 의사의 업적이 우리에게 많은 의미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훈/작가 : 네. 고맙습니다.]

[앵커]

네, 건강하시고요. 지금까지 소설 < 하얼빈 >으로 돌아온 김훈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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