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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 한국대사관 앞에 등장한 번호판 '133-使'의 정체는

입력 2022-11-22 13:23 수정 2022-11-2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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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한국 대사관 근처에 와서 테니스를 치고 간다네요”

베이징 소식에 밝은 한 교민의 얘기였습니다. 일단은 흥미로웠습니다. 북한이 굳이 우리 대사관 앞의 체육 시설을 찾아와 운동하고 간다니 말이죠.

사실 베이징에서 한국 대사관과 북한 대사관은 약 6㎞,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습니다. 단순히 테니스 때문에 움직일 수 있는 거리로는 꽤 멉니다.

한편으론 운동이야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건데 문제가 되나 싶기도 했습니다. 판단은 젖혀두고 확인을 한 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 ICBM 발사 당일, 유유히 나타난 북한 대사관 차량

지난 18일 주중한국대사관 앞. 좁은 2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사관 직원들이 거주하는 외교 아파트 단지가 있습니다. 안에 들어서자 이들이 출몰한다는 흰색 돔 형태의 체육관이 나타났습니다.

이 정도면 우리 대사관 시설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까웠습니다. 여기엔 우리나라 외교관, 정부 부처 파견 주재원 등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기도 합니다.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주중한국대사관(위). 한국 대사관 바로 앞 흰색 돔 형태의 테니스장(아래)이 있다. 〈사진=JTBC 촬영 캡처〉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주중한국대사관(위). 한국 대사관 바로 앞 흰색 돔 형태의 테니스장(아래)이 있다. 〈사진=JTBC 촬영 캡처〉

가까운 거리에 놀라고 있을 때쯤 갑자기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는 소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오전 10시 30분(현지시각) 합참 발 속보였습니다.

'오늘 북한 ICBM 발사라니…. 비상 사태에 오늘은 아무도 안 나타나겠구나'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10시 52분, 갈색 승합차 한 대가 대사관 앞을 지나 아파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북한 국가 번호 '133'으로 시작되는 번호판을 단 북한 대사관 차량이었습니다.

차는 체육관 앞에 멈췄고 2명이 차에서 내린 뒤 운동 시설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편안한 복장에 운동화를 신었고 그 자체로 특이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5분가량 뒤 이번엔 북한 대사관 번호를 단 '아우디(AUDI) A6' 차량이 들어왔습니다. 적어도 북한 대사관에서도 간부급 이상 돼야 사용할 수 있는 차량입니다.

이들이 체육관 밖으로 나온 건 오후 1시 10분이 조금 넘어서였습니다. 두 차는 약 15분 간격으로 한 대씩 빠져나갔습니다.

프런트에 확인해 본 결과 사용자는 'Kim' 등 성만 기재돼 있었습니다. 테니스장 내부는 이용 시간 동안 외부인 출입이 금지돼 있습니다.

밖으로 좁은 창문 하나 정도가 나 있는데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일단 팩트만 다시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① 북한 대사관 간부 혹은 직원들이 매주 금요일 주중한국대사관 맞은편 테니스장에 나타나 운동을 하고 간다 ② 차는 모두 북한대사관 번호판을 단 것으로 아우디, 벤츠까지 포함돼 있다 ③ 북한 직원 숫자는 3~6명,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불확실하며 최근 몇 달간 고정적으로 보인다

 
북한대사관 차량에서 내리는 사람들. 예약자 이름에는 'kim'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사진=JTBC 촬영 캡처〉북한대사관 차량에서 내리는 사람들. 예약자 이름에는 'kim'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사진=JTBC 촬영 캡처〉

■ 비싸고 먼데 굳이 왜 한국 대사관까지?

의문스러운 건 일단 북한 대사관 반경 3km 내 테니스장만 10여 개 넘게 있다는 점입니다. 문제의 테니스장 이용료도 확인해 보니 1시간에 450위안(9만 원)으로 베이징에서도 꽤 비싼 편입니다.

멀고 비싼 데를 굳이 찾아오는 이유가 뭔지 모를 일입니다. 북한 대사관이 돈이 많아서 굳이 일과시간 중에 시설 좋은 데를 찾아가서 테니스를 치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두 번째 의문점은 이들이 북한 대사관 번호판을 단 차량을 버젓이 타고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일반인이라면 모르지만, 우리 대사관 앞인데 외교관, 주재원들이 북한 대사관 차를 알아보지 못할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보란 듯이 우리 대사관 앞을 오간다는 건 일부러 저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마침 김정은 위원장은 ICBM 발사 당시 자신의 딸과 함께 참관한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었죠.

이 괴이한 선전술이 묘하게도 북한 대사관원들의 테니스장 출몰과 비슷한 맥락에 있습니다. 마치 북한은 아무 문제도 없다고,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 시위라도 하는 듯 말이죠.

물론 북한 대사관이 확인해줄 때까지 그들이 그냥 운동하러 온 건지, 시위하러 온 건지, 아니면 다른 작전이라도 있는지 현재 확인할 도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 같은 엄격한 통제 집단이 이유 없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우리 정부에 시위든 정체 모를 작전이든 아니면 어떤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이도 저도 아니고 그냥 단순히 운동하러 온 것이라면 이건 북한의 기강 해이가 드러난 해프닝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대북제재로 북한 경제가 힘들고 코로나로 주중 북한 무역업체들의 사업도 잘 안 되는데 평일에 비싼 체육시설을 대사관 차량까지 가져와서 이용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중국은 20차 당 대회 이후 베트남, 캄보디아, 쿠바 등 공산권 국가들과의 직접적인 대면 접촉이 늘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시점에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에 나타날지도 모를 일입니다. 중국에서 북한의 사소한 움직임에 대해서라도 예의주시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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