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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배상 해법 임박한 가운데...강제동원재단의 수상한 이사장 뽑기

입력 2022-10-04 12:19 수정 2022-10-0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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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JTBC 보도 캡쳐〉 〈사진 = JTBC 보도 캡쳐〉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에 속도를 내겠다고 나서면서 '정부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외교부 주도로 네 차례 민관협의회가 열렸고, 최근 한일 양측 정상이 2년 9개월 만에 만난 자리에서도 강제동원 문제가 언급된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행정안전부 산하 기관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이 자주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민관협의회 4차 회의에서 “기존에 설립된 조직을 활용하는 편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고, 재단은 유력한 배상 주체로 부상하기 시작한 겁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도 지난달 6일 “한국 정부가 다음 달(10월) 쯤 해결책을 일본 측에 제시할 것”이라며 “기존의 재단 등이 주체가 될 것이며, 한일 양국이 각출한 자금을 재원으로 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기자의 의문은 단순한 수준이었습니다. 이제 어느정도 정부의 정돈된 입장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재단 측은 무엇을 얼마나 준비하고 있을지 알아보자는 게 취재의 시작이었습니다. 재단이 배상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 피해자들의 요구사항이 충실히 담길 수 있을지 파악해보자는 게 당초 취재 목표였던 겁니다.

그런데 취재를 하면 할 수록, 이런 얘기를 논할 단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재단은 내부 인사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지난 수 년 동안의 경영 실적도 엉망이었습니다. 정부가 실제로 재단을 '강제동원 배상 주체'라는 중대 역할을 맡을 기관으로 점찍었다면, 무엇보다 재단의 정상화가 시급해보였습니다. 이번 [취재썰]에서는 지난 두 차례 리포트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대목들을 적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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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는 왜?

지난 7~8월, 재단은 새로운 이사장 선출 절차에 돌입합니다. 당시 이사들로 꾸려진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는 행정안전부에 올릴 이사장 최종 후보 1명을 선정했습니다. 최종 임명은 행안부 장관이 하도록 돼 있습니다.

선정된 인물은 모 대학 국제학부 A교수로, 강제동원 관련 시민단체 대표와 과거 재단 이사 등을 거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정 과정에서 임추위 위원들 사이 갈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당초 십수명의 명의 대상자가 있었다. 서류심사와 면접 등을 거쳐 객관적으로 점수화한 결과 A교수가 남았지만 모 이사의 반대에 부딪혀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행안부 파견 공무원인 모 이사가 별다른 이유 없이 A교수가 후보로 오르는 것에 반대하면서 이사회에서 격한 발언까지 오고 갔다는 겁니다.

격론 끝에 A교수가 추천에 올랐지만 행안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난 9월 8일, 행안부는 재단에 공문을 보내 “이사장 후보자를 3배수 이상 추천하라”며 추가 선정을 요구합니다. 재단 측은 “추가 추천을 요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임추위 내부 규정에는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경우 3배수 미만으로 후보자를 정할 수 있게 돼 있다. 다수의 대상자를 평가한 결과 점수가 미달된 대상자를 거르고 나니 한 명만 남은 것일 뿐인데 뭐가 문제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라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적법한 기준에 의해 선정된 인물을 행안부 파견 공무원도 반대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행안부도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니 '뭔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행안부 관계자는 “3배수 미만이라 하더라도 단수 후보 추천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재단은 기타 공공기관에 속하기 때문에 임추위 추천에 구애받지 않고 장관이 임명하면 되는 것인데 오히려 재단에 권한을 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단수 추천을 한 재단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재단은 새로운 인물을 위한 공모를 시작했습니다. 그런 사이 기존 이사장을 제외한 이사진도 바뀌었습니다. 지난 정부에 꾸려진 이사 14명 중 행안부 출신인 사무처장과, 행안부 파견 공무원인 당연직 이사를 제외하면 모두 새로운 인물로 교체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이사직을 연임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번엔 한 명도 빠짐 없이 새로운 인물로 바뀌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새롭게 이름을 올린 이사 중엔 언론인 출신으로 강제동원 민관협의회 위원인 B씨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B씨는 과거 위안부 합의를 이끈 화해ㆍ치유재단 이사를 지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안팎에선 "내정자 있다"…자격·전문성 논란

재단은 새로 꾸려진 이사진을 중심으로 9월부터 새롭게 임추위를 꾸렸습니다. “3배수 이상으로 추천하라”는 행안부 요구에 따라, 또다시 이사장 추천 후보 선정에 돌입한 겁니다. 그 결과 재단은 지난달 28일 면접을 거쳐 두 명의 이사장 후보를 추가로 결정한 것으로 취재됐습니다.

 
재단 이사회 회의록 〈사진=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재단 이사회 회의록 〈사진=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최종 선발된 후보 중 한 명은 새로운 이사이기도 한 민관협 위원 B씨인 것으로 취재됐습니다. 여기서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습니다. '공기업ㆍ준정부기관의 경영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임원추천위원회 구성을 위한 이사회의 심의ㆍ의결에 참여한 공기업ㆍ준정부기관의 임원은 해당 시기 해당 기관 임원직위의 공개모집 또는 추천방식에 의한 모집에 참여할 수 없다'고 돼 있습니다. 공정한 선발을 위한 장치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재단을 통해 제출받은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B씨는 9월 13일 이사회에 참석했습니다. 당시 의결 안건에는 '임원 추천위원회 위원 선임안'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B씨가 규정을 어기고 이사장에 지원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B씨는 “9월 13일 이사회 회의에 참석을 한 것은 맞지만 임추위 구성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일각에서는 B씨의 인권 감수성이 재단의 이사장을 맞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보수 논객인 B씨는 그동안 각종 칼럼과 저서에서 강제동원 배상과 관련해 기존 피해자 지원 단체들과 다른 입장을 보여 왔습니다. 민관협의회에 참석한 한 소식통은 “B씨는 피해자들보다는 일본의 정부와 기업의 입장을 더 강하게 주장해 온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해당 분야에 정통한 또 다른 정부기관 관계자는 “B씨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다 끝났는데 한국 정부가 일본에 떼를 쓰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며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자유지만, 그런 사람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을 최우선으로 하는 재단의 이사장으로 적절한지는 회의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사장 최종 후보로 올라온 또다른 인물인 C씨의 자격 논란도 불거졌습니다. C씨는 2014년 재단이 출범할 당시 이사장을 맡았습니다. 대학병원 산부인과 의사 출신인데다, 해당 분야의 연구 경험이나 학위 등이 없어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아 왔습니다.

◇설립 취지에 맞는 정상화 시급

재단 안팎에서는 “정부가 강제동원 배상 과정에서 반기를 들지 않을 만한 인물을 이사장으로 두기 위해 손을 쓰는 것 아니냐”, “이사장 자리에 내정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동시에 재단의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재단이 태생적으로 한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고, 예산과 인력 규모가 작아 그동안 강제동원 문제의 핵심에 서지 못해 왔기 때문입니다.

 
 〈사진 = JTBC 보도 캡쳐〉 〈사진 = JTBC 보도 캡쳐〉

운영 전반의 쇄신도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취재진이 행정안전부가 매년 산하기관 7곳을 대상으로 하는 경영평가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해보니, 재단은 지난 5년 동안 '미흡'에 해당하는 D등급을 받았습니다. S~E 까지 6개 등급 중 5번째 등급입니다. 특히 2020년에는 윤리 부문에서 가장 낮은 등급인 E등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보고서는 '반복적으로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강제동원 전문가들이 재단에 무엇보다 '투명성'과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가장 아픈 현대사 중 하나인데다 여전히 고통 받는 희생자와 유족들이 다수인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만큼 높은 도덕성이 필수라는 취지입니다.

재단이 강제동원 배상의 주체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희생자와 유족을 지원하기 위한다는 설립 취지에 부합하려면 강도 높은 개혁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도 강제동원 배상 문제에 대한 정리된 입장을 하루 빨리 밝히고, 희생자들의 입장에 한 발 더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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