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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ICT 분야 전력 소비 최대기업'의 RE100…이것은 시작에 불과?

입력 2022-09-26 08:00 수정 2022-09-26 08:20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50)

그래픽으로 보는 RE100과 대한민국 (중)

에너지전환을 위한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역할은?

"재생에너지 확대" 목소리 내기 시작한 기업들
환경만을 위한 손해 감수?
투자 유치와 경제활동 지속을 위한 필수 요소

해외에선 온갖 발전설비 속속 늘어나는데…
재생에너지 vs. 원자력발전
한국에선 언제까지 논쟁만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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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50)

그래픽으로 보는 RE100과 대한민국 (중)

에너지전환을 위한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역할은?

"재생에너지 확대" 목소리 내기 시작한 기업들
환경만을 위한 손해 감수?
투자 유치와 경제활동 지속을 위한 필수 요소

해외에선 온갖 발전설비 속속 늘어나는데…
재생에너지 vs. 원자력발전
한국에선 언제까지 논쟁만 이어질까

온실가스 배출량의 대부분이 에너지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이를 이용하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온실가스를 뿜어내죠. 그렇다면, 이 에너지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분야는 무엇일까요. 이 역시 우리 모두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 산업 부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산업 부문은 단순히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에너지전환을 촉구하는 상황에 이르렀죠. 정책을 만드는 이에게, 그러한 정책이 만들어지도록 영향을 미치는 이에게 '에너지전환을 해달라' 촉구하는 겁니다. 큰 의미에선 '지구를 위해서', 좁은 의미에선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이젠 기업이 쓴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뿜어져 나온 온실가스에 대해 '비용'을 매기기 시작했으니까요. 이전까지 비용을 이유로 재생에너지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이젠 비용을 이유로 관심을 넘어 필요로 하기 시작한 겁니다.

기업이 기업 스스로의 역할과 더불어 정부와 시민사회의 역할을 촉구하는 일, 해외에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기업들의 촉구 이후 실제 에너지 정책이 달라지면서, 얼핏 이들의 목소리는 얼핏 시민사회의 목소리보다 훨씬 커 보입니다. 앞선 연재에서 자주 언급됐던 사례로, 일본을 꼽을 수 있습니다. 기업들이 모여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죠. 소니, 파나소닉, 소프트방크 등 굵직한 기업들이 한목소리를 낸 겁니다. 2020년 말, 소니 대표로부터 고노 다로 당시 행정개혁장관이 “뭔가(재생에너지 확대)를 해주지 않으면, 일본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다는 일화는 아직도회자되고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ICT 분야 전력 소비 최대기업'의 RE100…이것은 시작에 불과?
덴마크의 에너지기업 오스테드는 기존 석탄, 석유, 가스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면서 〈정부와 민간이 탈탄소 전환을 촉진하는 방법〉이라는 보고서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일부 지역에선 정부의 대응 부족이 녹색전력 전환의 지연을 초래하고 있으며, 이는 희생과 대가를 수반한다”며 전력 부문의 탈탄소를 위한 정부 및 기업의 할 일을 정리해놨습니다.

오스테드가 언급한 정부의 역할 중 우리가 눈여겨볼 것으론 재생에너지 목표의 상향과 전력망의 현대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정부의 발전비중 목표는 재생에너지 업계의 움직임을 결정짓습니다. 정부가 목표를 높이면 자연스레 발전사업자는 사업 계획을 세우며, 발전설비사업자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태양광 또는 풍력 설비의 생산을 준비하게 됩니다. 반대로 정부의 목표가 낮아지면 어떻게 될까요. 관련 기업들은 사업철수 또는 신기술 개발 중단을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목표만 높인다고 끝날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늘어날 태양광, 풍력발전단지를 어디에 둘지도 고민해야 하죠. 그 장소는 기존 발전소 부지가 될 수도 있지만, 전에 없던 새로운 곳이 될 수도 있습니다. 즉, 전력망을 준비해야 하는 겁니다. 단순히 이전까지 써오던 수준의 전력망을 깔아서 될 일 또한 아닙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대형 발전소에서 소비지로 일방적으로 전기가 흐르던 '집중형'에서 지역 곳곳에서 전력을 생산함과 동시에 소비도 하는 '분산형'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ICT 분야 전력 소비 최대기업'의 RE100…이것은 시작에 불과?
당장 엄청난 양의 전력을 쓰고 있는 삼성전자로서도 “RE100에 가입합니다”라는 말만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 전력은 어디서 구해올 것인데?'에 대한 답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서 22개의 기업이 RE100에 가입해왔던 동안, '재생에너지 확대'가 좀처럼 화두로 떠오르지 않다가 왜 23번째 가입 기업이 나타나고서야 비로소 '난리'가 났는지. 지난주 연재를 통해 상세히 설명드렸습니다. 이전까지 RE100에 가입했던 한국 기업들의 전력 사용량과 '23번째 가입 기업' 삼성전자의 사용량은 비교가 불가능할 수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삼성전자 역시, 당시 '신 환경경영전략'을 발표하며 자신들의 할 일과 더불어 정부와 시민사회의 역할도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공급을 확대해야 하며, 시민사회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한 이해와 협조를 해야 한다고요. '원전을 기저 전원으로 한다'는 정부, 그것도 출범 초기의 정부를 상대로 이러한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만큼 재생에너지 조달이 시급하다는 방증일지도 모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ICT 분야 전력 소비 최대기업'의 RE100…이것은 시작에 불과?
삼성전자의 전력 사용량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당시 발표에서도 반도체 생산라인을 늘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앞으로의 전력 사용량 역시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겁니다. 또한, '재생에너지가 주력 발전원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국내 일부의 생각과 달리, 삼성전자의 해외 사업장은 RE100의 이행이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미국과 유럽, 중국에선 2020년 이래 모든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고 있습니다. 개도국 사업장에서마저도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매우 높은 편입니다. 이를 발판 삼아 2025년까지 해외 사업장 전체의 RE100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죠. 소니가 자국 부처 장관에게 “재생에너지를 확대하지 않으면 일본을 떠날 수 있다”고 경고한 것과 삼성이 해외 사업장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공개한 것 중 무엇이 더 '묵직한 한 방'일까요.

그런데, 우리 모두가 이보다 더 집중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이 탄소중립 선언 전후인 2019년이었다면 모를까, 어느덧 2022년의 하반기를 보내고 있고, 세계의 흐름은 이제 '기업이 쓰던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단계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ICT 분야 전력 소비 최대기업'의 RE100…이것은 시작에 불과?
OECD '평균'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이 31%를 넘어선 시점에서, 글로벌 기업들은 본격적인 '탈탄소'에 나서고 있습니다. 기업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전력만 끌어다 쓰는 것이 아닌 거죠. 열(스팀)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LNG나 석유를 직접 가져다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의 이용은 곧 '탄소배출'을 의미합니다. 탄화수소를 태우면(탄화수소가 산소와 만나면),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열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탄소가 배출됩니다. 결국, 기업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다른 에너지원의 '대체재' 또한 찾아야 하는 겁니다.


삼성전자가 RE100에 가입하기 이전까지, 전력 사용량 1, 2위를 기록했던 SK 하이닉스와 현대자동차의 에너지 사용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SK 하이닉스의 경우, 전체 사용 에너지 가운데 전력의 비중이 매우 컸지만, 스팀과 LNG 수요도 분명 존재합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전력 사용량과 화석연료 사용량이 비슷할 정도입니다. 스팀도, LNG도, 석유도 기본적으로 '열'을 얻기 위해 쓰이는 에너지원입니다. 그리고 이들 에너지원을 탄소배출 없이 대체할 수 있는 것은 곧 전력, 보다 정확히는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이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ICT 분야 전력 소비 최대기업'의 RE100…이것은 시작에 불과?
안 그래도 기업의 전력 사용량 자체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데, 기존에 쓰던 화석연료를 전기로 대체(전기화)한다면? 산업부문의 전력 수요는, 보다 정확히는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에 대한 수요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를 놓고 심각한 고민을 거듭한 후, 신속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정부입니다.

그런데, 지금이 탄소중립 선언 전후인 2019년이었다면 모를까, 2022년 하반기를 지나는 시점에서 더는 기업이 'RE100 가입 선포'에 스스로 만족을 느낄 여유가 없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Scope 1과 Scope 2를 넘어, Scope 3 배출량까지도 '넷 제로'를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섰으니까요.

지난 5월 전해드린 131번째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현대차 이어 삼성도? RE100, 핵심은 선언보다 이행 (하)〉에서 설명해 드렸듯,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은 Scope 1, 2, 3로 구분됩니다. Scope 1은 기업의 담벼락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실가스로, 공장 등 시설을 가동하는 데에 직접 화석연료를 이용해 배출되거나, 기업 소유 차량이 직접 뿜어내는 온실가스를 의미합니다. Scope 2는 간접배출로, 기업 담장 안의 활동으로 인해 간접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뜻하죠. 공장에서 전기를 쓰는 행위가 대표적입니다. 이 행위가 이뤄지는 것은 기업의 담벼락 내부지만, 그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는 외부에 있기에 '간접배출'이라 하는 겁니다. 즉, RE100은 Scope 2 차원의 탄소중립을 의미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ICT 분야 전력 소비 최대기업'의 RE100…이것은 시작에 불과?
Scope 3는 담장 밖에서 비롯되는 배출을 총칭합니다. 임직원의 출퇴근 또는 출장, 하청업체의 부품 생산 또는 조립, 원자재의 생산 등 '업스트림(제품 제조 과정)'의 배출뿐 아니라 완성품의 운송, 유통, 판매와 더불어 소비자가 이를 사용하고, 폐기에 이르기까지의 '다운스트림(제품 유통, 사용, 폐기까지의 과정)' 배출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죠.

현재 글로벌 차원의 기업활동을 벌이고 있는 국내 기업 대부분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해마다 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ESG 경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가 담긴 보고서입니다. 여기엔 기업이 에너지를 얼마나 사용했는지, 온실가스 배출은 얼마나 했는지 상세히 담깁니다. ESG 이니셜의 첫 번째인 E(환경)에 해당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RE100 가입 기업 중 전력 사용량 Top 3의 Scope 별 배출량은 어떨까요.

현대차의 경우, Scope 1보다 Scope 2의 배출이, Scope 2보다 Scope 3의 배출이 더 많습니다. 공장 내 직접 배출보다 전력 사용을 하는 과정에서의 배출량이 더 많은 겁니다. 특히, 아직까진 내연기관을 중심으로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인만큼, 주요 구성품인 철강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의 온실가스 배출량, 완성품(자동차)의 유통-사용-폐기까지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앞선 Scope 1, 2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많고요. 반면 반도체 기업인 SK 하이닉스의 경우, Scope 3 배출량은 전체 배출량 대비 미미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ICT 분야 전력 소비 최대기업'의 RE100…이것은 시작에 불과?
기존 국내 RE100 기업 중 전력 사용량 Top 2인 SK 하이닉스와 현대자동차가 이렇게 각 Scope 별 배출량을 공개하는 것과 달리, 새롭게 RE100에 합류한 삼성전자는 아직 Scope 3 배출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신 환경경영전략'과 함께 기업과 정부, 시민사회의 역할을 강조한 만큼, 제품의 생산, 유통, 폐기까지 LCA(Life Cycle Assessment, 전주기 평가) 차원의 분석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렇게 시민사회에 이어 재계까지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한목소리를 내면서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이 비로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의 상황으로는, 그 걸음은 '빅 스텝'을 넘어 '자이언트 스텝'이 필요해 보입니다. 더 이상 '논쟁'이 아닌 '행동'이 필요한 것이죠. 모든 것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가야 한다”, “원자력을 중심으로 가야 한다” 말만 오가는 상황은 정부, 재계, 시민 모두에게 도움 될 것이 없습니다.

에너지전환은 실전입니다. 새 정부의 출범 전부터 '원전을 기저 전원으로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면, 이젠 구체적인 실행 계획도 나와야겠죠. 송전 효율을 감안한다면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특별시에 ○○기, 전력수요가 가장 많은 ◇◇도에 ○○기의 원전을 건설하겠다”고. 위험성을 감안한다면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도에 ○○기의 원전을 건설하겠다”고 계획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원전을 새로 짓는 만큼, 수천, 수만년 동안 영구히 땅속에 고준위 방폐물을 묻어둘 처리장에 대해서도 방향을 제시해야겠죠. 그저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울 '계획의 계획'에 그칠 것이 아니라 “역대 지진 발생 횟수가 가장 적은 ▽▽ 인근에 처리장을 마련하겠다” 정도의 로드맵을 내놔야 합니다. 그렇게 부지를 확정하고서도 처리장을 확보하기까지 최소 24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저 '있는 원전 수명 연장하고, 가동률 높이겠다'는 계획만으로 '원전을 기저 전원으로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두를 기만하는 일일 뿐입니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탈탄소 흐름, 에너지전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은 모두를 위기에 빠뜨리는 일일 뿐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ICT 분야 전력 소비 최대기업'의 RE100…이것은 시작에 불과?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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