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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부터 강제동원…사과 못 받고 떠난 김옥순 할머니

입력 2022-10-18 21:03 수정 2022-10-18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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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2살에 일본 근로 정신대에 끌려갔던 김옥순 할머니가 이틀 전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뒤늦게 알려지기까지 생전 살던 쪽방촌 이웃들이 분향소를 만들어 할머니를 기리고 있었습니다.

신진 기자입니다.

[기자]

할머니는 분홍색 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어릴 때 못 입었던 기억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백발 머리는 항상 가지런히 빗었습니다.

12살에 일본 근로정신대에 끌려갔던 김옥순 할머니입니다.

[임영근/고 김옥순 할머니 이웃 : (성격이) 밝고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옥순할매' 하고 우리가 농담하고 막, 같이 안아주고 사진도 찍고.]

학교에 차출 인원이 할당되면서 제비 뽑기를 했고 국민학교 6학년이던 할머니 운명이 갈렸습니다.

그 길로 일본으로 가 공장에 갇혀 일했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고, 예쁜 옷 입고 싶었을 나이였습니다.

[나정혜/고 김옥순 할머니 이웃 : 치매기가 약간 있어서 옛날얘기를 자꾸 했어요. 누구 엄마를 막 찾고, 새벽에도.]

군수 기업 후지코시에서 탄피를 만들었습니다.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던 곳이었습니다.

[김옥순 할머니/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 기계에 들어가서 이러다가 끌려 들어간 거 하나 봤어. 공장에서, 그때 울고 난리를 냈었어.]

월급은 못 받았고,

[김옥순 할머니/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 10원도 못하고, 10원도 안 줬지.]

해방된 뒤엔 의지할 곳 없어 쪽방촌에서 혼자 살았습니다.

지난 2019년 손해 배상 소송에서 이겼지만 후지코시는 상고했습니다.

아흔세 살 할머니는 결국 대법원판결을 못 보고 눈을 감았습니다.

23명이던 원고는 이제 10명 남았습니다.

[김진영/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 (판결을) 기다리다 돌아가시는 거죠. 단순히 원고분들에게 돈을 드리기 위해 소송을 하는 건 아닙니다.]

이웃 주민들이 쪽방촌 한쪽 공간에 차린 분향소.

세상은 모질었지만, 이웃들은 할머니의 가장 예쁜 모습을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자료제공 : 민족문제연구소·손은식 프레이포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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