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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인문학 배우면 재기하고픈 마음 생기는데 교실이 없어요"

입력 2022-09-28 17:36 수정 2022-09-29 13:57

노숙인 작품 시화전 오는 30일까지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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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작품 시화전 오는 30일까지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아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지난 시간과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리라 다짐해본다. 거울 앞에서'

노숙인 인문학 과정 성프란시스대학(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수료생 서모 씨가 쓴 시 '거울 앞에서'입니다. 한 언론사에 시사만화를 연재했던 천명기 화백은 시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주었습니다. 시와 그림이 합쳐져 한 편의 시화가 완성된 겁니다.

지난 26일부터 오는 30일까지 국회 의원회관에서 노숙인 시화전 '거리에서 움튼 글, 그림으로 피어나다'가 열리고 있습니다. 26일 개회식에는 성프란시스대학의 곽노현 학장과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장 허용구 신부, 수료생 10명, 강민정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습니다.

성프란시스대학 수료생들이 쓴 시 문집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는 지난해 서울시 문화상 문학 부문을 수상했는데, 이 문집에서 선별된 작품들과 화가 7명이 재능 기부한 그림들이 합쳐진 57편의 시화가 전시됐습니다.

노숙인 인문학 과정이 마련된 성프란시스대학은 2005년에 설립됐습니다. 당시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소장 성공회 임영인 신부는 숙식만 제공하면 대부분의 노숙인은 노숙 상태에 계속 머물게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임 신부는 해결 방안으로 미국 빈민들의 자존감 회복 프로그램 '클레멘트 인문학 교육'을 착안하게 됩니다. 박경장 성프란시스대학 교수는 "인문학은 내면의 힘을 키워 자존감을 되찾아주는 힘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시서기센터는 클레멘트를 벤치마킹해 2005년 9월 성프란시스코 대학에 글쓰기와 철학, 역사 교육이 포함된 인문학 과정을 열었습니다.

센터에서 17년간 배출된 수료생 중 작고한 60명을 제외한 22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0%가 사회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힐 정도로 효과가 입증됐습니다. 교육과 역사 만화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이번 시회전에재능 기부한 7기 수료생 신웅 작가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교육 공간은 한 대기업이 매년 제공하는 지원금으로 월세를 충당하며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위기를 겪게 됩니다. 이 기업의 지분이 팔리면서 다른 기관에 지원하고 싶다며 성프란시스대학에 후원을 끊었습니다.

현재 성프란시스대학은 서울시 노숙인 무료 진료소를 야간에 무상으로 빌려 강의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그런데 교실로 쓰기에는 비좁고, 야간 진료가 있는 날에는 소리를 낼 수 없고 눈치 보기 일쑤입니다. 또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토론 장이 되는 식사도 금지돼 교육 효과가 감소했습니다.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독립적인 교육 공간이 절실하다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시화전은 교실 마련에 사용될 후원금 모금을 홍보하는 성격도 있습니다. 각 시화 작품은 10만원에 판매될 예정이고, 한 달에 1만원 후원자도 찾고 있습니다.

안재금 다시서기지원센터 실장은 "노숙인 글의 수준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편견과 달리 시화전에 참여한 수료생들의 작품은 교수 등이 포함된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서울시 문화상을 받을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수료생들의 문집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는 일반인도 공감할 수 있을 만큼 노숙인으로서 겪은 일과 감정을 진솔하게 담아냈다는 게 수상 이유입니다.

곽노현 학장은 "박재동과 천명기 등 일간지에서 시사만평을 그린 화백들이 참여할 정도로 화가들의 수준도 높기 때문에 그림의 가치도 상당하다"며 관심을 당부했습니다.

국회 전시 공간은 곽 학장의 요청을 받은 국회 교육위 강민정 의원이 적극적으로 움직여 마련됐습니다. 국회 연구단체에 '약자의 눈'에서 활동하는 강 의원은 "노숙인들이 단지 바닥까지 떨어진 사람만으로 비치는 게 아니라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를 문학과 예술로 표현하는 이웃임을 알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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