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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왜] "불곰이 깨어났다"...시진핑, '안방' 뛰쳐나온 까닭

입력 2022-09-11 08:57 수정 2022-09-13 10:04

習, 32개월만에 해외순방
금주 카자흐·우즈벡 방문

우즈벡 SCO서 푸틴 회동
2월 올림픽 이후 7개월만

러,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중앙亞 안보 리스크 각성

중국에 세력 균형 러브콜
러시아 영향권 진출 군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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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 32개월만에 해외순방
금주 카자흐·우즈벡 방문

우즈벡 SCO서 푸틴 회동
2월 올림픽 이후 7개월만

러,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중앙亞 안보 리스크 각성

중국에 세력 균형 러브콜
러시아 영향권 진출 군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8월 19일 흑해의 휴양지 소치에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며 문을 나서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8월 19일 흑해의 휴양지 소치에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며 문을 나서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국가주석 겸임)가 14일 카자흐스탄을 방문한다고 카자흐스탄 외교부가 밝혔습니다. 코로나 발발 이후 32개월만에 해외 순방 일정을 짠 모양입니다. 2020년 1월 미얀마 방문 이후 처음입니다.

시진핑은 하루 짜리 카자흐스탄 일정을 마치고는 인접한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해 SCO 회원국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양자 또는 몽골까지 포함해 3자 회담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진=중앙포토][사진=중앙포토]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전 정부에서 그토록 구애했는데 코로나 좀 수그러들면 방한하겠다더니 그 약속을 공염불로 만들고 정작 카자흐는 가는구나'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2017년, 2019년 두 차례 중국을 방문했지만, 시 주석은 문 전 대통령 재임 중 한 번도 답방하지 않았습니다. 시 주석의 방한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7월이 마지막이었죠.


당시 정부는 시진핑 방한을 기점으로 남ㆍ북ㆍ중 정상간 정치 이벤트를 기대했을지 몰라도 시진핑은 번번이 방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지난 칼럼(『시진핑 방한, 녹록지 않은 이유』)에서 많이 다뤘으니 오늘은 넘어가겠습니다.

시진핑의 방한은 북핵 제재에 대한 국제공조를 더욱 조이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한국을 찾은 시진핑이 '북핵 해결을 위해 긴밀히 협력한다'는 멘트 정도 안 남기고 갈 수 있습니까. 국제 사회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중국인데 국가 정상이 한 약속을 변방의 관세 기관이 한 눈 감아주는 식으로 대북 제재의 구멍을 방치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9년 12월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전 악수를 하고 있다.[사진=중앙포토]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9년 12월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전 악수를 하고 있다.[사진=중앙포토]
아무튼 방한의 간접 효과가 이렇게 작동하기 때문에 '바쁜 일 없으면 한국 한번 오시라'는 뉘앙스의 지난달 박진 외교부 장관의 초청.이 제스처에선 전 정부처럼 간절한 맛은 전혀 없지만 '일단 중국 정상이 오게 되면 대북 제재망 강화 차원에선 좋은 일 아니겠어'라는 셈법이 엿보입니다.


오는 10월 3연임을 결정 짓는 당 대회를 앞두고 어느 정도 국내 정치 변수들이 정리된 모양입니다. 시진핑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가는 이유는 뭘까요.

 
카자흐스탄의 원유를 중국에 수송하는 송유관. [사진=로이터, 연합뉴스]카자흐스탄의 원유를 중국에 수송하는 송유관.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첫째, 경제안보 외교 때문입니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ㆍ중앙아시아ㆍ유럽을 연결하는 육상ㆍ해상 실크로드) 정책의 핵심 거점입니다. 카자흐를 통해 러시아ㆍ동유럽으로 이어지고 우즈벡을 징검다리로 카스피해와 이란ㆍ튀르키예ㆍ지중해로 연결됩니다.

중국은 카스피해 주변 카자흐스탄 유전에서 파이프 라인을 통해 원유를 들여오고 있습니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아주 긴밀한 협력국입니다. 최근엔 카자흐스탄의 서유럽행 원유 파이프가 관통하는 러시아가 높은 유가를 유지하기 위해 카자흐스탄발 원유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하자 유럽과 함께 중국이 반발했습니다.

아래 지도를 함께 보시겠습니다. 카자흐스탄 원유는 파란색 CPC 라인을 통해 흑해 항구로 빼낼 수 있습니다. 서유럽에선 러시아의 원유 통제가 강해지자 카자흐스탄에 증산을 요청했고 카자흐스탄은 이에 적극 호응했습니다. 그러자 러시아가 각종 이유를 들어 이 원유의 수출을 방해했던 겁니다.

 
 [사진=TRT 월드 캡처] [사진=TRT 월드 캡처]
중국은 비록 이 송유관을 통해 받는 원유는 없지만 높은 유가는 결국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중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서유럽과 동조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에 매여있습니다.


러시아로선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러 제재를 하는 서유럽의 목을 조이겠다는 취지였지만 원유 수입 생태계에 묶여 있는 중국에 불똥이 튀는 것까지 차단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 달여만에 카즈흐스탄 송유관 압박은 해제됐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이번 순방에서 첫 번째 방문지로 카자흐를 고른 것은 경제안보적 행보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난처한 처지에 빠졌던 카자흐의 위상을 높여주고 중국과 긴밀한 협력의 현실을 재확인 시켜줌으로써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 강화를 견제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해석됩니다.

전통적으로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5개 스탄 국가들은 러시아의 세력권이자 뒷마당으로 통했습니다. 특히 카자흐에서 중국은 지난 20년 간 경제적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키워왔습니다.

둘째, 지정학적 포석을 두는 겁니다.

중앙아시아의 스탄 5개국은 천산산맥에서 발원해 아랄해로 유입되는 시르다리야강을 경계로 친러 성향의 국가(카자흐스탄ㆍ키르기스스탄ㆍ타지키스탄)와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국가(우즈베키스탄ㆍ투르크메니스탄)로 나뉩니다. 우즈벡과 투르크메니스탄은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분리감이 생기는 사르다리야강 아래에 위치해 종족ㆍ언어 특성상 튀르키예ㆍ이란과 더 친밀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픽=두산백과 캡처][그래픽=두산백과 캡처]
러시아의 영향력이 제한되는 공간 특성을 십분 이용해 우즈벡과 투크르메니스탄은 중국과 이란, 튀르키예까지 끌어들여 러시아에 대한 세력 균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에 러브콜을 보내는 겁니다.

 
지난 5월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를 방문한 카자흐스탄 토카예프 대통령이 에르도안 대통령과 탁구로 친선을 과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지난 5월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를 방문한 카자흐스탄 토카예프 대통령이 에르도안 대통령과 탁구로 친선을 과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입장에선 일대일로의 핵심 거점 국가인 우즈벡의 지정학적 수요와 정체성을 파고 들어 영향력을 넓힐 찬스인 겁니다. 게다가 미군이 아프간에서 전격 철수하면서 힘의 공백이 생긴 아프간과 아프간 북부 지역에 숟가락을 얹을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이를 흘려보낼 리가 없죠. 미국ㆍ러시아와 함께 유라시아 지정학 게임의 주요 플레이어로서 중국의 이런 행보는 구조적으로 예측이 되는 행위입니다.

 
[그래픽=중앙포토][그래픽=중앙포토]
중앙아시아는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가 정치ㆍ경제적으로 헤매고 있었던 지난 30년간 힘의 공백 지대였습니다. 모스크바의 앞마당 격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부를 점하고 있는 이 나라가 다시 지정학적 맹주 자리를 노리고 힘을 투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곰'이 깨어났습니다.

다음 차례는 러시아의 경제안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중앙아시아가 될 수 있습니다. 모스크바의 뒷마당 격인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친러 성향의 카자흐스탄조차 러시아를 중시하는 외교 정책을 재고하면서 미국, 튀르키예, 중국 등과 관계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현실화된 이상 이 지역의 합종연횡 움직임이 매우 역동적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렇게 태생적으로, 또 지정학적으로 대체재 관계입니다. 지금은 미국의 집중 견제로 상호 협력 공간이 생겼지만 미국 변수가 약해지거나 미국이 빠지면 핵심 이익을 위해 전략 경쟁을 해야 하는 숙명적 관계입니다.

중·러의 이런 경쟁 구도는 한반도 주변에서도 목격됩니다. 장기적으로 협력에서 경쟁 관계로 변동되는 중·러 관계의 현실을 가늠할 수 있는 물밑 싸움의 현장이 중앙아시아, 특히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입니다. 불똥이 어디로 튈 지 모르니 눈 부릅뜨고 주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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