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2차 독성 산물인 아플라톡신이 발생한 나무젓가락. 〈사진 바이두 캡처〉
최근 중국에서 나무젓가락을 교체하지 않고 장기간 사용하던 일가족 4명이 간암에 걸려 숨졌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나무젓가락에 생긴 아플라톡신(Aflatoxin·곰팡이 독소) 때문에 젓가락 사용자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관련 내용이 국내 언론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나무젓가락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가 커지고 있는데요.
'나무로 만든 젓가락을 버리자' 거나 '목제 조리도구를 버리자' 는 등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JTBC 팩트체크팀은 중국에서 벌어진 사고의 정확한 내용이 무엇이고 나무젓가락과 독소의 연관성 등을 확인해 봤습니다.
지난 7월 21일 대만 싼리TV 의학프로그램에 출연한 대만 병원 임상독물과 간호사 탄둔츠. 〈사진 : 유튜브 '싼리TV' 캡처〉
국내 보도는 지난 25일 홍콩 매체를 인용해 전해졌습니다. 대만 린커우창겅(林口長庚) 병원 임상독물과 간호사 탄둔츠(譚敦慈)가 지난달 한 의학 프로그램에 출연해 2013년 중국 일가족 4명이 나무젓가락 때문에 간암에 걸려 사망한 사례를 소개한 내용입니다.
그는 일가족의 사망 원인을 주방에서 사용하던 나무젓가락 등 조리 도구에서 발견된 1급 발암 물질 아플라톡신으로 꼽았습니다.
중국 현지 기사를 확인해 봤습니다. 이 가족의 죽음이 외부에 알려진 건 지난 2018년 12월 중국 베이징TV(BTV) 의료프로그램 '나는 의사다'(我是大醫生)에서 입니다.
2018년 12월 중국 베이징TV 의료프로그램 '나는 의사다'에 아플라톡신으로 인한 일가족 3명 사고가 공개됐다. 〈사진 : 텅쉰 캡처〉
2018년 최초 방송 영상을 추적했지만, 이미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대신 당시 중국의 여러 보도 내용을 종합해 사건의 실체를 정리했습니다.
베이징에 사는 왕(王) 모 씨는 프로그램에서 일가족 4명이 암에 걸렸다며 “아버지는 대장암으로, 언니는 뇌종양, 남편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나는 2013년 폐암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각기 다른 암 진단을 받았고 그 중 3명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선 왕 씨 가족들의 발병 원인에 대한 연구결과도 공개됐습니다.
그 결과 가족들이 오래 사용한 나무로 만든 젓가락과 도마에서 발암물질 '아플라톡신'이 발견됐는데,
전문가 검토 결과 이 물질이 암의 원인인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제대로 씻지 않은 조리 도구로 오랫동안 음식을 만들었고, 음식을 통해 가족들의 몸속에 들어온 독소가 암을 유발했다는 겁니다.
곰팡이가 생긴 나무 도마. 〈사진 : 하오칸스핀 캡처〉
일단 일가족 4명이 병의 종류가 서로 달라 모두 간암으로 사망했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발병 원인이 '나무젓가락' 때문이란 것은 어떨까요.
중국의 보도들에선 앞서 설명한 대로 '아플라톡신'의 발생 배경에 대해 비위생적인 조리 도구 관리를 꼽고 있습니다.
'젓가락과 도마 등 목재 조리 도구에 발생한 독소를 통해 오염된 음식' 때문이란 것이 정확합니다.
이 역시 오염된 조리 도구를 '장기간' 사용했을 때라는 조건이 함께 충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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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라톡신 서식 가능성...나무 조리 도구 사용하면 안 된다?
아플라톡신은 쌀, 옥수수, 땅콩, 대두 등 곡식, 견과류, 식용 기름 등이 부패할 때 생기는 곰팡이의 2차 독성 물질입니다.
1960년 처음 발견됐고, 1974년 인도에서 106명, 2004년 케냐에서 125명 집단 사망의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당시 사망자들은 아플라톡신이 증식한 썩은 옥수수를 먹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기본적으로 곰팡이가 생기거나 오염된 음식과 식자재를 통해 병이 발생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나무로 만든 젓가락과 도마 등은 어떨까요?
나무 조리 도구에도 아플라톡신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다만 조리 도구를 자주 세척하는 등 청결하게 유지하면 아플라톡신 증식 등 오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최경철 한국독성학회장은 “젓가락 미세구조를 살펴보면 여러 틈이 있고 유기물이다 보니 제대로 세척하지 않으면 아플라톡신이 번식할 수 있다”면서도 “세척하고 건조를 잘하면 아플라톡신의 번식 위험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도 JTBC 취재진에 “나무이기 때문에 건조한 상태로 보관하고 틈이 있거나 깨진 것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권유했습니다.
그러면서 “아플라톡신은 일반적인 가열 과정에서 분해되지 않는다"면서 "곰팡이가 생겼다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아플라톡신은 일반적으로 물이 끓는 온도에선 죽지 않고, 270도 이상의 고열에서만 사라집니다.
우리나라의 아플라톡신을 포함한 진균 환자 발생 수는 지난 5년 간 36명에 불과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9~2023년 우리나라 진균 환자 발생 수
아플라톡신은 간암 발병 원인 중 하나인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중국과 한국에서 아플라톡신이 간암 발병에 미치는 영향엔 차이가 있습니다.
2021년 중국 의학과학원 국립암센터가 발표한 간암 통계에 따르면 남성 간암 사망 원인 1위는 B형 간염(55.6%), 2위가 흡연(15.7%)이었습니다.
아플라톡신(12.6%)이 음주(10.3%)에 앞서 3위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간암 환자의 72%가 B형 간염 바이러스, 12%가 C형 간염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고 9%가 알코올, 4%가 기타 원인(2014년 대한간암학회 발표)으로 나타났습니다.
아플라톡신 위험성을 간과해선 안 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아플라톡신 위험지역이라고 볼 순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