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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골프치면 1만5천보, 쿠팡 직원 2만보 견딜만 하다?

입력 2024-07-18 17:18 수정 2024-07-2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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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1일 고 장덕준씨가 근무했던 쿠팡 칠곡물류센터 CCTV 영상.

2020년 10월 11일 고 장덕준씨가 근무했던 쿠팡 칠곡물류센터 CCTV 영상.

"저희가 측정해본 결과 워터 스파이더들은 하루 평균 2만 보 정도를 걷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4시간 정도 골프를 치면서 걸으면 약 1만5000보 정도를 걷게 됩니다. 8시간 동안 2만 보라면 견디기 힘들 정도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쿠팡 측 변론서 서면)

지난 2020년 10월 쿠팡물류센터(쿠팡풀필먼트서비스)에서 일하던 27살 장덕준 씨가 급성심근경색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장 씨는 태권도 4단에 헬스와 등산이 취미였고, 키 172cm에 몸무게 71kg으로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은 1주일에 한 번 정도 맥주 1병을 마시는 게 전부였습니다.

이는 그가 숨지고 넉 달 뒤 대구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조사해 내놓은 결과에 담긴 내용입니다.

그런데 장 씨가 목숨을 잃고 3년 9개월, 산재 판정을 받고 3년 5개월이 지난 이달 12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전혀 다른 주장이 나왔습니다.

장 씨의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입니다.

쿠팡 측 변호인은 장 씨가 담당한 워터 스파이더란 직무가 골프와 큰 차이가 없다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워터 스파이더는 자체 측정 결과 하루 평균 8시간 일하고, 2만 보를 걷는다',
'골프는 4시간 동안 1만 5000보를 걷는다.'
'그래서 8시간 2만보라면 견디기 힘들 정도라고 보기 어렵다'

JTBC는 쿠팡 측 주장을 팩트체크해 봤습니다.

① 골프 18홀 돌면 1만5000보 걷는다?

전남 영암 사우스링크 골프장 〈사진 중앙DB〉

전남 영암 사우스링크 골프장 〈사진 중앙DB〉


미국 미네소타주 메이요 의과대학(Mayo Clinic School of Medicine)은 미국에서 골프 인구가 급증하던 2006년 골프 18홀을 돌 때 보행 수를 과학적으로 계측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신체 활동에 대한 골프 기여도 연구 : 골프 라운딩에 몇 걸음을 걷나' 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연구진은 30~80세 사이 42명의 남녀를 선별해 길이가 다른 3개의 18홀짜리 골프 코스에서 운동을 하도록 했습니다.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키, 몸무게, 핸디캡(평균 스코어) 등이 다른 사람들로 선발했고 보행 측정기 위치도 동일하게 지정했으며 측정의 시작과 끝도 1홀 첫 타와 마지막 타수로 맞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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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3개의 골프장을 돈 남녀 42명의 평균 걸음 수는 1만 1948보로 나타났습니다.

골프장의 거리는 남성 기준 5706~6205야드(5.2~5.6km)였습니다.

참가자의 95%는 1만 167~1만 3729보 안에 포함됐습니다.

이를 토대로 연구진은 골프 실력, 신체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18홀 당 평균 약 1만 2000보 가량 걷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017년 에딘버러대 신체활동 연구센터가 영국스포츠저널(BJSM)에 발표한 논문에선 "골프 18홀 동안 평균 1만 3000보 가량 걸으며 전동 카트를 타고 이동할 경우 6300보 가량 걷는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 관련된 연구 논문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국내 골프장의 코스 평균 길이는 약 6900야드(6.3km, '골프장 계획 및 개발사례 연구', 도영준, 녹색산업연구 18집, 2012년)로 해외의 연구 사례보다 700야드 정도 깁니다.

이를 감안해도 국내 골프장 18홀에서 운동하는 평균 걸음 수가 1만 5000보라는 답이 나오긴 어렵습니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쿠팡 측 주장과 다릅니다.

권선아 한국골프대학교 골프지도학과 교수는 JTBC에 "그냥 둘레길을 걸을 때도 지속적으로 3시간 가까이 걸어야 1만 5000보가 나온다."면서 "골프를 칠 때에는 18홀 내내 걷지 않고, 일반인들의 80% 정도는 카트를 이용하기 때문에 1만 5000보가 나오긴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쿠팡 과로사 손해배상 소송 진행 기록

쿠팡 과로사 손해배상 소송 진행 기록


다른 골프 전문가들 역시 "초심자가 골프장의 모든 홀을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실제 1만5000보 이상 걸음 수가 나오긴 어렵다"고 말합니다.


'4시간 정도 골프를 치면서 걸으면 약 1만 5천 보 정도를 걷게 된다'는 주장은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일까.

쿠팡 측 변호인에 물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이라면서 "골프장에서 휴대 전화로 해보면 보통 1만5000보 정도가 나온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 얘기도 들어보면 그 정도 나온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취재팀에 걸음 수와 관련한 블로거들의 게시글 4개를 보내 왔습니다.

그 외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쿠팡 측이 주장한 골프 1만 5000보는 근거가 모호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② 워터 스파이더들은 하루 평균 2만 보 정도 걷는다?


쿠팡 측이 주장한 워터 스파이더가 하루 2만 보를 걷는다는 것은 어떨까요.

'워터 스파이더'란 쿠팡 물류센터에서 출고 지원을 담당하는 직원들을 통칭해 부르는 표현입니다.



이들은 주문 받은 물건을 찾아 포장하는 곳으로 옮기고, 포장에 필요한 아이스박스, 에어캡, 테이프 같은 부자재를 챙겨주고, 포장이 완료된 물건을 다시 컨베이어벨트로 옮기는 일을 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질병판정서에 따르면 장 씨는 워터 스파이더로 '집품(피킹), 포장(패킹), 푸시, 레일, 박스, 리빈, 리배치 업무가 중단 없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업무, 즉 수동 자키를 사용하여 토트 바구니 운반, 빈 키트 정리, 포장박스와 PB비닐 등 포장 부자재 보충, 층간 부자재 운반을 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숨지기 전엔 타 작업 지원 업무인 택배물품 스캐너와 포장된 택배 물품 운반 등도 함께 한 것으로 조사 결과에 담았습니다.

장 씨 유족 측은 장 씨가 일하던 모습 8시간을 분석해 대략 4만 보 이상을 걸은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유족에 제공한 CCTV. 고 장덕준씨(사진)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제품 포장과 출고 전반을 지원하는 일명 '워터스파이더' 업무를 담당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유족에 제공한 CCTV. 고 장덕준씨(사진)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제품 포장과 출고 전반을 지원하는 일명 '워터스파이더' 업무를 담당했다.


평균 2만보를 걷는다는 주장에 대해 쿠팡 측에 그 근거 등을 직접 확인해 봤습니다.


쿠팡 측 변호인은 "다른 사람이 걸어보니까 2만 보 정도가 나왔다"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걸음 수를 측정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쿠팡 측 변론서를 확인해 봤습니다.


"워터 스파이더는 제품의 집품과 포장 업무를 수행하는 작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제품 보관 바구니인 빈 토트나 종이 박스, 필름, 페이트 등 포장 부자재를 쌓은 팰릿, 일명 팔레트를 기계식 운반장치인 핸드 자키나 손수레로 옮겨서 작업 장소에 보충해 주는 작업을 한다. 워터 스파이더의 업무 동선은 정해져 있고, 물류센터 해당 층의 모든 구역을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저희가 측정해 본 결과 워터 스파이더들은 하루 평균 2만 보 정도를 걷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적인 워터 스파이더 업무에 대한 설명을 적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조사해 내놓은 장 씨가 지속적으로 해 온 업무와 똑같은 수준에서 측정한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③ 사망노동자는 2만보? 골프 1만5000보 대비 과로사할 정도 아니다?

쿠팡 측 변호인이 재판부에 제출한 구두 설명 자료.

쿠팡 측 변호인이 재판부에 제출한 구두 설명 자료.


쿠팡 측은 '견디기 힘들 정도라고 보기 어렵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골프 4시간 1만5000보와 그들이 추정한 장 씨의 8시간 2만 보를 상대적으로 비교해 둔 겁니다.

쿠팡 측 변호인은 JTBC에 "8시간에 2만 보를 걷는 것이 과로사 할 정도가 아니란 취지지, 강도가 골프치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쿠팡측 변론서의 해당 부분 맥락을 살펴봤습니다.

"지원 업무라는 워터 스파이더 업무의 특성상 마감 시간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작업 진행 상황을 보고 미리 충원해 놓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포장 작업자들처럼 계속 일하는 것이 아니라 틈틈이 쉴 수 있다.

(~중략~) 핸드자키 또는 카트를 이용해 운반한다. 무게가 나가는 물건을 손으로 들어 운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핸드 자키로 물건을 이동한 후 정해진 장소에서 정리할 뿐이고, 정리하는 박스 묶음의 무게는 여성 근로자도 손쉽게 들 수 있을 정도로 무겁지 않다"


업무 동선도 정해져 있고, 모든 구역을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골프 4시간 1만 5000보와 장 씨의 8시간 2만 보를 비교한 겁니다.

그러나 장 씨와 함께 일했던 전직 직원 A씨 말은 다릅니다.

"당시 하루 출고 되는 물건이 야간에 4만 건이나 된다"며 "2만 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고객이 주문한 물건을 토트(파란박스)에 담아서 포장하는 데까지 갖다주고 다시 토트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데 칠곡센터 같은 경우 주간 2만건, 야간 4만 건 정도 나갑니다. 계속 왔다갔다 해야 하고요. 포장에 필요한 부자재 옮기는 게 가벼운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에어캡 같은 완충제도 하나씩 받는 게 아니라 파레트(수송용 받침판) 단위로 받습니다. 수동 자키(운반도구)가 60kg인데 여기에 파레트(수송용 받침판) 16kg, 그 위에 박스 여러 개 올리면 무게가 100,200kg 순식간에 올라가죠. 그거 끄는 작업 오래하면 손에 건초염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 왔다갔다 해야 하고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이런 일을 8시간동안 계속 반복하는데 하루 2만보, 그건 거짓말입니다."


다른 지역의 쿠팡물류센터에서 워터 스파이더로 일한 전 직원 B씨의 설명도 비슷합니다.


"고인이 돌아가시고 나서 1년 뒤쯤 쿠팡 사측에서도 한번 조사를 해보려고 워터스파이더 업무하던 분에게 만보기를 채우고 일을 하게 했다"면서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그때 3만 보 가량 나왔다. 워터스파이더 일은 가장 고된 일이어서 다들 기피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은 판정서에서 장 씨가 '(수동 자키를 이용해) 하루 20~30㎏, 20~40회', '(손으로) 3.95~5.5㎏ 물품 80~100회 운반'했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의 고 장덕준씨 업무상 질병 판정서.

근로복지공단의 고 장덕준씨 업무상 질병 판정서.

또 국가인권위원회는 2021년에 내놓은 생활물류센터종사자 노동인권실태조사서에 산재승인을 받은 장 씨 사례의 재해조사서와 업무상질병판정서를 분석해 '사망 전 3개월 동안 1일 평균 9시간, 1주 평균 58시간의 야간 고정 노동을 수행했고 포장 부자재 4.5kg을 1일 평균 80회 날랐다'며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라고 판단했습니다.

즉 골프와 장 씨의 당시 업무를 비교하거나 걸음수가 얼마 되지 않아 견디기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주장은 논리와 근거가 부족한 내용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와 관련 쿠팡 측 변호인은 JTBC에 해당 변론서에 담긴 내용을 쿠팡 측과 협의한 것이 아니라 변호사 개인의 의견이라고 알려왔습니다.

[자료조사 및 취재 지원 리서처 : 이채리 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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