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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클뉴스] 출산율의 저주? "망했다"던 교수, "한국 안 망하는 법은…"

입력 2024-06-01 06:00 수정 2024-06-01 16:22

한국의 '초저출산', 조앤 윌리엄스 교수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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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초저출산', 조앤 윌리엄스 교수 취재기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최악으로 갈 일만 남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27일 JTBC 취재진을 만난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는 또 한 번 열변을 토했습니다. 세계적인 노동법 대가의 얘기인즉슨 한국의 상황이 '한시가 급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취재기입니다.
 

주 120시간? 주 69시간?

◆이지은: 한국의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72로 더 내려갔어요. 저출산의 저주라도 받은 걸까요?
◆조앤 윌리엄스: 제가 외부인이니까 저주받았다고까지 표현은 못 하지만요. 한국의 현 정부가 노동 시간을 주 52시간에서 주 69시간으로 늘리려고 시도했고, 고용주들이 특정한 주에는 최대 120시간 노동을 요구하고 대신 나중에 쉬도록 할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확실한 건 이 아이디어가 실제로 실행된다면 출산율은 지금보다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부모가 120시간을 일하는 동안 그 집 아이는 무엇을 할 것인가요? 아이를 일주일 동안 동결해 놨다가 다음에 돌아오는 한 주 동안 쭉 돌봐줄 순 없잖아요? 이것이야말로 아이를 낳는 것과는 맞지 않는 한국 노동 문화의 극단적인 예시일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전인 지난 2021년 '주 120시간' 발언을 했다가 역풍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필요한 경우 주 120시간을 바짝 일한 뒤 한꺼번에 쉴 수 있는 예외 조항을 둬야 한다는 의견을 소개했던 건데요. 취지는 노동 시간을 유연하게 하자는 것이었지만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 후 윤석열 정부의 고용노동부는 '주 69시간' 근무제를 추진했습니다. 주 최대 69시간 바짝 일한 뒤 몰아 쉴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노동계에서 반발이 일자 윤석열 정부는 없던 일로 뒤집었습니다.
 

"재정만 백날 늘려봐야"

◆이지은: 한국의 저출산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요?
◆조앤 윌리엄스: 한국 정부는 이 프로젝트에 많은 돈을 쓰고 있습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아동 돌봄과 교육에 들이는 돈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긴 노동 시간이라는) 한국의 근무 시스템과 보육 시스템 자체가 맞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근무 시스템입니다. 만약 그 근무 시스템이 부모들이 저녁 7시나 8시, 더 늦으면 9시에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말입니다. 이를테면 한국의 보육 시스템은 오후 5시면 끝나는 경우가 많고, 저녁 7시까지도 어딘가에 맡길 순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와 일하는 부모에게 너무 긴 하루라는 것입니다. 전 세계 어떤 나라의 엄마라도 하루에 12시간씩 아이를 보육 기관에 맡기는 것은 주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정의 문제라기보다) 내가 부모라면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죠.

저출산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는 시도는 출산율을 높이는데 직결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정부 정책 자문위원회에서도 나온 바 있는데요. 지난달 29일 중장기전략위원회는 OECD 자료를 토대로 가족 지출과 출산율 간 상관관계가 0.01에 불과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가족 지출에는 출산과 보육 수당이 포함되는데요. 202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족 지출은 한국 1.5%, 미국 0.7%입니다. 돈이 두 배인 만큼 아이를 더 낳았을까요? 2021년 미국은 평균 1.66명, 한국은 오히려 그 절반인 0.81명밖에 안 낳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아이가 부모랑 크게 해주세요"

◆이지은: 재정 문제도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한국에서 아이를 더 낳을 수 있을까요?
◆조앤 윌리엄스: 한국 정부는 출산과 양육을 위해 휴직할 수 있도록 재정을 지원하는데, 사업장은 휴직자를 대신할 대체 인력을 두지 않고 남아 있는 근로자들에게 초과 근무를 시키는 양상입니다. 부모가 육아휴직을 쓰고 돌아오면 그들에게 쌓인 원망이 그들을 극단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일하게 하는 악순환이 생겨요. 저의 제안은 고용주가 육아휴직을 쓰는 부모를 대신할 인력을 더 뽑으라고 정부가 장려하라는 것입니다. 즉 정부가 '당신 직원을 위해 육아휴직 급여를 대신 지원하니 사업장은 엄마와 아빠 모두 휴직하도록 해주고 대체 인력을 뽑으라'고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라는 것입니다. 엄마들만 휴직하면 안 되고 아빠들도 가야 엄마들이 일터에서 낙인 찍힐까 봐 아이를 안 갖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제안을 하자면 장기적으로 직장에 오래 다닐 수 있도록 나라가 환경을 만들어 주자는 것입니다. 북유럽 국가들이 그런 추세인데, 아이들이 태어나고 첫 6년 동안만이라도 75~80%의 강도로 일하도록 놓아주자는 것입니다. 6년은 수십 년 경력에서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닙니다.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육아휴직 통계에서 2022년 출생한 아이 부모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엄마가 70%이었습니다. 아이 출생 직후 아빠가 육아휴직을 쓴 비율은 고작 6.8%였습니다. 또 아이가 초등학교에 갈 때 육아휴직을 사용한 경우는 2022년 기준으로 엄마가 72.9%, 아빠는 27.1%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내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건 엄마도 아빠도 매한가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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